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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1 (금)

유승민이 ‘콕’ 찍어 청탁한, 서울보증보험 사장은 어떤 자리인가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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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정치권 입김 부는 공공기관 수장 자리

인사 때마다 반복되는 낙하산, 내정설

유승민이 ‘콕’ 찍은 서울보증보험 사장

임기 안 채우고 더 큰 자리 가는 계단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는 언제 이뤄질까


한겨레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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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아이엠에프(IMF) 여파로 10조 이상의 공적 자금이 투입돼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성장의 기틀을 잡아가는 상황에서 전 현직 관료와 퇴물 정치인이 최고경영자로 결정된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 ” (2004년 2월 20일 )

“엠비 정권 말기 새 정부 출범을 앞둔 미묘한 시기에 예금보험공사는 또다시 낙하산 투하를 시도하고 있다 . 회사는 노동조합에 조용히 받아들이라 하고 있다 .” (2013년 2월 1일 )

“외부 압력에 의한 밀실 인사를 지양하고 회사 현안을 해결하고 비전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물을 선임해야 한다 .” (2014년 9월 22일 )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청산 대상으로 지목된 관치금융의 망령이 되살아나 회사를 엄습하고 있다 .” (2015년 11월 2일 )

이 네 개의 성명들은 한 주식회사 노조가 10년이 넘도록 사장 선임 때마다 발표한 성명서입니다. 이 노조가 소속된 회사는 ‘관피아 천국’으로 알려진 서울보증보험인데요.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2014년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인사청탁을 한 정황이 담긴 구체적인 문자메시지 내용을 서울방송(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지난 26일 공개하면서 다시 눈길을 끌게 된 곳이 서울보증보험입니다. (▶관련 기사 : 유승민이 안종범에게 인사청탁한 문자가 공개됐다)

한겨레

유승민 의원이 2014년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인사청탁을 한 문자 내용이 26일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공개됐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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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의원은 2014년 7월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인사 청탁을 합니다. “조○○○ XX증권 사장을 그만두는 분이 있어요. 경북고 1년 선배인데 금융 쪽에 씨가 말라가는 TK죠. 대우증권 사장 및 서울보증보험 사장에 관심 있어요. 괜찮은 사람입니다. 도와주시길. 서울보증보험 자리는 내정된 사람이 있나요?”

이 문자메시지가 방송을 통해 공개된 다음 날인 27일 유 의원은 사과문을 냅니다. “당시 저의 의도는 청와대가 미리 내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정된 인사가 있는지를 물어보고 후보를 추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탁으로 비친 점은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유 의원은 사과문을 통해 자신에 대한 문제 제기를 피해 가려 했지만, 사과문에서 정작 ‘청와대가 미리 (인사를) 내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 됐습니다.

유 의원이 ‘콕’ 찍어 청탁한 서울보증보험 사장은 인사 때마다 낙하산과 내정설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서울보증보험은 주식회사이지만, 예금보험공사가 지분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 금융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유 의원이 청탁한 조아무개씨는 사장에 오르지 못합니다. 김옥찬 전 국민은행 부행장이 2014년 10월27일 사장에 선임된 것이죠. 그러나 그 역시 ‘내정설’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서울보증보험 사장 추천위원회는 당시 후보자 6명에 대한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보험 경력이 거의 없는 김 전 부행장이 내정됐다는 소문이 한 달 전부터 돌았고, 다른 후보는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측이 팽배했습니다. 김 전 부행장이 당시 케이비(KB) 금융지주 회장 선발 과정에서 1차 후보 8명에 올랐음에도 돌연 자진 사퇴했습니다. 이것을 놓고는 남의 떡이 될지 모르는 큰 자리, 즉 케이비 금융지주 회장보다 확실히 자리에 오를 작은 떡, 서울보증보험 사장이 더 나은 것 아니겠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케이비 금융지주 회장 자리는 또다른 인사의 내정설이 돌았기 때문이죠.

서울보증보험 사장 자리는 임기를 채우지 않고 더 높은 자리로 가는 계단이기도 했습니다. 2014년 10월 선임된 김옥찬 사장은 약 1년 만에 친정인 케이비 금융지주 사장으로 돌아갑니다. 2016년 1월 최종구 사장이 선임됐지만 역시 이듬해 3월 수출입은행장에 내정되면서 사임합니다. 서울보증보험 노조는 이때 성명을 냅니다.

“서울보증은 주식회사지만 공적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잦은 사장 교체는 회사를 흔들리게 만들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 또는 국민에게 전가될 것입니다 . 전문성과 경영 능력이 있고 임기를 책임질 수 있는 사장이 선임돼야 합니다 .”

2017년 3월 최 사장이 사임한 뒤 서울보증보험은 장장 8개월간 사장 공석이 이어집니다.

비단 서울보증보험뿐만이 아닙니다. 유승민 의원이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콕’ 찍은 대우증권 사장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유 의원이 문자메시지를 보낸 2014년 7월은 수많은 금융권 자리가 공석이었습니다. 대우증권 사장 인선도 파행을 빚었죠. 그해 7월 김기범 사장이 임기 8개월 남기고 돌연 사퇴하자 후임 결정 과정에서 수많은 내정설이 제기됩니다.

대우증권 최대주주인 산은금융지주(현 산업은행), 대우증권 사외이사,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사장추천위원회도 정부 눈치를 보느라 시간을 끕니다. 9월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후임 사장을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11월로 연기되기도 했죠. 그해 11월26일 내정설이 돌던 홍성국 대우증권 부사장이 신임 사장으로 확정됐는데요. 서강대 출신의 홍 사장은 내정설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주변에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당시 서강대 출신 모임인 서강금융인회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는 고려대 출신이, 박근혜 정권 때는 서강대 출신이 약진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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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공공기관 인사 청탁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받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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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최고경영자 자리는 인사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다고 합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 누리집을 보면, 공공기관은 총 338개로 공기업 35개, 준정부기관 93개, 기타공공기관이 210개입니다.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는 곳들이죠.

당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인사 청탁을 한 이는 유승민 의원뿐만이 아닙니다. 홍문종, 이철우, 나성린, 김종훈, 박대출, 조원진 등 수많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전화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전했습니다. 공공기관 또는 서울보증보험처럼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기관의 낙하산 인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어두운 뒷면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공정한 경쟁과 선발 과정이 지켜져야 합니다. 공공기관 인사가 왜곡되지 않도록, 정치권 입김은 줄고 전문성은 강조되는 인선이 앞으로 이뤄져야 하겠습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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