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에 대한 새로운 사회통합 모델을 제시하며 세계적으로 주목 받아온 도메니코 루카노 이탈리아 리아체 시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
극우성향 이탈리아 중앙 정부의 반(反) 난민 정책이 폭주하고 있다. 난민의 유입을 틀어 막는 것도 모자라 이미 정착해 살고 있는 사람까지 쫓아낼 태세다. ‘난민들의 도시’로 유명한 이탈리아 남부의 리아체 난민들이 첫 번째 타깃이 됐다. 이들은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다른 도시로 강제 이송될 처지에 놓였다.
13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이탈리아 내무부는 지난 9일 리아체에 거주하는 난민들을 다음주부터 다른 지역의 수용시설로 강제 이주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탈리아 현지 매체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는 “(이주민들이 운영했던) 모든 사업장 역시 문을 닫아야 한다”며 사실상의 리아체 도시 폐쇄 명령이라고 전했다.
내무부의 강경 조치는 리아체를 난민 친화적 도시로 일궈낸 도메니코 루카노(60) 리아체 시장을 체포한 지 일주일 만에 나온 것이다. 루카노 시장은 난민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가짜 결혼을 주선했다는 혐의로 현재 가택연금 상태다.
리아체는 전 세계적으로 난민 정착촌의 모범 사례로 꼽혀 왔다. 1990년대 가난을 이기지 못해 원주민들이 모두 대도시로 떠나면서 ‘유령도시’로 불렸지만, 2002년 루카노 시장 취임 이후 수백 명의 아프리카 난민을 효과적으로 받아들여 도시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루카노 시장은 난민들에게 버려진 집을 제공하고, 지역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등 직업 훈련을 시키며 이들의 정착을 체계적으로 도왔다. 도시 인구의 4분의1에 달하는 2,000 여명의 난민이 리아체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인력으로 성장했다. 루카노 시장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 받아 2016년 미국 잡지 ‘포춘’이 선정한 세계 50대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리아체 거주 이주민들은 루카노 시장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집단행동도 불사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리아체 시당국의 난민 지원 자금이 불투명하게 쓰였다는 점을 물고 늘어지고 있지만, 난민 친화적 정책을 못 마땅해하는 정부의 표적 수사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루카노 시장도 “그들은 단지 우리를 파괴하고 싶어할 뿐”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탈리아 최초의 흑인 여성 공직자 출신인 세실 키안주 전 국민통합 장관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루카노 시장이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느냐”며 “인권과 연대감이 문제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세계적 작가 로베르토 사비아노 역시 “이 정부는 이탈리아를 민주 국가에서 전체주의 국가로 바꾸려는 첫 번째 걸음을 뗐다”고 격하게 정부를 비판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