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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폭염이 바꾼 신풍속도] “나가면 생고생”…소확행 휴가族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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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서울의 한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왼쪽 사진). 폭염이 기승을 부린 23일 오후 강원 강릉시 경포해수욕장이 한산하다. [헤럴드경제DB·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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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해수욕장 피서객 30%나 감소

밀린 드라마 보고 쇼핑몰·영화관 찾아

“조용히 보내겠다” 방콕 휴가족도 12%

#. 서울 강북구에 사는 직장인 최모(36) 씨는 연초에 올해 여름 휴가 때 가족들과 함께 남해로 떠날 예정이었지만 최근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살인적인 무더위 탓에 산, 바다, 계곡 어디로 가든 더위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비교적 시원한 해외로 떠나고 싶었으나 비용때문에 결국 서울 근교 스파 펜션에서 이틀을 보내고, 나머지 나흘은 집에서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그는 “평소 휴가는 무조건 바깥에서 보내는 게 남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잠깐 밖에 나가는 것도 힘든 이번 여름에는 멀리 나갈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올해 전국을 강타한 살인적인 폭염이 사람들의 휴가 계획까지 바꾸고 있다.

계속된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여행은 낭만이 아니라 고생이었다. 손꼽아 기다려온 여행을 포기하고 서점, 쇼핑몰, 영화관 등 시원한 곳을 찾거나 집에만 있겠다는 이들도 의외로 많다.

실제 한창 휴가철 성수기인 지난 주말 강원도 유명 해수욕장은 한산했다. 24일 강원도 환동해본부에 따르면 동해안 6개 시ㆍ군의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은 지난 21일 36만8909명으로 같은 기간 일 평균 50만명에 비해 30% 감소했다.

평소라면 7월 초부터 여름철 피서객들로 붐벼야 하지만 올해 삼척 38.7도, 양양 38.5도, 홍천 38.2도, 원주 38도 등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자 시민들의 발길이 줄어든 것이다.

휴가철 더위를 정면으로 마주하기가 겁난다는 시민들은 저마다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나섰다.

서울 종로구 한 서점에서 만난 직장인 김예지(29ㆍ여) 씨는 휴가 때 볼 역사책을 한아름 샀다고 했다. 그는 “이런 날씨에 나가면 고생이다. 집에서 늘어지게 쉬면서 읽고 싶은 책을 보는 게 남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 마포구의 대학원생 이모(31) 씨는 “3박 4일 여행비를 아껴 친구들과 호텔을 빌려 와인 파티를 벌일 예정”이라며 “더위를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당당히 ‘방콕휴가를’ 외치는 사람들도 많다. 서울 강남구의 직장인 한성진(45) 씨는 “다들 휴가 어디 가느냐고 묻는데 어디 안가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다. 휴가는 재충전의 시기이기 때문”이라면서 “출근 걱정 없이 밤늦게까지 치맥을 먹고 에어컨 시원하게 틀어놓고 가족들과 텔레비전을 보면서 보낼 생각”이라고 밝혔다.

조용한 휴가를 선호하는 분위기에 나홀로 휴가족도 증가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알바콜이 직장인 507명 대상으로 여름휴가 계획 관련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올해 ‘혼자’ 휴가를 보내겠다는 응답이 12%로, 친구(8.6%)나 연인(7.5%)과 보내겠다는 응답보다 높았다.

이처럼 달라진 휴가 풍속도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최근 경제난, 실용주의 선호, 1인가구 증가 등 다양한 이유로 여름 휴가를 꼭 멀리 가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휴식을 만끽하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었는데 올해 폭염까지 더해져 여행을 가지 않거나 미루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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