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처서(處暑)를 맞이 한 남이섬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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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는 지구라는 별 전체가 스스로 태어난 자생지 아닐까. 인간이 나눈 국경이란 나무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무는 어디든 꽃가루를 날리고 씨를 뿌릴 수 있다. <김선미 「나무, 섬으로 가다」 나미북스(2018), 214쪽>
약 14만평, 둘레 5km의 남이섬은 걷기에 딱 알맞은 크기다. 한바퀴 도는데 약 1시간, 천천히 걷다보면 2시간 안에 곳곳을 살펴볼 수 있다. 섬에서 산책하는 동안 가장 많이 마주치는 것은 태양광이 동력인 '스토리투어버스'다. 해를 가릴 지붕만 있고 사방이 뻥 뚫린 자동차 안에 앉은 관광객들은 운전대를 잡은 가이드 안내로 남이섬 곳곳의 사연 많은 나무와 정원 이야기도 듣는다. 스토리투어버스 승강장은 남이나루에서 나오자마자 나타나는 '나미숍 남이나루점' 옆에 과자집 모양을 한 '투어센터 매표소'에 위치해 있다. 자동차는 이곳을 출발해 섬 가장자리로만 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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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승차장 옆에 심어놓은 나무 때문에 봄부터 그곳을 찾았다. 기다란 타원형에 끝이 뾰족한 이파리가 특이한 잎맥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세 개의 주맥이 잎끝을 향해 길게 뻗어 잎을 세로로 길게 네 등분하고 있는 모양이 신기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나무 이름을 알아내기 어려웠다.
그런데 마침 꽃이 핀 것이다. 꽃이 먼저 짙은 향기로 나를 불렀다. 여름에 왜 라일락 향기가 날까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벌과 나비들이 잔칫집마냥 북적이는 나무 곁으로 끌려갔다. 이 향기로운 꽃나무는 내가 섬에서 지도처럼 의지하는 식물도감 안에 없었다. 결국 나무를 심은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나무 이름은 '칠자화' 였다. 중국이 원산지인 칠자화는 자생지에서 멸종위기에 있던 식물인데, 1980년대에 하버드대학 아놀드수목원과 미국 국립수목원에서 육종에 성공해 현재 정원수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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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자화는 뜨거운 여름에 짙은 꽃향기를 뿜어내는 꽃나무지만 진면목은 가을에 드러난다. 꽃이 진 뒤 남은 초록색 꽃받침이 점점 자라 붉게 변하면서 다시 한 번 붉은 꽃이 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묘목을 파는 사람들은 여름에는 흰 꽃, 가을에는 붉은 꽃, 두가지 꽃을 보는 게 칠자화의 매력이라 소개할 만큼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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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자화의 매력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칠자화 가운데 위치한 초록색 꽃봉오리는 그 아래 빙 둘러 친 여섯송이 꽃이 지고 난 뒤 새로이 여섯송이의 꽃을 피운다. 칠자화 꽃차례 역시 바깥에서 안쪽으로,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계속 꽃이 피어나는 무한화서다. '6+1=7'의 의미로 칠자화라 부르는 사실이 놀라웠다. 새로운 여섯송이 꽃을 하나로 보다니, 하나와 전체가 다르지 않다는 의미인가. 세상만물은 모두 하나로부터 출발한다. 하나가 곧 만물이고 부분과 전체가 다르지 않다는 의미를 칠자화 꽃 앞에서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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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희고 향기로운 꽃이 떨어진 자리에 남아 있던 꽃받침도 붉은 꽃처럼 보인다는 칠자화. 꽃잎만 꽃이 아니고 꽃받침도 꽃이라고, 아니 나무와 꽃이 다르지 않다고 일깨워주려는 모양이다. 다가오는 가을에는 칠자화의 가을 꽃을 만날 수 있다. 가을은 붉다.
*위 내용은 김선미 작가의 [나무, 섬으로 가다]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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