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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차이나 인사이트] 시진핑 주석은 왜 갑자기 아베 총리에 러브콜 보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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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카쿠 영유권 분쟁 빚은 중·일

6년 만에 대화 모드로 급전환해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 전망에

우군과 기술 노린 중국 계산 작용

강한 미·일 동맹이 일본 몸값 올려

한·미 동맹도 대중 관계의 큰 자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5일 2박 3일 일정의 중국 방문에 나선다. 일본 총리의 방중은 2012년 일본 정부가 센카쿠(尖閣, 중국명 釣魚島) 열도에 대해 국유화 조치를 단행해 중·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한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의 초청으로 베이징을 찾는 아베 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중·일 관계에 왜 갑자기 훈풍이 부는 걸까. 아베 총리를 부른 시진핑 주석의 속내는 무언가.

중국과 일본은 1972년 국교를 정상화했지만 지난 6년간 최악의 세월을 보냈다. 영유권 분쟁 탓이다. 일본이 동중국해의 센카쿠 열도를 국유화하자 중국이 격렬하게 반발하면서다. 중국은 이후 중·일 관계 개선을 위해선 일본이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고,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 행동’을 보이라는 주장을 펴왔다. 또 일본 압박을 위해 양국 최고 지도자의 상호 방문을 전면적으로 중단시켰다.

중앙일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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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그간 일본에 관계 개선을 위해 요구한 건 센카쿠 열도가 분쟁 지역이라는 것을 일본이 인정하는 한편 미·일 동맹을 통해 남중국해 문제 등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걸 중지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이 이러한 중국의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는데도 중국은 아베 총리의 방중을 허용했다. 중국 스스로 자신의 강경한 입장을 누그러뜨린 것인데 이는 무슨 까닭인가.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2일 아베 총리의 방중을 발표하면서 “마침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을 맞았다”고 말했다. 78년 10월 23일 도쿄에서 비준서가 교환되며 발효된 중·일 평화우호조약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대외 포장용이다. 속내는 따로 있다. 바로 현재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미·중무역전쟁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분쟁을 전략적 경쟁의 일환으로 본다.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필요한 건 하나라도 더 많은 우군의 확보다. 일본을 가능한 한 중국편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친구가 하나 더 늘면 살아갈 방도도 한 가지 더 생긴다(多一個朋友 多一條路)’는 중국식 사고가 바탕에 깔렸다. 중국이 일본에 우호적 손길을 내미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기도 하다. 미국과의 갈등 이후 미국으로부터 첨단 산업기술을 얻기 어려워졌다. ‘중국인=산업 스파이’란 인식이 미국에 팽배하면서 미국의 경계심이 한껏 고양됐다. 중국의 일본 접근엔 미국서 빼 오기 힘든 기술을 일본으로부터 얻자는 계산도 한몫 하는 것이다.

일본도 중국의 러브콜이 싫지는 않다. 비록 미국이 일본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긴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변덕스러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일본의 입지를 높이는 계기로 작용한다. 또 센카쿠 열도에 대한 중국의 도발을 잠재우는 효과도 기대된다. 결국 이번 중·일 정상회담은 단기적으로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이뤄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중·일 관계는 밀월을 구가할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양국 관계에 놓인 구조적 문제가 더 크기 때문이다. 바로 ‘역사적인 경쟁의식’이 중·일 관계 개선의 발목을 계속 잡을 전망이다. ‘역사적인 경쟁’이란 말 자체가 무리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국토와 인구에서 일본이 중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 탓이다. 그러나 중·일 관계가 역사적으로 불신과 증오로 점철돼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은 오랫동안 동아시아에서 자국 중심의 위계적 중화질서를 구축하고 이웃 국가들의 순응을 요구했다. 반면 일본은 중화질서의 밖에서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중국에 대해 동등함을 주장했다. 일본은 자신의 위치를 ‘아시아 동쪽에 있는 섬’이 아니라 ‘태평양 서쪽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섬’으로 설정해왔다. 쇼토쿠 태자는 607년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편지를 보낸다”고 했다.

근대 들어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이기며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를 와해시켰다. 1932년엔 중국 동북에 괴뢰정권인 만주국을 설립했고 37년부터는 본격적인 중국 침략에 나섰다. 중·일 간 불신과 증오의 역사 유산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중국과 일본이 냉전 시기에 한동안 안정적 관계를 유지한 건 무슨 이유인가.

중·일 모두 안보적으로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바란 중국이 일본에 대한 복수를 전략적으로 자제한 것도 이유다. 마오쩌둥이 “일본의 중국침략 책임은 일본 정부에 있고 일본 국민에겐 없다”며 72년 관계 정상화 시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포기한 건 이런 배경에서다. 일본은 감격했고 중국에 대한 사죄의 표시로 경제적 지원에 나섰다.

그런 중·일 관계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건 냉전이 끝난 90년대 초 이후다. 우선 안보적으로 소련이 해체되며 공동의 적이 사라졌다. 경제적으론 2010년 중국 GDP가 일본을 넘어서며 중국이 더는 일본에 대한 전략적 자제를 하지 않게 됐다. 이에 따라 중·일 관계엔 ‘부상하는 중국, 이것이 달갑지 않은 일본’의 구도가 형성됐다.

중국은 아베 정부를 재무장하기 위해 긴장을 일으키는 문제아로 본다. 반면 일본은 시진핑 정부가 패권적인 중화제국의 지위 회복을 노린다며 우려한다. 전후에 잠재돼 있던 중·일의 역사적 경쟁의식이 또다시 불을 뿜을 기세다. 이런 가운데 중·일 모두 동아시아 중요 국가인 한국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려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2014년 방한 시 강연에서 “명나라 등자룡 장군과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순직했다”며 항일을 강조한 게 한 예다. 반면 일본은 “한국은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며 권위주의적인 국가 중국에 대해 한·일이 함께 견제에 나설 것을 희망하고 있다.

우리로선 이웃 나라인 중·일이 향후 상당 기간 갈등을 겪을 것이란 점을 전제로 중·일 관계의 추이를 예의주시하면서 우리의 국익을 냉정하고 균형 있게 추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아베 총리의 방중에서 우리가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이 있다. 중국이 일본에 구애하는 이유가 일본이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기 때문이란 점이다. 이는 굳건한 한·미 동맹이 우리의 대중 관계에서도 훌륭한 자산이 될 것을 말해준다.

◆연상모
외교부 중국과장·주비엔나 대표부 참사관·주일본 공사참사관·주상하이 부총영사·주니가타 총영사로 근무했다. 대만 국립정치대 석사·성신여대 박사. 서울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연상모 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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