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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기레기’가 될 것이냐 ‘기자’가 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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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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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미드나이트 저널-사라진 유괴범을 쫓아라! 7년 전의 진실>

일본 도쿄와 가나가와에서 아동 연쇄 유괴 사건이 발생한다. 두 아이가 살해당하고 한 명은 실종된 상태에서 용의자가 붙잡힌다. 사건을 집중취재하던 사회부 기자 세키구치 고타로(다케노우치 유타카)는 실종 아동의 생사를 끝까지 추적해 생존 사실을 확인하지만, 편집부는 그가 미리 써둔 사망기사를 내보내고 만다. 세키구치는 오보에 대한 책임을 혼자 떠맡고 좌천된다. 공범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던 그의 기사도 무시당한다. 7년 뒤, 또다시 아동 납치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다. 세키구치는 7년 전 사건의 공범이 활동을 재개했음을 직감한다. 티브이도쿄 스페셜드라마 <미드나이트 저널-사라진 유괴범을 쫓아라! 7년 전의 진실>은 모두가 외면한 진실을 밝히려는 기자들의 이야기다. 인터넷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기자들조차 왜곡되고 과장된 보도로 신뢰를 잃어 ‘기레기’로 불리는 시대에, 언론의 윤리와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자들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핵심인물은 세 기자다. 저널리즘 정신을 의인화한 듯한 세키구치가 언론인의 이상을 대변한다면, 후배 기자 후지세 유리(우에토 아야)는 여성 기자로서 남성 중심 사회와도 대결해야 하는 이중의 고민을 보여준다. 차츰 언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가는 신입 기자 오카다 쇼타(간이치로)는 성장기를 담당한다.

드라마에서 특히 인상적인 지점은 오보를 다루는 엄격한 태도다. 이야기는 아동 연쇄 유괴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본격적인 출발점은 살아 돌아온 아이를 사망했다고 전한 오보의 순간에 있다. 엄밀히 말하면 속보를 제때 반영할 수 없는 종이신문의 인쇄 시스템이 원인임에도, 기자들은 이를 ‘세기의 대오보’라 부르며 수치스럽게 여긴다. 오보에 책임을 지고 엄중하게 대처하는 세키구치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편집부의 잘못이 더 큰데도, 세키구치는 자신의 이름으로 작성된 기사에 책임을 느끼고 피해자 가족을 직접 만나 사죄한다. 오보가 단순히 팩트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태도다.

진실을 향한 집념 또한 결국엔 이러한 윤리의식과 맞닿아 있다. 너무 특종을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동료 기자의 비아냥에 ‘특종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피해자의 생명에 대한 집착’이라 항변하는 세키구치와 후지세의 말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이를 증명하듯 특종의 기회와 윤리가 충돌할 때 주저 않고 후자를 선택한다.

드라마 속의 이러한 언론인들은 오랜 권언유착으로 악명 높은 일본에서도 이상적인 모습이겠지만, 이곳 한국에서 보면 더욱 심한 판타지다. 우리도 저널리즘이 후퇴하고 본격적인 ‘기레기 시대’가 열린 ‘세기의 대오보’ 사건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탑승자 전원 구조’라던 희대의 오보. 하지만 이 오보를 전했던 이들 중에 이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는 거의 없었다. 7년 전의 과오를 되돌려 진실을 바로잡은 드라마 속 결말이 못내 부러운 이유다.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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