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의 한 대사다. 여기서 ‘회사 밖’은 자영업을 뜻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50대에 퇴사 후 가장 흔히 선택하는 생계 수단이 자영업이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자영업자가 처한 현실은 ‘지옥’에 가깝다.
자영업자가 최악의 불황에 신음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황학동 시장에 팔리지 않은 중고 물품이 쌓여 있는 모습. (사진 : 한주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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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지옥’ 얼마나 어렵길래
▷폐업 시달리다 고금리 대출 내몰려
지난해 자영업 폐업률은 전년 대비 10.2%포인트 높은 87.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세청 국세통계에 따르면 도소매업과 음식, 숙박업 등 자영업 4대 업종은 지난해 48만3985개가 새로 생기고 42만5203개가 문을 닫았다. 한쪽에서 가게 10곳이 문을 열면 다른 한쪽에서 8.8곳은 간판을 내렸다는 얘기다. 상가정보연구소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권분석시스템을 분석한 결과는 더 심각하다. 지난해 하반기 전국 8대 업종 폐업률은 2.5%로 창업률(2.1%)을 앞질렀다. 특히 음식 업종은 폐업률 3.1%, 창업률 2.8%로 8개 업종 중 창업과 폐업이 가장 빈번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률이 폐업률보다 앞서는 업종은 없었다.
퇴직금도 없는 자영업자가 의지할 곳은 ‘빚’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은행권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302조1000억원)은 2월 이후 5개월 연속 2조원 이상 증가했다. 지난 5월에는 대출 잔액이 사상 처음 300조원을 넘어섰다. 저축은행 등 금리가 높은 2금융권 대출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더 우려스럽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 1분기 79개 저축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은 11조4634억원으로 지난해 동기(8조273억원) 대비 3조4361억원(42.8%) 급증했다. 신용이 낮아 1금융권에서 퇴짜 맞은 자영업자가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 대출로 내몰리고 있는 모습이다.
▶자영업자 위기 원인은
▷용돈연금·조기퇴직…사회안전망 부재
우리나라 자영업자는 왜 이리 힘든 것일까. 이는 편의점 점주가 힘든 이유와 같다. 경쟁자가 너무 많기 때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7 기업가정신 한눈에 보기’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 수는 556만3000명으로, OECD 회원국을 비롯한 주요 38개국 가운데 미국·멕시코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21%에 달했다.
왜 우리 국민은 너도나도 자영업자가 되는 것일까. 자영업 외에는 별다른 생계 유지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 평균 퇴직 나이는 49.1세. 50세가 되면 대부분 직장에서 나와 새로운 삶을 준비하게 된다. 100세 인생 시대, 아직도 삶의 절반이 남았지만 재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다. 60대까지 버텨 연금으로 노후를 대비하려 해도 쉽지 않다. 지난해 국민연금 수급자 한 달 평균 수령액은 36만8000원. 월평균 수령액이 240만원이 넘는 공무원 연금의 6분의 1도 안 된다. 상황이 이렇자 국내 65세 이상 노인빈곤율(52%)은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다. 재취업도 연금 생활도 대안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한 가닥 ‘대박’의 막연한 꿈을 안고 자영업 시장에 내몰리는 것이다.
주윤황 장안대 유통경영과 교수는 “한국은 퇴직 후 받는 연금으로 생활하는 데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영업 시장을 두드리는 사람이 많다”며 “나이 등을 이유로 정규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위한 저소득 일자리가 많이 마련돼야 자영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질 기미 안 보이는 자영업
▷최저임금·52시간·온라인 쇼핑 ‘악재’
전문가들은 자영업 위기가 단순 경기 불황이 아닌, 전반적인 사회구조 변화에 따른 문제라는 점에서 향후 전망을 더욱 어둡게 내다본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최저임금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대폭 오를 전망이다. 문재인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정해진 후 “공약 달성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OECD에 따르면 국내 556만 자영업자 중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58만명에 달한다. 이들이 가게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 중 10~20%는 인건비다. 특히 편의점, 외식업 등 인건비 비중이 높은 업종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근 여러 자영업자 단체가 ‘소상공인 생존권 운동연대’를 출범하며 불복종 운동에 나선 배경이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올해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이미 존폐 기로에 놓인 자영업자들이 많다. 동결을 해도 모자랄 판에 또다시 최저임금을 올렸다는 건 장사를 포기하라는 것과 진배없다”고 역설했다.
둘째, 지난 7월 본격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도 자영업자에게는 악재로 꼽힌다. 야근과 회식이 줄면서 오피스 상권을 중심으로 저녁 손님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직장인 여가 시간 증가가 자영업자에게는 역설적으로 부메랑이 되는 셈.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근무시간이 단축되면 오피스 상권 식당과 주점부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주 6일제에서 주 5일제로 바뀔 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실질적인 영업시간이 줄면서 매출이 20%가량 감소, 폐업률이 크게 오른 바 있다”고 설명했다.
셋째, 온라인 쇼핑 행태가 빠르게 확산되는 ‘온라인 온리’ 현상도 자영업자가 체감하는 위협 요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9조544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22.7% 증가했다. 전체 소매 판매액 중 온라인 쇼핑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지난해 20.7%에서 올해 평균 23.1% 수준으로 늘어났다.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지난해 91조3000억원을 넘어 올해 110조원 이상을 기록할 전망이다.
강병오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창업컨설팅학과장(FC창업코리아 대표)은 “배달의 편리함과 가격 경쟁력으로 무장한 온라인 쇼핑에 밀린 오프라인 영세 자영업자는 갈수록 ‘손님 구경’이 힘들어질 것이다. 자영업을 하려 한다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고 신중하게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승욱·강승태·나건웅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69호 (2018.08.01~08.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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