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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악어 혀부터 완벽한 크루아상까지… 미식의 최전선은 호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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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레스토랑 트렌드 이끄는 호주 미식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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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 '세인트 피터'의 생선 샤퀴테리./Tourism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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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셰프 위에 있는 건 단 하나, 재료다.”

넥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 화제가 된 최현석 요리사의 말이다. 아무리 뛰어난 셰프라도 좋은 재료가 없다면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없다. 이 진리는 여러 분야에 두루 적용된다. 영화나 연극이 좋다면 반드시 대본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나 연극이 엉망이라고 해서 대본이 꼭 엉망은 아니다. 연출가나 배우가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다시 음식으로 돌아오면, 호주 요리사들은 그런 점에서 복을 받았다. 호주는 국가이자 하나의 대륙(오스트레일리아). 열대우림부터 사막까지 모든 지형·기후가 다 있다. 온갖 식재료가 재배되고, 필요하면 없던 종자를 가져다 키울 수도 있다. 서양 3대 진미라는 트러플(송로버섯)·캐비아(철갑상어 알)·푸아그라(거위 )는 오래 전부터 자체 생산했다. 지난달 호주를 찾았을 땐 유럽 봄의 진미로 꼽히는 흰 아스파라거스가 출시되기 시작해 고급 레스토랑 테이블에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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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윤혜


한때 호주에서 파인다이닝(고급 외식)은 프랑스 요리와 동일시됐다. 독립 국가라는 정체성이 강해지면서 호주만의 요리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다양한 인종·국적·문화 배경을 가진 요리사들이 힘을 합치면서 호주의 개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문화라는 부시푸드(Bush Food·원주민 음식)에서 6만여 년간 이용해온 토종 식재료와 조리법이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시너지를 내면서 호주 미식은 빠르게 진화 중이다. 호주관광청 안내를 받아 호주 외식 업계를 최정상·최첨단에서 이끌고 있는 레스토랑을 두루 맛봤다. 관광지는 생략한 미식 여행기.

◇멜버른: 크루아상과 악어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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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멜버른 플린더스 역./Tourism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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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주도(州都)인 멜버른은 자타가 인정하는 미식 도시다. 이 고풍스러운 유럽풍 도시에는 식당이 3000여 곳 있어 맛보지 못할 음식이 없고, 훌륭한 카페가 지역마다 촘촘하게 박혀 있어 스타벅스도 쉽게 발을 들이지 못했다.

(Lune Croissanterie): ‘세계 최고의 크루아상’으로 명성이 자자한 빵집. ‘크루아상 여왕’이라 불리는 케이트 리드(Reid) 오너 베이커는 본래 포물러원(F1)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피츠로이(Fitzroy)점에서 만난 리드는 “어려서부터 레이싱에 열광해 대학에서 공기역학을 전공하고 F1 최고의 팀으로 꼽히는 영국 ‘윌리엄 레이싱’에 입사했다”며 과거를 풀어냈다.

덕업 일치를 이뤘지만 불행했다. 사무실은 폭주하는 F1 머신 엔진처럼 경쟁으로 터질 듯했다. 리드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음식으로 풀려다 폭식과 거식을 오가는 섭식 장애 진단을 받았다. 회사를 그만둔 리드는 힐링 방법으로 제빵을 택했다. 매일 크루아상 수십 개를 구웠고, 엔지니어답게 ‘완벽한 크루아상’을 과학적이자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유명하다는 크루아상을 두루 먹고 분석했다. 그는 마침내 ‘크루아상 공식’을 완성했다. 완벽하다고 확언할 순 없지만, 세계 정상급으로 꼽을 만했다. 119 Rose St Fitzroy, lunecroissanter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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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 '룬'의 클래식 크루아상./Tourism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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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노멀(Supernormal): ‘집에서 담근 김치’ ‘쓰촨식 채소 절임’ ‘새우 & 닭고기 만두’…. 메뉴판만 보면 아시아계 이민자 출신이 차린 식당으로 착각할 법하다. 하지만 이 식당 오너 셰프는 영국계 앤드루 매코널. 홍콩, 도쿄 등지에서 일하며 사랑하게 된 아시아 음식을 자신의 재해석으로 담아 낸다. 호주에서 빚은 사케, 일본에서 빚은 내추럴 와인처럼 재미난 페어링이 더해진다. 180 Flinders Lane, supernormal.net.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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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노멀'의 닭고기 & 새우 만두./Tourism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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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에소(Big Esso by Mabu Mabu): 악어 혀가 이렇게 맛있다니. 주사위 모양으로 썬 악어 혀를 꼬치에 꿰고 호주 토종 허브로 양념해 구웠다. 말해주지 않았다면 돼지 삼겹살이나 목살로 착각했을 것이다. 토레스 해협 제도 출신 원주민 오너 셰프 노니 베로(Bero)는 “악어를 6만 년 넘게 먹어온 우리 원주민들보다 악어 맛을 부위별로 잘 알지는 못할 것”이라며 웃었다. ‘호주 토종 식재료를 식탁의 주인공으로 세운다’를 목표로 세운 레스토랑이다. Fed Square, 25/2 Swanston St, www.mabumabu.com.au

뷰 드 몽드(Vue de Monde): 24년간 멜버른 파인다이닝을 대표해온 레스토랑. 리알토 타워 최정상 55층에서 내려다보는 도심 전망과 세련된 인테리어, 흠잡을 데 없는 서비스가 더해져 호주판 미슐랭 가이드인 ‘굿 푸드 가이드(Good Food Guide)’로부터 최고 등급인 ‘모자 셋(three hats)’을 놓치지 않고 있다.

12 코스 넘게 이어지는 테이스팅 메뉴는 페퍼베리·핑거라임·레몬머틀 등 다른 대륙에 없는 토종 식재료부터 유럽 이민자들이 가져온 버터와 치즈, 아시아 이주민들이 더한 동남아 향신료로 다문화·다민족 현대 국가 호주를 접시에 담아낸다. 55 Rialto Towers 525 Collins St, www.vuedemonde.com.au

브래(Brae): 멜버른에서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따라 2시간가량 차를 타야 하지만, 세계에서 찾는 손님들로 늘 만석이다. 호주를 대표하는 스타 셰프 댄 헌터(Hunter)가 3만7000여 평 규모의 농장을 개조해 레스토랑과 농장, 부티크호텔로 운영한다. 손님에게 내는 채소를 농장에서 직접 유기농 재배하고, 닭·오리 등 가금류를 키운다. 재료는 친환경·슬로푸드지만, 조리법은 분자요리를 넘나드는 최첨단. 미식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실험적 메뉴가 천연덕스럽게도 소박한 시골 음식처럼 나온다. 4285 Cape Otway Rd Birregurra, www.braerestaurant.com

◇호바트: 청정 자연의 맛

태즈메이니아는 호주 최남단 섬. 호바트는 태즈메이니아의 항구도시다. 본토에서 240km 떨어져 독특하고 때 묻지 않은 자연 생태계와 동식물을 가졌다.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피노누아·샤도네·리슬링·스파클링 와인은 호주 최고로 꼽힌다.

모나(MONA): 태즈메이니아 여행에서 빼먹으면 안 되는 미술관. 모나는 ‘옛것들과 새것들의 뮤지엄(Museum of Old and New Art)’의 약자. 전문 도박사 출신으로 경마·스포츠 베팅 시스템을 개발해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데이비드 월시(Walsh)가 2011년 개관했다. 성·죽음·배설 등 논란이 될 만한 파격적 작품이 도처에 널렸다.

최고 인기 작품 중 하나인 벨기에 대표 현대미술 작가 빔 델보예(Delvoye)의 ‘클로아카 프로페셔널(Cloaca Professional)’은 말 그대로 ‘똥 싸는’ 기계. 각종 음식과 소화액이 뒤섞여 갈색으로 부글거리며 대변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계가 변을 배출하는 매일 오후 2시면 관람객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어 현장을 촬영한다.

미술관 내 레스토랑 ‘파로(Faro)’도 소장품만큼이나 비범하다. 그때그때 바뀌는 기획전에서 영감을 얻어 메뉴를 개발한다. 현재 메뉴 중에서는 ‘이트 더 프라블럼(Eat the Problem)’이라는 사슴 요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황소개구리처럼, 호주에서는 유럽에서 들여온 사슴이 생태계를 교란하는 유해 동물. 호주에서는 문제 동식물을 먹어 없애자는 ‘이트 더 프라블럼’ 운동이 한창이다. 요즘 호주의 많은 식당 메뉴에 사슴이 오르는 이유다. 655 Main Rd Berriedale, www.mona.net.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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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 미술관에 전시된 ‘클로아카 프로페셔널’./Tourism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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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 미술관 내 '파로' 레스토랑 메뉴./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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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코(Fico): 페데리카와 오스카 안드리사니 부부 요리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이탈리아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사랑에 빠진 부부가 2016년 남편 오스카의 고향 호바트에 가게를 냈다. 이탈리아 요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파인다이닝을 선보인다. 디저트로 나오는 크림을 채운 페이스트리 스폴리아텔라는 본고장 나폴리에서 맛본 것보다 훨씬 가벼우면서도 농후했다. 아내 페데리카는 “나폴리에서는 전통적으로 스폴리아텔라 반죽에 라드(돼지기름)를 쓰는데, 우리는 코코넛 오일로 대체했다”고 했다. 151A Macquarie St, www.ficofico.net

아그레리언 키친(Agrarian Kitchen): 채소, 치즈, 버터 등 요리에 쓰는 식재료 90%를 레스토랑에 딸린 농장에서 자체적으로 재배·생산한다. 오븐에서 갓 구운 빵의 온기와 구수한 풍미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요리학교도 함께 있다. 11a The Avenue New Norfolk, www.theagrariankitchen.com

라크 증류소(Lark Distillery): 토지 측량사였던 빌 라크는 1989년 태즈메이니아 센트럴 하이랜즈로 낚시 여행을 떠났다. 함께 온 장인이 위스키를 건네자 문득 ‘왜 태즈메이니아에는 위스키 만드는 사람이 없지?’란 의문이 들었다. “태즈메이니아에는 보리도, 위스키 향의 핵심인 피트(peat·토탄)도, 세계에서 가장 달고 맑은 물도 있잖아요. 알고 보니 150년 전 태즈메이니아 주지사가 증류주 생산을 금지시켰더군요. 금주법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시기였죠.” 1992년 자택 주방에서 첫 싱글 몰트 위스키 생산에 성공했고, 세계 주류 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호주를 대표하는 위스키로 자리매김했다. 76 Shene Road Pontville, www.larkdistillery.com

◇시드니: 신예 스타와 원로 스타

호주를 대표하는 대도시 시드니는 호주에서 가장 치열한 외식업 격전지이기도 하다. 시드니에서 최근 화제가 된 식당 두 곳을 다녀왔다.

세인트 피터(Saint Peter): 생선 요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평가받는 호주의 젊은 스타 셰프 조시 닐런드(Niland)의 레스토랑. 주로 소고기에 사용되는 드라이에이징(건조 숙성) 기법을 생선에 적용하는 등 자신만의 독특한 요리 스타일과 철학으로 세계 파인다이닝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생선을 다루는 주방답지 않게 물기가 전혀 없었는데, 물로 생선을 씻으면 부패가 빨라지고 냄새가 많이 나기 때문에 키친타월로 물기와 피를 닦아낸다. 생선의 40%가 버려지는 걸 안타까워한 닐런드는 심장·간·내장 등 먹지 않는 부위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연구한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생선 샤퀴테리(fish charcuterie)’. ‘기껏해야 어묵 같겠지’ 했지만, 실제 맛보니 진짜 햄·소시지 등 육류로 만든 샤퀴테리 뺨치는, 오히려 더 맛있는 새로운 요리여서 깜짝 놀랐다. 현재 세인트 피터에서 해산물은 90% 이상 요리로 활용된다. 161 Underwood St Paddington, www.saintpeter.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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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피터'의 디저트 레몬 타르트는 산미와 단맛, 쓴맛의 균형이 기막히다./Tourism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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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Margaret Restaurant): 구운 생선에 올리브 오일과 소금만 뿌렸을 뿐인데 이렇게 맛있을 수가. 훌륭한 재료가 노련한 요리사를 만나면 많은 게 필요 없다. 닐 페리(Perry)는 호주 외식 업계에서 존경받는 요리사. 40년 넘게 수많은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호주 외식과 미식을 끌어올렸다. 마거릿은 그가 가장 최근 오픈한 식당. 페리는 “동네 식당”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곧 더블베이(Double Bay)를 넘어 호주 대표 식당이 될 듯하다. 30-36 Bay St Double Bay, themargaretfam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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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의 생선구이./Tourism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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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호바트·시드니=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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