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 대응 평양에 고층 호텔
외국 기업 손별려 겨우 완성
“원산-금강산 투자” 사이트 개설
대북제재 해제 대비하는 모습도
김정은 건설장서 “제재 책동” 비난
제재 탓 말고 비핵화 이행 나서야
북한, 무역사이트 개설한 이유는
평양 시내에서 바라본 유경호텔.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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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권력이 넘겨진 이후에도 북한 경제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었다. 1994년 김일성 국가주석 사망 직후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은 대량 아사 사태 등으로 북한 체제의 근간을 뒤흔들 정도였다.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와 각종 투자유치 구상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핵 개발과 미사일 도발로 인한 대북 제재는 북한 경제의 숨통을 더욱 조였다. 이런 국가체제를 이양받은 28살의 청년 지도자 김정은이 좌절하는 모습을 보인 건 당연했다. 집권 초 대표적 놀이공원인 만경대유희장을 방문했을 땐 폐허가 되다시피 한 시설을 한탄하며 직접 허리를 숙여 잡초를 뽑았다. 자신이 스위스 조기유학 때 경험한 세계적 명성의 워터파크와 유람선·스키장을 본떠 평양과 지방 도시에 대규모 건설사업을 벌였지만 그뿐이었다.
노동당과 경제관료 등이 다시 경제건설과 해외 자본 유치를 언급하기 시작한 건 올해 들어 북한이 대남·대외 유화노선으로 선회하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평양의 트럼프 타워’까지 떠올리며 미국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에 나설 수 있을 것임을 알렸다. 문재인 정부도 철도·도로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추진하기 위한 대북제재 우회전략 등을 다각도로 모색 중이다.
‘비핵화’에 뻣뻣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듯 하지만 북한도 제재 해제 이후를 준비하는 징후가 드러난다. 지난달 중순 오픈한 대북투자 유치 인터넷 사이트 ‘조선의 무역(http://www.kftrade.com.kp)’에는 해외자본을 끌어들이려는 북한 당국의 생각이 드러난다. 이곳엔 북한의 무역 정책과 법규·투자 대상·경제개발구는 물론 주요 상품도 사진과 함께 구체적으로 소개돼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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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되는 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힘을 실어주고 있는 원산갈마해안광광지구 건설 관련 부분이다.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의 호텔과 발전소·철도·식당·편의시설 등 투자 대상 14곳을 ‘조선의 무역’ 사이트는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호텔이 7개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동명호텔과 송도원호텔·해안호텔을 리모델링하고 동정호호텔과 시중호텔·총석정호텔 등을 새로 건설한다는 게 북한 측의 설명이다. 각 대상별로 상세한 구상도 제시하고 있는데, 송도원호텔의 경우 207개 객실에 407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1000석으로 늘려 5성급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했다. 북한은 “금강산과 총석정·마식령스키장·명사십리 등 관광명승지의 중심 위치에 놓여있는 원산 관광객을 위한 숙박 능력은 현재 1500명 규모로 하루 4000명으로 예견되는 방문 숫자에 비해 숙박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 국가설계지도국의 ‘원산-금강산 관광지구 개발 총계획’ 에 따르면 오는 2025년까지 78억 달러(약 8조5000억원 규모)를 투입해 원산-금강산 지역을 국제관광지구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이 지역에 구체적 투자유치 구상이 공개된 건 김정은 위원장의 원산 챙기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북한 고위 인사들은 ‘원산 관련 사업이나 지시는 무조건 선차적(최우선)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판단이 노동당과 내각·군부 핵심 인사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고 방북 교포 인사 등에게 귀띔한다. 원산 갈마공항 옆 해변 송림 일대에 건설 중인 대규모 해양리조트에는 최정예 군인 건설자와 돌격대 등이 총동원됐다. 평양시 뉴타운 건설에 투입됐던 인력과 장비·물자도 갈마지구에 집중 투입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원산과 김 위원장의 인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대북정보 관계자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가 재일교포 북송선을 타고 처음 도착한 곳이 원산이기 때문에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희가 한때 북한 권력 내부에서 ‘원산댁’으로 불렸다는 첩보도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말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그는 대북제재를 비난하며 해양리조트 건설이 "적대세력들에게 들씌우는 명중 포화”라고 말했다. 주민 불만을 누그러트리고 공사에 속도를 내기 위한 대내용 언급일 수 있다. 하지만 비핵화 합의 실행을 머뭇거리며 모든 탓을 대북제재로만 돌린다면 북한이 맞닥트린 답답한 현실을 돌파할 리더십은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 이 기사의 취재·제작에는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이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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