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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법원행정처 차장’ 임종헌이 ‘대법관의 행동대장’ 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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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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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0순위야.”

2016년 겨울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타사 기자가 그를 두고 말했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그는 과거 <한겨레> 출입기자가 양승태 대법원장 앞에서 ‘상고법원’을 비판했다며 불쾌함을 내비쳤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미 지나간 이슈였기 때문에 저는 ‘상고법원이 대체 뭐길래…’하고 넘겼습니다. “상고법원 입법은 CJ(대법원장) 최대 역점 사업. 입법실패는 대법원장님의 리더십 상실이라는 최악의 위기 상황 초래(<상고법원 관련 비에이치(BH) 대응전략>).” 행정처가 이런 문제의식으로 청와대의 상고법원 동의를 얻으려 재판을 거래나 흥정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2년 뒤 밝혀졌습니다.

안녕하세요? 법원을 출입하는 김민경 기자입니다. 지난 15일 ‘재판 거래’ 의혹으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포토라인 앞에 선 임종헌 전 차장을 보며 옛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대법관 0순위였지만 사법농단 사태의 시작인 ‘판사 뒷조사’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난해 3월 대법관이 되지 못하고 법원을 떠났습니다.

법원조직법을 보면 “차장은 행정처장을 보좌하여 행정처의 사무를 처리하고, 판사 중에서 대법원장이 보한다”고 합니다. 행정처 차장이 ‘대법관 0순위’라는 건 경험적으로 증명됩니다. 윤관 대법원장이 취임한 1993년부터 임종헌 전 차장이 물러난 2017년까지 행정처 차장 18명 중 16명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이 됐습니다. 대법관 제청 권한은 대법원장에게 있습니다. 헌법재판관 4명도 2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고, 2명은 국회에서 선출됐습니다. 이용훈·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진성 전 헌재소장, 현직인 권순일 대법관 등이 모두 행정처 차장을 거쳤습니다. 차장으로서 대법관이나 재판관이 되지 못한 2명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임명한 강형주 전 서울중앙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인데, ‘사법농단 사태’가 아니었다면 이들 역시 선배 차장들의 전철을 밟았을 겁니다.

‘차장 불패’ 신화는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차장은 대법원장이 임명합니다. 대법원장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역대 차장들도 자신을 차장으로 임명한 대법원장의 제청이나 지명을 통해 대법관, 헌법재판관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대법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차장이 대법원장의 ‘행동대장’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신화의 뿌리는 막강한 인사권을 독점한 대법원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임 전 차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행정처 차장은 태생적으로 대법원장의 지향을 쫓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장의 ‘역점사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차장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행정처의 관료화는 과거에도 지적됐습니다. 그렇지만 양 전 대법원장 때처럼 청와대에 잘 보이려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삼아 사법부 전체를 위기로 내몬 적은 없었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을 업적으로 남기려 했고, 사법행정에 대한 비판과 대법원 판결과 다른 하급심 판결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임 전 차장도 기조실장부터 차장까지 4년7개월 동안 행정처에 근무하며 양 전 대법원장의 정책에 “남다른 열정과 강한 추진력”을 보였습니다. 그는 청와대 국정 운영에 협조한 판결을 나열하며 “판결을 거래나 흥정의 수단”으로 삼는 문건을 직접 작성하거나, 다른 행정처 심의관에게 작성하게 시키며 판사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습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일본 징용 손해배상이나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취소 소송에 직접 개입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대법원장이 나오든 제2의 임 전 차장이 없어 지려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합니다. 대법원장의 손과 발이 될 행정처를 없애고, 이를 대체할 법원 사무처에 판사를 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참에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의 분산도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김민경 법조팀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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