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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문 대통령은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왜 굳이 통보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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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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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만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화해·치유재단’을 사실상 해산하겠다는 뜻을 통보했습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국민의 반대로 화해·치유재단이 정상적 기능을 못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들어 “지혜롭게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이죠.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 쪽에서는 ‘뒤늦은 추석선물’이라며 환영했습니다. 반면 일본 정부는 굉장한 ‘거부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입니다.

안녕하세요. 통일외교팀에서 화해·치유재단을 취재해온 김지은 기자입니다. 화해·치유재단은 2015년 12월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한·일 정부 간 합의’(12·28 합의)의 뼈대 가운데 하나입니다. 양국은 이때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양국 정부가 협력해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를 위한 예산으로 일본 정부는 ‘10억엔 정도’를 상정했습니다. 합의에 따라 ‘재단’과 ‘10억엔’은 한·일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확인하는 근거가 됐습니다.

피해 당사자와 지원 단체들의 반발은 거셌습니다. 일본 정부는 10억엔이 ‘법적 배상금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외무상을 통해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했지만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죠. 사정이 이런데도 재단은 2016년 7월28일 출범을 강행합니다. 이사장은 김태현 성신여대 명예교수가 맡았습니다.

그해 8월 말 일본 정부는 재단에 10억엔(108억원)을 송금했습니다. 재단은 이 돈으로 생존자(2015년 12월28일 기준) 46명 가운데 34명과 사망자 유족 58명에게 각각 1억원과 2000만원씩을 지급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는 “위로금을 받고 우리를 팔아먹은 것”이라며, 피해자 11명과 함께 한국 정부를 상대로 각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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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이 말한 “(재단이)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지난해 말 이사진 11명 가운데 5명이 사의를 밝히면서 벌어졌습니다. 김 이사장과 2명의 이사진은 그보다 몇개월 앞서 사임했습니다. 정관상 당연직 이사인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과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 재단 사무처장만 남은 상황에서 재단 사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죠. 재단은 9개월째 개점휴업 상태에서 사무실 운영과 인건비 등으로 매달 2750만원씩을 지출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7월 ‘일본정부 출연금 10억엔 충당' 명목으로 103억원의 예산을 편성합니다.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엔을 전액 대체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재협상은 없다”고 밝힌 정부가 사실상 12·28 합의 무력화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이후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 설치 등 후속 조처를 잇달아 내놓습니다. 아울러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전시 여성 성폭력의 문제, 인류 보편적 여성 인권의 문제”라고 강조하죠. 일본과 직접 마찰하는 대신 국제무대에서 ‘우회 타격’을 지속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습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재단 해산’을 통보했을까요? 지난 3일 폭우가 쏟아지는 아침, 외교부 후문에서는 김복동 할머니와 정의기억연대의 ‘2차 국민행동’이 시작됐습니다. 이들은 매일 재단의 즉각적인 해체를 요구했습니다. 12·28 합의를 우회하려는 정부의 태도를 거부한 것이죠. 2015년 12월28일 이후 피해자 할머니들과 지원 단체들은 ‘12·28 합의의 전면 무효화’ 주장을 한번도 굽힌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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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현재 ‘위안부’ 생존 피해자는 28명입니다. 재단에는 약 58억원이 남아있습니다. 정부가 새로 편성한 103억원의 용처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번 ‘통보’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지향과 ‘정부 간 공식 합의’라는 현실, ‘국민 정서’와 ‘한-일 관계’ 사이에서 어느 쪽도 온전히 충족하지 못했던 문 대통령의 기존 행보와는 다른 결정으로 풀이됩니다. 재단 해산은 12·28 합의의 뼈대를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은 피해자 중심주의와 국민 정서에 한발짝 다가선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김지은 통일외교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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