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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북 석탄 ‘제재 위반’?…당신의 옷·음식도 북한산일 수 있다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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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한국 독자 제재 후 찾아간

중국 단둥에서의 8박9일

북한산 의류가 중국 제품으로

라벨 갈이하고 한국에 오기까지

중국, 한국, 북한인들이 협력하다


한겨레

2016년 3월9일 북한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는 중국 단둥의 옷공장 미싱대에 기자가 홀로 앉아 보았다. 사진 강주원 경남대 객원연구위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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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국내로 북한산 석탄이 반입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정부를 향해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석탄 수입 금지를 규정한 유엔 안보리 결의 2371호를 어겼을 뿐만 아니라 청와대가 관련 사실을 미리 알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외교부는 북한산 석탄을 실어 나른 외국 선적 선박들에 대해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억류조처 여부를 검토한 바 있으며, 조사 결과와 제반 사항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다고 지난 20일 해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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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9일 방문한 옷공장의 점심 식사. 북한 노동자들은 이 공장에서 12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일을 했다. 북한 노동자들의 식사가 끝난 뒤 기자가 조선족 관리자들과 함께 먹은 밥을 찍은 사진이다. 사진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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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는 이제껏 북한이 핵 실험을 할 때마다 강도를 높인 제재안을 체결했습니다. 2006년부터 지난해 12월 체결된 2397호까지 10번이나 대북 제재안을 발표하며 북한 경제나 금융에 압박을 가했습니다. 특히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2016년에는 한국 정부가 북한산 상품 반입 금지, 북한 식당 이용 자제 등을 포함한 내용의 강력한 독자 제재안을 내놓기도 했지요. 물론 한국의 대북 제재가 2016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앞서 2010년 천안함 침몰로 개성 공단을 제외한 일체의 남북 경협이 금지된 5.24 조처가 발표되기도 했지요.

여기서 질문이 제기됩니다. 유엔의 강력 제재 속에서도 북한 석탄은 어떻게 태연히, 그것도 20번 넘게 한국에 입항할 수 있었을까요? 석탄 말고 다른 북한산 제품은 정말 한국에 한 점도 들어오지 않을까요? 대북 제재는 실효성을 갖고 있을까요?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기자는 2016년 3월8일부터 8박9일간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 한국인 대북 사업가, 북한의 국영기업 국외 주재원, 조선족 사업가 등을 만났습니다. 같은 한국말을 쓰지만 국적은 한국 북한 중국을 두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비밀리에 한국과 북한의 무역을 중재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상품이 단둥을 거쳐 중국산으로 탈바꿈되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지요. 물론 이런 수출입은 엄연히 불법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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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박9일간 머문 호텔에서 내려다본 단둥의 풍경이다. 저 멀리 압록강과 신의주가 희미하게 보인다. 사진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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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북한산 물품의 우회 반입이 통계로 잡히기도 했습니다. 2010년 ‘5·24 조처’ 이후 2015년 10월까지 적발된 북한산 물품의 우회 반입 사례는 71건입니다. 적발 건수가 71건일뿐 이보다 더 많은, 보이지 않은 무역이 지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죠. 당시 한국인 대북사업가들은 정부도 이러한 지하 거래를 알고 있었다고 토로합니다. 한국이 독자 제재안을 발표한 2016년 3월, 한 대북 사업가는 단둥의 아파트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인) ○○○ 사장이 ‘평양 오더’를 제일 많이 했잖아. 실질적으로 자기가 평양 공장에 일감 주는 거고 형식상으론 중국 회사 통해서 하는 건데. 그걸 알고 정부가 한인들 쑤시더라고. 나한테 전화 오고. ○○○ 사장이 정면 돌파하자, 이실직고하고 가자고 한 게 작년(2015년)이라고. 그때 (영사관 등의) 분위기는 간접교역 하라고 했어. 그런데 이번에 정부가 독자 제재안 발표하면서 작년에 (영사관에) 털어놓은 게 칼날이 되는 거야. 오픈된 거야.”

그가 약 일주일간 기자와 동행하며 입은 오리털 점퍼 또한 3국 무역의 결과였습니다. 물론 ‘메이드 인 차이나’ 라벨이 달린 한국 브랜드 의류였지만, 실제로는 평양 노동자들이 만든 옷이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한국 의류 브랜드가 중국에 하청을, 중국 회사는 평양에 재하청을 준 것이죠. 그가 입은 오리털 점퍼는 남북 교역이 아닌, 한·중 교역 수치에만 잡히게 됩니다.

골동품과 수예품을 파는 단둥의 한 건물을 방문한 현장에서도 한국인 보따리상들을 심심치 않게 만났습니다. 이들은 평양에서 만들어져 ‘메이드 인 차이나’ 라벨을 단, 수예품 등을 구입하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기자도 모시 소재의 커튼을 세 점 구입했습니다. 사람이 손으로 꽃을 수놓은 ‘손수’ 제품이었지요. 한국인 수예품 사장은 “오늘 아침 평양 여자가 기차를 타고 몰래 물건을 갖다 주었다”며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한숨 쉬었습니다.

“인사동에 있는 메이드 인 차이나 ‘손수’ 제품은 거의 다 북한 여자가 만들었다고 보면 돼. 중국인들도 요즘 인건비 비싸서 직접 수놓으면 너무 비싸. 그걸 누가 사겠어? 비싼데. 평양 여자들이 수도 잘 놓고 인건비도 싸고.”

북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조선족 대북 사업가와 고기를 구워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농산 가공품이 한국의 대기업에 납품된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앳된 얼굴의 북한 여성 노동자 두 명이 동석했습니다. 조선족 사업가는 특정 대기업을 지칭하였는데, 그의 신분 보호상 밝힐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은 누구나 알만한, 누구나 먹는 대기업 식품이었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이 만든 농산 가공품이 중국을 거쳐 한국의 대기업 식품회사로 흘러들어가는 것이죠.

기자는 당시 북한 사람들이 제 집처럼 드나드는 조선족 대북사업가 K의 무역 사무실도 거의 매일 드나들었습니다. K씨를 통해 구매한 들깨의 원산지가 어딘지 궁금해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 궁금증을 풀어줬습니다.

“요즘 북한산 들깨가 많이 들어와서 중국 다른 지역에서 가공돼 수출된다고. 그럼 중국산이 되지. 한국이 북한산 가려낸다는데 북한 깨는 어떻게 해? 성분 검사 같은 걸 하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걸 어떻게 다 하냐고? 아, 당신이 산 깨는 (중국) 길림 거야. 길림 깨가 최고지.”

조선족 K씨는 말을 이었습니다. “한국 휴대전화 부품인 ‘밧데리 트랜스’의 30%는 중국, 70%는 북한산이야. 대한민국 제품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 성분은 모두 대한민국 거라고 생각해?”

기자가 만난 단둥의 수많은 사업가들은 ‘숨은 존재’들이며 그들이 납품하는 제품들도 적발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대북정책 변화와 함께 성장한 사업가들로 당시 조여 오는 대북 제재로 인해 자신의 직업을 바꿀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기자가 만난 한국인 대북 사업가들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과 함께 등장했습니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북한과 교역 및 경제협력 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수출입은행을 통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남북협력기금이 1991년 조성되기도 할 만큼 지금의 분위기와 달랐습니다. 당시 대기업 상사들도 앞 다퉈 대북사업에 뛰어들었으니 상상이 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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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단둥의 중조우의교를 건너기 전 출국 소속을 밟아야 하는 세관 가까이 상점들이 즐비하다. 세관 근처 슈퍼마켓에는 북한 개성소주와 한국의 참이슬이 나란히 진열대 위에 있다. 사진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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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사업가들은 유엔 제재와 한국의 독자 제재를 위반하고 있었지만 <한겨레>가 이들을 취재한 이유는 단지 이들을 옹호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숨은 존재들을 통한, 알려지지 않은 남북 경제 교류가 이미 모세혈관처럼 우리 사회에 퍼져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는 것이죠.

중국 부품으로 한국산 제품이 만들어지고 글로벌 자본으로 한국 대기업이 굴러가는 게 현실입니다. 상품에 국적을 매길 수 없는 지금 ‘북한산 제품’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단둥에서 만난 대북사업가,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보따리 상인, 조선족 상인들은 이 질문에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응답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먹는 음식, 입고 있는 옷, 쓰는 휴대폰 속에도 어쩌면 북한 노동자들의 손길이 배어들고 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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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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