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의 폭염도 어느덧 누그러지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끝에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인 가을 냄새가 물씬 묻어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름을 이겨내고 만나는 가을은 언제나 쾌적하고 풍요로운 느낌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말(馬)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마사회의 CEO로 근무하고 있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정말 가을에 말이 살찌느냐?”라고 묻곤 한다. 일반적으로 말은 봄에 번식을 하는 동물이라서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가을에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경주마의 경우에는 연간 체중 변화를 살펴보면 대체로 여름에 최저점을 찍고 서서히 증가해 겨울에 최고점을 찍는다. 규칙적인 훈련과 엄격한 관리를 받는 경주마라서 자연 상태의 말과는 차이가 있지만, 가을에는 말이 살찐다는 속설이 대체로 맞는 셈이다.
승마를 하다보면 천고마비의 뜻을 직접 몸으로 체득할 수 있다. 더운 여름의 승마는 사람도 말도 모두 힘들 수밖에 없다. 한시간만 승마를 해도 온 몸이 땀으로 젖고, 말도 가뿐 숨을 내쉰다. 그러나 지금처럼 여름의 끝자락에 승마를 하면 말도 힘이 난다는 것이 느껴진다. 조금 과장하자면, 마치 말(馬)이 “오늘같은 날 함께 운동할 수 있어서 즐거워요”라고 말(言)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랄까? 안장에 앉은 다리와 고삐를 잡은 손을 통해 말과 나누는 정서적 교감은 가을에 더욱 새롭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기마자세로 말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곤 한다. 여기에 청명한 가을 하늘까지 더해져 자연인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호접몽(胡蝶夢)속 장자와 나비의 이야기처럼 그야말로 내가 말인지, 말이 나인지 모르는 인마일체(人馬一體)의 경지이다.
덤으로 찌든 일상과 지독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이 저절로 치유되는 희열까지 맛볼 수 있으니, 이쯤되면 가을 승마는 보약이라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승마의 육체적인 또는 정서적인 측면의 우수한 효과는 많은 문헌과 연구결과에서도 보여지고 있다. 반려동물 천만시대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동물을 쓰다듬는 행위만으로도 혈압을 낮추거나 스트레스를 줄인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만큼 정서적 이로움이 크다. 또, 승마자세는 스쿼트 자세와 비슷해서 허벅지 근육을 탄탄하게 한다. 나이가 들면 특히 허벅지 근육량이 줄어든다. 무릎위 허벅지 근육을 대퇴사두근이라 부르는데 이 근육이 약해지면 무릎통증으로도 이어지게 된다. 승마가 곧 기마자세인 바, 이러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대퇴사두근의 근력과 크기를 증가시킨다.
신체능력 향상은 물론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정신적 힐링도 되고, 일석이조의 효과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필자도 가끔 즐기는 승마를 통해서 바른 자세의 중요성과 집중력 향상을 체감하고 있다.
이렇듯, 말 타기 좋은 계절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마사회는 지금승마보급을 위해 ‘전 국민 승마체험’ 사업을 시행 중이다. 귀족 스포츠라는 오랜 편견을 타파하고 일상 속에서 손쉽게 말을 타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전국에 운영되고 있는 120개소의 지정 승마장에서 총 10회의 승마강습에 참여할 수 있으며, 승마강습비용의 절반을 마사회에서 부담한다. 1인당 최소 5만원에서 최대 25만원만 부담하면 초급 승마강습을 받을 수 있다.
마사회는 이러한 일반국민대상 승마강습은 물론,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특수직종 근무자들인 소방관이나 경찰관에게 승마를 통해 심신을 단련하는 맞춤형 힐링 승마도 곧 시작할 예정이다.
폭염에 지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가을공기의 상쾌함으로 기운을 회복하고,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에 승마의 매력에 푹 빠져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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