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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고령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

[더위가 재난인 사람들](1)쉼터 없는 노인들...고령화와 기후변화 맞물리면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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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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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도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던 지난 20일 저녁, 서울 강서구에서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 일하는 홍종옥씨는 평소 찾아가던 80대 남성 ㄱ씨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았다. ㄱ씨는 수화기 너머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숨을 쉴 수 없으니 병원에 데려가달라”고 했다. 깜짝 놀란 홍씨가 달려가 쓰러져 있는 그를 근처 병원으로 옮겼다.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험할 수 있었다. 홍씨는 “ㄱ씨는 원래 폐질환이 있는데, 더위가 심해진 뒤 ‘기운도 없고, 입맛이 없다’는 얘기를 자주했다”며 “병원에 가보자고 하면 ‘좀 더 견뎌보겠다’ 하시더니 일이 터졌다”고 말했다.

전국에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열사병 같은 온열질환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빈곤층 노인들, 특히 ㄱ씨처럼 홀로 사는 이들은 이 무더위 속에 달궈진 옥탑방이나 습기 가득한 지하실에서 24시간을 버텨야 한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빈곤층 노인들에게는 불볕더위 속에 집 안에 있는 자체가 고통이다.

생활관리사 이효정씨는 23일 “정오쯤이면 옥탑방은 숨이 턱턱 막혀 건강한 사람도 있기 힘들 정도”라며 “지하실은 이보다는 시원하지만 습기와 곰팡이 때문에 폐질환이 있는 분들에겐 최악의 환경”이라고 말했다. 영양상태도 문제다. 평소에도 건강이 좋지 않은데, 더위 때문에 끼니조차 거르는 이들이 많다. 이씨는 “여력이 부족해, 몸이 매우 안 좋은 분들에게만 생활관리사들이 직접 죽을 먹여드리곤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에는 정부가 취약계층 냉방시설로 선풍기라도 일부 지원했는데, 올해는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특별히 오는 게 없었다”고 했다.

정부는 2006년부터 에어컨이 있는 주민센터나 복지관, 경로당 등을 ‘무더위쉼터’로 정했고 올 폭염에도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무더위쉼터 지정을 늘리고 있다. 현재 폭염에 맞춘 노인 재난관리 대책은 무더위쉼터나 봉사자들의 방문확인, 긴급시 이송계획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쉼터의 경우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이 실제로 이용하기는 힘들다. 이씨는 “무더쉬쉼터는 주로 경로당들인데 시설 좋고 시원하지만 회비를 내고 다니는 이들의 ‘텃세’가 심하다”고 했다. 실제로 기자가 23일 찾아가본 강서구의 한 임대아파트 무더위쉼터에서는 혼자 사는 노인들이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경로당에 가기에는 아직 나이가 적은 것같다” “가는 사람들은 가지만 나는 가기가 좀 뭣해서”라는 이유들을 들었다. 게다가 무더위쉼터 대다수는 야간에는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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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잡는 더위는 이제 ‘자연 재난’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 폭염은 대개 7~8월 사이 열흘 정도 발생하고, 연간 20명가량이 폭염 때문에 숨진다. 태풍·홍수·폭설같은 재난의 인명피해가 연평균 42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이미 코앞의 위협인 셈이다. 31.1일 동안 폭염이 이어진 1994년에는 열사병으로만 92명이 숨졌다. 질병 등으로 예년보다 많이 숨진 ‘초과사망자’는 3384명으로 추정됐다. 폭염이 고령화와 맞물리면 더 큰 문제가 된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고령화 추세와 온실가스 배출 추세가 지금처럼 이어질 경우 2050년대에는 해마다 무더위에 165명이 목숨을 잃을 것으로 예측했다.

당장 취약계층을 보호하려면 무더위쉼터 같은 정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계층별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다. 성균관대 사회의학교실 관계자는 “짧은 기간 이용하는 시설이라도 이용자들의 나이나 경제조건, 심리적 부담 때문에 진입장벽이 생길 수 있다”며 “실효성을 높이려면 세밀한 부분까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대책은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 20일 오후 경기 용인의 독거노인 집을 찾아가 폭염대책을 점검했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은 “주민들이 평소 자주 가지 않는 곳에 쉼터를 지정하는 대책은 미봉책에 가깝다”면서 “폭염이 매년 심해지는데, 주택 개선이나 에너지 비용 보조에 정부가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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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하·배문규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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