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30 (목)

‘고문간첩조작’ 수사관 45명은 취소된 훈·포장 돌려줄까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더(The) 친절한 기자들]

정부, 간첩조작사건 관련자 45명 서훈 첫 취소

수십일 불법감금·고문한 보안사 수사관 포함

보안사 수사관들, 고문 부인·재판서 위증까지

5·18 관련자들은 10여년전 취소한 훈·포장

‘분실’ 등 이유 들어 지금까지 반납 안 해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0여년 만입니다.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 재일동포 유학생, 납북귀환어부 등을 간첩으로 몰아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한 간첩조작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서훈이 처음으로 취소됐습니다. 상훈법 제8조 1항에 따라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입니다. 45명에 이르는 이들은 재심을 통해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난 12개 사건을 조작하고 ‘국가안보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훈·포장 23점, 대통령·국무총리 표창 22점을 받은 바 있습니다. 불법감금, 고문, 살해 협박 등으로 허위 진술을 받은 당시 보안사 수사관들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정부의 이번 결정을 두고 “국가가 저지른 국가폭력이자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수여했던 서훈들을 지금이라도 취소해서 다행”(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이 만든 인권단체 ‘진실의힘’ 강용주 이사)이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관련기사: 행안부 “80년대 간첩조작·민주화운동 탄압자들 훈·포장 취소”)

하지만 뒷맛이 씁쓸합니다. 뒤늦은 감이 있는 데다 1980년대 사건만 다뤄 그 규모도 아쉽다는 지적입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30여년 동안 품고 있던 훈장을 토해내는 이들이 과연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죄할 준비가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진정한 과거사 청산,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 더 들여다볼 문제를 정리해봤습니다.

■ 물고문·전기고문…‘간첩 만들기’의 민얼굴

1980년대에는 각종 정보기관 중에서도 군 보안사령부(보안사, 현 기무사)가 가장 힘이 셌습니다.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12·12 쿠데타(1979년)로 대통령이 됐기 때문입니다. 보안사는 전두환 정권 때 최고 권력자의 후원을 배경 삼아 수사권도 없는 민간인을 상대로 간첩조작을 일삼았습니다. 재일동포 유학생, 납북귀환어부 등이 그들의 주된 표적이었습니다. 2007년 대법원이 사법부 과거사 정리 차원에서 검토한 1972~1987년 사이 시국·공안 사건 판결 중에서 불법구금과 고문 등 재심사유가 있다고 본 224건 가운데 재일동포 관련 사건은 68건입니다. 67건 중에서 37건은 1983~1987년에 집중됐습니다.

(▶관련기사: “보안사 고문 수사관보다 조작 추인한 판검사가 더 밉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안사가 저지른 불법구금과 고문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이번에 서훈이 취소된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인 김양기씨는 1986년 2월 광주보안대 수사관들에게 영장 없이 끌려가 44일간 고문을 당하며 허위 진술을 강요당했습니다. 일본에 사는 삼촌을 만나러 몇 차례 오고 간 사실이 재일 공작지도원의 지령을 받아 국내 학원·민심 동향 등의 국가기밀을 수집해 전달한 혐의로 둔갑했습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2009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김씨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처음에 여기가 어디냐고 항의하자 뺨과 가슴 등을 정신 차리지 못할 만큼 구타했다. 처음 4~5일간은 잠을 전혀 재우지 않았다. 옷을 발가벗긴 뒤 철제 의자에 앉히고 손과 발목은 수건으로 감싸 수갑을 채운 상태에서 고춧가루 섞은 물을 부었다. 물고문 뒤에 전기고문을 하였는데 엄지발가락과 성기에 전선을 연결해서 고문했다. 수사관이 ‘너 같은 빨갱이 새끼는 죽어도 누구 하나 동정해주지 않아. 너 여편네도 데려와서 빨가벗겨놓고 조져볼까?’라며 협박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됐다.”

‘엘리베이터실’이라는 기계에 대한 증언도 있습니다. 1984년 재일동포 유학생이었던 윤정헌씨는 보안사 대공처 수사과 학원반 소속 수사관들에게 붙잡혀 눈가리개를 한 채 서울 송파구 장지동의 보안사 분실로 끌려갔습니다. 43일간의 불법감금과 고문 가운데 그를 가장 공포에 떨게 했던 것은 ‘엘리베이터실’이었습니다. 윤씨는 지난 4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큰 방 중앙에 철제 의자가 하나 놓여 있고, 그 옆에 의자를 작동시키는 기계장치가 놓여 있었다. 옷을 다 벗기고는 의자에 앉힌 다음에 손발을 의자에 묶는다. 그러고는 뒤로 젖혀서 수건을 얼굴에 덮은 뒤 주전자 물을 얼굴에 쏟아부었다. 그래도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엘리베이터 의자를 작동시킨다. 의자는 그 자리에서 1~2층 깊이의 지하로 내려간다. 아래에서는 물이 찰랑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방 아래로 한강이 흐른다. 너 하나 죽여서 강물에 던지면 아무도 모른다’고 겁을 준 상태이기에 그때 느끼는 공포심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나는 그 정도로 그쳤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의자에서 전기고문도 받았다.”

다른 피해자들의 증언도 비슷합니다. 이번에 서훈이 취소된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인 ‘납북귀환어부’ 이병규씨는 진실화해위 진술 조사에서 “고문을 당하다 죽는 것이 낫겠다 싶어 수사관이 한눈을 판 사이 쏜살같이 의자에서 일어나 콘크리트 벽에 강하게 머리를 박았다. 혀를 깨물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 피 묻은 훈장 달고 반성 없는데 처벌도 못 하는 현실

보안사 수사관들은 잇단 간첩조작의 공을 인정받아 보국훈장을 가슴에 달고 대통령·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습니다. 김양기씨가 자신을 고문한 사람으로 지목한 이아무개씨가 대표적입니다. 김씨는 진실화해위에 이씨가 직접 물고문, 전기고문을 했으며 허위 진술을 부인하자 술에 취한 채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냥하고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씨는 김씨의 1심 선고 5일 뒤에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습니다. ‘국가안보에 뚜렷한 공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씨의 훈장은 이번 정부 결정으로 32년 만에 취소됐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훈장을 가슴에 단 이들에게 반성은 없었습니다.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관행이었다”고 변명하던 수사관부터 심지어 피해자의 재심 재판에 나와 적극적으로 ‘고문은 없었다’며 거짓말을 하는 수사관도 있었습니다. 윤상헌씨를 고문했던 전직 보안사 수사관 고병천씨 이야기입니다. 고씨는 2010년 12월 윤씨의 재심 재판에 굳이 나와 ‘고문이나 구타 등의 가혹 행위는 일절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고씨는 2009년 진실화해위에서 윤씨 사건이 조작됐다는 결론을 내리자 이에 대해서도 이의 신청을 한 바 있습니다. 그의 요청은 기각됐습니다. 결국 고씨는 올해 5월 위증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관련기사: ‘고문으로 간첩조작’ 범죄가 겨우 1년 징역)

‘납북귀환어부’ 정삼근씨를 간첩으로 몰았던 한 보안사 수사관은 2016년 <한국방송>(KBS) 시사기획 ‘창’ 방송에서 “지금도 간첩이고 내일도 간첩이고 내가 죽어도 간첩은 간첩이다. 훈장에 대해서는 반납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보안사 수사관들이 이토록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단 한 번도 고문 행위에 대해 직접적인 처벌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범죄 피의자를 기소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의 공소시효 규정에 따르면, 징역 10년 이상의 범죄이면 10년, 징역 10년 미만의 범죄이면 7년 안에 기소가 이뤄져야 합니다. 고문 등 가혹 행위는 형벌이 최대 징역 5년까지이며, 불법 체포·감금 행위는 최대 징역 7년까지입니다. 이미 1990년대 초반에 공소시효가 끝나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살인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한 것처럼 고문 등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서도 공소시효를 없애자는 움직임이 계속 있었습니다만,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민사소송을 통한 손해배상의 길은 열려있습니다. 윤상헌씨는 고병천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월 법원으로부터 정신적 고통을 준 데 대한 배상(3000만원) 명령을 받아냈습니다. 이번에 서훈이 취소된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인 김철씨도 2013년 국가와 당시 치안본부 소속 수사관 유아무개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2014년 1월 법원은 “당시 사건으로 겪었을 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편견, 경제적 어려움이 인정된다”며 “국가와 유씨는 총 8억700여만원을 김씨와 그 가족들에게 지급하라”고 김씨에게 일부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유씨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확정됐고, 배상금은 전액 국가가 납부했습니다.

(▶관련기사: 사건조작 수사관 민사상 책임 못 면해)

■ 서훈 취소 뒤 실물 반납 할까 의문 들기도

취소된 서훈의 실물을 반납할 지도 의문입니다. 상훈법 제8조는 ‘취소된 훈장 또는 포장과 이와 관련하여 수여한 물건 및 금전을 환수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잃어버렸다’는 등의 이유로 반납을 거부하는 경우 마땅한 제재 방법이 없습니다.

실제로 2016년 언론 보도를 보면,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그동안 취소한 훈장 411건 가운데 98건만 반납됐습니다. 411건 가운데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했거나 12·12 쿠데타에 참여해 형이 확정된 사람들의 서훈이 176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2006년 서훈이 취소된 전두환씨와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은 수년이 지난 뒤 늑장 반납했고, 노태우씨는 한 개의 훈장도 반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폄하하고 학살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들 수뇌부가 정부가 취소한 서훈을 제때 반납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간첩조작사건의 가해자들은 과연 어떨까요? 이제까지 반성 없이 살아온 모습을 보면 서훈이 취소됐다고 해서 쉽사리 생각이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문 후유증을 호소하며 이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참고문헌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간첩조작사건’ 결정문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