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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 조약인 한일청구권협상과는 별도로 일본의 전범기업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민사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왔다. 1945년 광복 후 73년만으로, 피해자들이 1997년 일본에서 처음 소송을 낸 이후로 21년 만이다. 이번 판결은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제기한 동일한 소송에 대해 일본 최고재판소가 내린 패소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으로 향후 일본과의 외교적 분쟁이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30일 이춘식 씨(94) 등 1941~43년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된 피해자 4명이 일본 전범기업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사건에서 피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앞서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 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3명의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에서 김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7명이 다수의견을 냈고, 결론은 같지만 판결 이유를 달리한 대법관 4명이 별개의견이 나왔다. 권순일 조재연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이 된 1965년 한일협정문의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2조에 따르더라도 “개인적 손해배상청구권은 이미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인정했다. 이 조항에는 일본이 한국에 5억 달러의 경제협력금을 제공하는 것으로 “양국의 모든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문구가 있다. 앞서 2012년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가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反)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 것과는 같은 판단을 한 것이다.
이번 사건은 2005년 2월 이 씨 등 피해자 4명이 국내에서 첫 소송을 제기한 후 1, 2, 3심과 파기 환송심까지 네 차례 법원의 판단을 받았다. 앞서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3년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는 합법적이기 때문에 일본이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한국인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은 모두 일본의 판결을 받아들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지만 2012년 대법원은 “일본 법원의 판결 이유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라며 판결을 뒤집었다.
서울고법은 파기환송심에서 이를 그대로 인정하며 “피해자 1명에게 1억원 씩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신일본제철이 대법원에 재상고를 했고 대법원은 5년 가까이 선고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판결 지연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되자 올 7월 사건을 전격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반발한 일본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 방침을 굳히면서 외교 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경제협력협정을 한국 정부가 어긴 것으로 보고 대응 절차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국내 여론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제법상 다수 해석에 어긋난 판단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김윤수 기자 y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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