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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즉시연금’이 뭐길래…삼성생명은 가입자에게 소송 걸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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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더(THE) 친절한 기자들]

금감원, 가입자 5만5천명에게 ‘최저보증이율·사업비 돌려주라’ 권고하자

이에 반발한 삼성생명, 13일 서울중앙지법에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 제기

한화 “같은 유행 계약자 불이익 없도록”…삼성, 금감원과 정면충돌 불가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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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험업계가 ‘즉시연금 논란’으로 시끌시끌합니다. 삼성생명이 지난달 26일 이사회를 열어 금융감독원의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 구제 방안’을 거부한 데 이어, 9일에는 한화생명이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분쟁조정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삼성생명은 13일 즉시연금 상속만기형 가입자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채무부존재 확인소송까지 냈습니다. 삼성생명은 해당 민원에 대한 권리·의무 관계를 빨리 확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소송 사유”를 밝혔습니다. 사실상 정면충돌 궤도에 올라선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금융회사가 대놓고 당국의 결정에 반기를 드는 일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일반 기업체들과 달리 돈을 다루는 은행, 보험사 등은 매우 세밀한 수준까지 당국의 통제를 받고 있어, 불만이 있더라도 웬만하면 당국의 뜻을 따라왔던 것이죠. 흔히 얘기하는 ‘관치금융’의 뿌리입니다.

그렇다면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왜, 어떻게 반기를 들게 됐을까요? 또 그 반기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보험업계를 넘어 금융권 전체의 이슈가 돼버린 즉시연금 문제를 차분히 살피면, 우리나라 금융계의 여러 층위의 문제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즉시연금이 뭐길래? = 즉시연금은 일정 금액을 일시에 보험료로 납입한 뒤 시중금리와 연동된 공시이율을 적용한 연금(보험금)을 매달 받는 보험상품입니다. 2000년대 초반 출시돼 은행이자보다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고, 10년 이상 가입할 경우 세금도 면제돼 목돈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보험사들로서도 단번에 덩치를 키울 수 있어, 삼성·교보·한화 등 대형사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영업이 이뤄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삼성생명 즉시연금 한 가입자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에 민원을 냈습니다. 가입 때 설명했던 것보다 적은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애초 얘기한 최저보증이율 만큼은 지급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약속위반이란 것이죠.

분쟁은 ‘저금리 시대의 출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시연금의 비즈니스 모델이란 게 간단히 설명하자면, 보험료를 받아 시장에서 돈을 굴려 불린 뒤 이윤을 떼간 뒤 가입자에게 연금을 주는 것입니다. 연금액은 시장금리를 반영한 공시이율에 따라 정해지는데, 보험사들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이와 별도로 2~2.5% 수준의 최저보증이율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뒤 각국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저금리 기조가 자리를 잡았고, 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이에 보험사들은 만기환급형의 경우 원금에 최저보증이율을 곱한 액수보다도 적은 보험금을 지급했습니다. 보험사 쪽도 할 말은 있었습니다. 애초 받은 보험료에서 일정액의 사업비를 공제해야 하는데, 만기 때 이 사업비까지 마련해 되돌려주려면 평소 운용수익의 일부를 적립해둬야 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차이? =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삼성생명이 고객에게 건넨 약관에 사업비 적립 부분에 대한 설명이 없다며 민원인의 손을 들어줬고, 삼성생명도 이에 동의해 올해 2월 조정안이 확정됐습니다. 그런데 당국이 일괄구제 방침을 밝히면서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일괄 구제할 경우 삼성생명은 5만5천여명에 4300억원(금감원 추산)가량을 지급해야 했습니다. 조정안 확정 뒤인 3월 취임한 현성철 사장 등 경영진은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며 이사회에 일괄구제 수용 여부 논의를 넘겼고, 이사회 또한 같은 이유로 법적 판단을 받아보자며 법원에 공을 넘기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반해 한화생명은 결이 좀 다릅니다. 분쟁조정 결정 자체를 수용할 수 없다면서도 “법리적 논쟁 절차가 끝나는 즉시 같은 유형의 계약자들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도록 조처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자동차의 부품 결함에 비유하면, 삼성은 문제가 된 차량의 결함은 인정하면서도 리콜은 못하겠으니 법정으로 가보자고 한 셈이고, 한화는 결함이면 리콜을 하겠는데 결함이 아닌 것 같으니 재판을 받아보자고 한 것입니다. 소비자에 대한 도의적인 자세를 기준으로 보자면, 삼성이 비판받을 여지가 더 큽니다.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문제를 제기한 고객에게만 보상해주겠다는 태도는, 대다수 소비자를 기억력·관심이 떨어지거나 귀차니즘에 빠진 존재로 볼 때나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업들의 이런 오만한 자세 때문에, 선진국일수록 집단소송제가 활성화돼 있죠.

삼성과 달리 약관에 연금지급액과 관련해 ‘만기보험금을 고려하여’란 표현을 넣은 한화는 억울해하는 기색입니다. 하지만 그 또한 그냥 수긍하기엔 어려운 구석이 있습니다. 한화는 분쟁조정위 결정 불수용 논거 가운데 하나로 삼성과 달리 연금보험 상품 유형이 ‘거치형’과 ‘즉시형’ 두 가지 종류가 있고, 금감원 지적대로 ‘만기보험금을 차감하여’라고 하면 거치형과 즉시형 가입자를 차별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거치형은 보험료 불입 뒤 거치기간 동안 이자가 쌓이는 만큼 연금액을 더 줘야 하는데, 약관에 무조건 차감한다고 하면 거치형 가입자에게는 보험금을 덜 주란 얘기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는 문제가 안됩니다. 거치형 가입자는 그대로 둔 채 즉시형 가입자만 구제해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사회적 논란이 되는 것은 즉시연금인데, 갑자기 거치형연금을 끌고 들어와 방어용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금감원이 거치형 가입자에게서 다시 돈을 받아내라고 채근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또 회사 쪽 설명대로 상품 종류별로 연금지급액 산출 방법이 다르다면, 약관을 만들 때부터 즉시형과 거치형을 나눠 설명했으면 될 일입니다.

⊙ 보험사와 금융당국의 논거? = 이번 논란을 보면, 눈에 띄는 대목 가운데 하나가 양쪽 모두 ‘보험의 기본 원리’ 또는 ‘원칙’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보험사들은 운용수익에서 만기 때 돌려줄 원금을 만들기 위한 재원(만기보험금 지급재원)을 따로 적립하는 것은 연금보험의 기본 원리이자 상식이라고 주장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험사들도 엄연한 기업인데, 사업비 공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긴 하죠.

하지만 금융당국이 바라보는 포인트는 다릅니다. ‘그렇게 당연한 내용이라면 왜 약관에 제대로 밝히지 않았느냐?’는 것이죠.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제5조 ②)에서는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른바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입니다. 보험사와 가입자는 대등한 위치에서 보험계약을 맺지만, 양쪽의 보험에 관한 전문지식이나 이해도는 하늘과 땅 차이일 것입니다. 또 약관은 보험사가 만들고, 계약자는 이를 건네받을 뿐입니다. 사실 약관을 살펴보는 일도 거의 없죠. 따라서 약관에서 계약자(피보험자)에게 불리한 조항은 엄격하게 해석하고, 약관 내용 가운데 의미가 불명확한 대목이 있다면 그 불이익은 작성자가 감수해야 한다는 게 이 법률 조항의 취지입니다. 이를 인용한 대법원 판례도 여럿입니다.

그렇다면 보험사의 원리와 당국의 원칙 가운데 어느 게 우선일까요? 최종 결론은 법원에서 내려지겠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법령에 확실한 근거가 있는 ‘원칙’에 더 무게가 쏠립니다. 게다가 보험업법 하위 법령인 보험업감독규정(제7-59조)에서는 보험약관의 필수 기재사항으로 ‘적용이율 또는 자산운용 실적에 따라 보험금 등이 변동되는 경우 그 이율 및 실적의 계산 및 공시 방법 등’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보험사들은 약관에 ‘산출계산서에 따라’라고 적시돼 있고 또 산출계산서에 만기보험금 지급재원 적립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지만, 산출계산서는 보험사 내부 서류일 뿐 고객은 그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보험소송 수행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고금리 시기였던 1980년대 25% 확정배당금 지급을 약속했으나 시중금리 하락으로 확정배당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아 여러 소송을 이어졌던) 백수보험 사건에서는 상품설명서나 약관에 깨알 같은 글씨로 단서조항을 달아놓은 경우엔 법원에서 보험사 책임이 없다는 판결들을 꽤 내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보험사가 주장하는 내용이) 약관에 표현돼 있어도 설계사가 제시한 간략한 상품설명서 내용과 설명을 기준으로 (중요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면) 계약자 손을 들어주는 판결들이 내려지고 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보험금 산정 방법이 ‘상품설명서에 따라’라고 약관에 기재돼 있다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과도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삼성과 한화는 대형 로펌 4~5곳에 법률 해석을 자문한 결과 모두가 ‘약관상 문제가 없다’고 회신해 왔다며, 승소를 자신하는 분위기입니다. 여기에 정치권(자유한국당)과 언론(경제지 등)도 ‘당국이 승인한 약관 아니냐’,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기업 압박하면 안된다’며 은근히 보험업계를 거들고 있습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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