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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일본 취업 쉽다고요? 확실한 ‘무기’가 있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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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일본 취업 청년들 만나보니

경기회복·고령화로 노동력 부족

구직자 100명당 일자리 163개

한국 청년들 일본 취업 증가세

사무직 일자리는 여전히 부족

“일본어만으로는 취업 쉽지 않아

기술·자격증·영어 등 장점 있어야”

한국과 기업문화 많이 달라

“근무시간에 개인 업무 안하고

…야근 때 저녁 각자 도시락으로”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차이 적고

각종 수당 등 복지제도 좋지만

초봉 낮고 집세 등 생활비 부담



▶일본에서는 잊을만하면 나오는 뉴스가 ‘노동력 부족 현상’입니다. 최근 한국 청년들의 일본 취업 시장 도전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와 코트라 등 여러 기관에서 지원도 하고 있습니다. 취업한 한국 청년들 중 상당수가 만족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돈을 벌며 산다는 것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기 힘든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실제 일본에 취업한 청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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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일본이 구인난이라고 해도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 아무나 채용하지는 않아요. ‘일본 구인난=쉬운 취업’이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정새미)

지난 6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에 있는 한 주점에서 일본에서 취업한 한국인 청년 네 명과 맥주잔을 앞에 놓고 마주앉았다. 이들은 대체로 일본 생활에 만족한다면서도 일본 취업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 정보통신(IT·아이티)기업에서 사용자인터페이스(UI) 디자이너로 일한 지 10개월 차인 정새미(29)씨는 일본에서 여섯 달 정도 ‘슈카쓰’(구직활동을 뜻하는 일본어)를 했다. 그는 “슈카쓰를 할 때 ‘일본은 구인난, 한국보다 넓은 일본 취업문’이라는 한국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공감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일본 생활 11년 차인 아이티 엔지니어 윤준영(32)씨도 “나도 처음 취업할 때 이력서를 100통쯤 냈다”며 “다만, 아이티 엔지니어의 경우 한국보다 일본이 기회가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아이티 기업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김수현(29)씨는 “면접을 보러 다닐 때 여러 대기업에서 ‘결혼은 할 것이냐’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여성이니 결혼하면 한국으로 일찍 돌아가지 않겠나’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김씨는 “성차별적이고 외국인 차별적인 질문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또 “일본 기업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 만큼, 이 사람을 채용하면 확실하게 쓸모가 있겠다고 판단이 들어야 채용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스타트업에서 디자인총괄(CDO)을 맡고 있는 정진호(37)씨는 “한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 취업 상담회에 참석할 일이 가끔 있는데, 한국 구직자들이 ‘일본 기업 취업 상황이 전반적으로 어떤가요’ 같은 막연한 질문을 많이 한다”며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와 기업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알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 취업문 넓어지긴 했지만…

“아무리 한국인이 일본어를 잘해도 일본인보다 잘할 수는 없잖아요. 전반적인 정보 습득 능력이 일본인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죠. 아이티 프로그래머처럼 기술이 있는 경우는 사정이 낫지만, 일반 사무직에서 일본인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고 느꼈어요.”

지난 4일 도쿄 롯폰기에서 만난 김승민(31)씨는 올해로 일본 생활 5년째인 노무사다. 대학생 때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고 한국무역협회 글로벌 무역인턴(무역협회에서 약 5주간 무역아카데미 교육을 마치고 나면 6개월간 하는 해외 인턴십) 경력도 있다. 대학 때 배운 일본어 능력을 살려 인턴십 뒤 일본 건설회사의 인사총무팀에서 근무했지만, 일본 직장 생활은 쉽지 않았다.

‘일본인과 경쟁할 수 있으려면 특기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김씨는 건설회사 근무를 하며 1년6개월 가량 준비한 끝에 일본 노무사 자격증을 땄다. “일본어 외에 뚜렷한 특기가 없는 한국인은 사무직으로 취업해도 나중에 힘들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은 사람이 부족하니까 일단 뽑고 보는 경우도 있는데, 나중에 자신이 애매한 위치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있어요. 사무직 취업에 성공하려면 영어나 중국어 같은 외국어를 잘한다든지, 굉장히 적극적이라든지 하는 자신만의 장점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한국 청년들이 일본 취업 시장에 도전할 만하다고 본다. 일본에서 취업해서 한국 동종 업계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올리는 이들도 있다”며 “하지만 각오를 하고 철저히 준비한 뒤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일본에서 한국인은 어디까지나 ‘외국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해고된 뒤 직장을 새로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취업비자 기간이 만료되면 일본을 떠나야 합니다. 잔업 수당 미지급이나 ‘파워하라’(power harassment, 직장 내 괴롭힘) 같은 문제가 발생할 때는 노동자 개인이 의식적으로 증거를 수집해놓아야 합니다. 당국에 신고하는 것만으로는 현실적으로 직접 구제받는 것이 힘들어 민사소송을 제기하거나 중재기관을 통해 합의를 해야하는데, 비자 기간이 제한돼 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는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인 취업은 증가 추세다.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일본에서 화이트컬러로 취업할 수 있는 비자인 기술·인문·국제 비자를 취득한 한국인 숫자는 2013년 1만5307명에서 지난해 2만1088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새로 이 비자를 취득한 사람은 해마다 1000명대였으나, 2016년 2487명으로 증가율이 두배로 늘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 기업에 취업한 한국인 수(워킹홀리데이, 유학생 아르바이트 포함)는 지난 2013년 3만4100명에서 지난해 5만5926명까지 증가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채용 설명회에 참가하는 일본 기업들도 늘고 있다. 일본의 인터넷검색업체인 야후 재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한국에서 열리는 채용 설명회에 참가하고 있다”며 “지난 1일 기준으로 엔지니어, 디자이너 등 50여명의 한국인이 야후 재팬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취업자가 증가하는 원인은 노동력 부족이 가장 크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지난 7월 유효구인배율(구인자 수를 구직자 수로 나눈 수치)은 1.63으로 197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구직자는 100명인데 일자리는 163개가 있다는 의미다.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사업체가 문을 닫는 현상을 일컫는 ‘일손 부족 도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노동력 부족 현상은 소위 ‘아베노믹스’로 인한 경기 회복세와 고령화라는 인구 구조적 배경이 복합된 결과다. 일본 총무성이 집계한 인구 추계를 보면, 15살~64살인 ‘생산연령 인구’(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연령대 인구, 일본 거주 외국인 포함)는 1995년 약 8700만명으로 최고점을 기록한 뒤, 계속 줄어들어 지난 3월 기준 7564만명까지 떨어졌다. 특히 19살 이하 인구 비율은 1990년 26%였는데 지난 3월 기준 17%까지 내려갔다. 일본 취업정보 제공 기업 ‘마이나비’가 지난달 내년 봄 졸업 예정인 대학생·대학원생 내정률을 조사해보니 79.7%에 달했다. 일본 기업은 보통 대학 4학년생에게 정식 입사에 앞서 내정이라는 형식으로 합격 통지를 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사무직 일자리는 취업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7월 유효구인배율을 분야별로 보면 ‘건설 골조공사’가 10.89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가사 업무인 ‘가정생활 지원 서비스’(6.81)였다. ‘일반 사무 업무’는 0.36으로 구직자보다 일자리가 훨씬 적었다. 기업 규모별로 봤을 때도 대기업은 취업이 쉽지 않다. 일본 취업정보 대기업인 리쿠르트 산하의 ’리쿠르트워크스연구소’가 지난 4월 내년 3월 졸업 예정인 대학·대학원생 유효구인배율을 조사해보니 종업원 300명 미만 기업의 경우에는 9.91이었으나 종업원 5000명 이상 기업은 0.37에 그쳤다.

한국과 다른 기업문화

김아무개(41)씨는 2010년대 초반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에 사무직으로 입사했다가 개인 사정으로 3년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일본 대기업의 한국 지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일본어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그는 “그 회사 안에서 영어 실력은 내가 가장 나은 수준이었다. 영어 구사 능력이 없었으면 회사에서 나를 뽑을 이유가 없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연봉도 높았고 주택수당(주택 임대료 지원금)이 매달 17만5000엔(약 175만원)씩 나올 만큼 회사 복지도 좋았다.

그는 “생각보다 한국과 일본 기업의 문화적 차이는 꽤 컸다”고 회상했다. “일본에 있는 기업에서는 근무 시간에는 개인적인 용도로 휴대전화 조작을 되도록 하지 않는다. 문자를 보낼 때도 책상 밑으로 전화기를 내려서 숨기듯 한다. 야근할 때도 한국에서는 다 같이 나가서 밥을 먹고 왔는데, 일본에서는 각자 나가서 도시락을 사 와 사무실 자기 책상에서 혼자 앉아서 먹는다”고 말했다. “일본 회사가 한국 회사보다 근무하기 편하다고 느낀 적도 많았어요. 일본 회사에서는 회식 때 아무도 술을 강권하지 않고, 우롱차를 마셔도 상관 안 합니다. 군대 문화도 전혀 없고요. 하지만 개인주의적인 분위기가 강해서 조금 외로웠습니다.” 그는 “개인적인 이유로 한국에 돌아왔지만 일본 직장 생활에는 대체로 만족했다”며 “다만 원래 내 적성에 맞는 영업 업무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당시에는 취업이 급해서 일단 입사를 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의 임금 상승 패턴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신입사원일 때 일본 기업 초봉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낮은 경우도 있다. 후생노동성이 지난해 대학·대학원 졸업 남성 노동자 월급(휴일 및 시간외 근무 수당 제외, 세전 기준)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24살은 평균 22만7000엔(약 229만원)이다. 하지만 입사 5~7년 차부터 임금 상승 폭이 커지면서 전체 생애 소득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25~29살 때 평균 26만3900엔(266만원)으로 오르고, 30~34살이 되면 평균 32만1300엔(324만원)으로 오른다. 50~54살이 되면 53만3300엔(537만원)으로 정점에 이르고 이후 줄어든다. 여성의 경우에는 임금 상승 곡선이 남성보다 완만하다. 윤준영씨는 “아이티 엔지니어는 상장기업의 경우 연봉이 300만엔(약 3천만원) 정도인데, 5년 차가 되면 600~700만엔(6천만원~7천만원) 정도로 오른다”고 말했다. 일본 취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월급 수준과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 일본의 물가다. 윤씨는 “일본의 생활비 수준을 고려하면 처음 1~2년은 실질적으로 한국보다 순수입은 적다”고 말했다. 일본 생활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주택 임대료다. 주택 임대 정보 사이트 ‘스모’가 서울과 비슷한 면적인 도쿄도 내 23구에 있는 원룸 임대료 평균 가격으로 제시한 금액을 살펴보면 가장 싼 에도가와구가 5만6000엔(56만원)이다. 중심지인 주오구와 미나토구는 각각 8만2000엔(82만원)과 7만5000엔(75만원)이다. 결혼을 해서 1LDK(방과 거실, 주방이 1개씩인 집) 정도라도 살려면, 가장 싼 에도가와구도 8만4000엔(84만원)이 평균 가격이다. 일본에는 전세제도가 없다.

일본 회사들은 대체적으로 사내복지 제도가 잘 갖춰진 편이다. 교통비 지원은 대부분 회사가 해준다. 기혼자는 아이가 없어도 가족수당이 지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주택수당은 지급 안 하는 회사도 많고, 액수도 천차만별이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일본 취업 한국인 143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회사에서 주택수당을 받는다는 사람은 51%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비교적 적은 점도 특징이다. 후생노동성이 지난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종업원 1000명 이상 대기업 초임은 21만1100엔(212만원), 중기업(100~999명)은 20만2500엔(204만원), 소기업(10~99명)은 19만9600엔(201만원)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연차가 쌓이면 임금 차이가 커진다.

일본에 취업한 한국인 직장인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결국 구직자에게 중요한 부분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본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목표를 확실히 정해두는 게 좋습니다.”(윤준영)

“일본어 외에 본인만의 확실한 장점이 따로 있어야 합니다.”(김승민)

“자신이 앞으로 쌓을 커리어를 장기적으로 구상해야 합니다.”(김수현)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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