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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라돈 사태’, 음이온에 홀려 놓친 생활방사선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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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끊이지 않는 라돈 사태

5월 침대에서 라돈 검출 충격

베개, 생리대, 매트 등에서도 검출

실체 모호한 ’음이온 효과’ 믿고

방사성 원료 무분별 사용한 결과

신체밀착 제품엔 사용금지 추진

라돈 통합관리체제 필요성도 제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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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들이마시면 폐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는 방사성물질인 라돈이 우리 주변 생활용품들에서 잇따라 검출돼 생활방사선 안전관리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대진침대 사태로 시작된 ‘라돈 사태’가 6개월이 지났지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라돈 사태가 확산되고 있는 근본 원인을 들여다봤다.


이른바 ‘라돈 사태’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대진침대의 라돈 검출 사태 이후 베개 등 다른 생활용품에서도 라돈이 검출된다는 소비자들의 고발이 이어졌다. 최근에는 생리대에 이어 온수매트에서도 라돈 방사선이 검출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5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제보를 받아 일부 온수매트 제품을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멈추지 않는 ‘라돈 사태’는 그동안 소홀히 다뤄진 ‘생활방사선’ 관리의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집집마다 라돈 측정, 드러난 라돈 방사선

방사선을 방출하는 기체인 라돈(Rn-222), 그리고 라돈의 동위원소 토론(Rn-220)이 국민적 관심사가 된 것은 지난 5월이었다. 음이온이 나온다는 친환경 대진침대 제품에서 뜻밖에도 방사성원소인 라돈이 다량 검출된다는 사실이 한 언론의 심층취재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아이를 위해 음이온 침대를 들여놓은 한 아이 엄마가 몇 달 전 우연히 휴대용 라돈 측정기에서 침대 주변의 라돈 검출을 발견해 전문측정업체에 문의하면서 ‘라돈 침대’의 실태가 알려지게 된 사연도 전해졌다. 파장은 컸다. 첫 보도가 나온 나흘 뒤인 5월8일 대진침대 쪽은 “매트리스 소재로 쓰인 물질에서 라돈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는 사과문을 내고 관련 제품들을 회수하겠다고 발표했다. 5월15일 원안위는 정식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대진침대 쪽에 관련 침대 제품들의 수거 명령을 내렸다. 이후에 우정사업본부까지 나선 전국적인 침대 수거 작전이 온 나라에서 떠들썩하게 벌어졌다.

문제의 근원은 흔히 ‘음이온 파우더’ 등으로 불리는 모나자이트라는 광물이었다. 모나자이트는 방사성원소인 토륨과 우라늄이 들어 있는 천연광물로, 토륨과 우라늄 원소가 방사선을 내며 붕괴할 때 또 다른 방사성원소인 토론과 라돈 기체를 만들어낸다. 특히 라돈은 숨 쉴 때 몸에 들어와 심한 경우엔 폐암을 일으킬 수 있어, 세계보건기구(WHO)는 라돈을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10여년 전인 2007년에도 모나자이트 원료를 쓴 돌침대에서 기준치를 넘는 라돈 방사선이 검출돼 큰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파장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번엔 달랐다.

개인이 쓸 수 있는 간이 라돈 측정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소비자들이 라돈 방사선 측정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동안 무심하게 쓰던 생활제품들에서 라돈 방사선이 잇따라 검출됐다. 해외여행 때나 직구를 통해 사들인 중국·타이산 라텍스 제품들에서 라돈 방사선이 검출된다는 문제제기도 간이 측정기 덕분이었다. 네이버 카페 ‘라돈 방출 라텍스 사용자 모임‘의 카페지기인 ‘코난’은 “아기를 키우다 보니 실내 공기 질에 관심이 높아 대진침대 사태 일주일쯤 뒤에 라돈 측정기로 우리집 라텍스 제품을 측정해봤는데 많은 라돈이 검출됐다”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찾아 모이다보니 이제 모임 회원이 2만명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7월12일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외국산 라텍스 제품에서 다량의 라돈이 방출된다며 정부에 정식 조사를 요구했다. 대부분이 숙면과 혈액 순환 등을 돕는다고 알려진 ‘음이온’ 방출 제품들로, 베개, 매트, 아기침대 등 다양했다. 이들은 당시 “카페 회원 70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라돈 측정 수치를 답한 83% 가운데 실내 라돈 기준인 4피코큐리(pCi/L) 미만으로 측정됐다고 응답한 이는 3%에 불과했다“며 ‘음이온 라텍스’ 제품의 라돈 방사선이 심각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카페지기 코난은 ”회원들과 함께 공식 조사결과를 지켜보고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라돈이 많이 검출됐다는 사용자들의 라돈 측정 결과는 생리대, 속옷, 팔찌, 온열매트부터 싱크대 대리석까지 다양한 제품에서 이어졌다. 원안위는 지난 5월 이후 소비자들이 제보한 제품들 중에서 연간 방사선량 안전기준 1밀리시버트(mSv/y)를 초과한 것으로 확인된 제품은 토퍼세트, 베개 커버, 미용마스크, 라텍스 매트리스, 메모리폼 베개 등이라고 밝혔다.

광물의 ‘음이온’은 방사선 효과

왜 갑자기 라돈 검출 제품들이 늘어난 걸까? 생활방사선 감시 활동을 해온 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은 “2012년 생활방사선의 관리를 체계화하자는 법률인 ‘생활 주변 방사선 안전관리법’(이하 생방법)이 시행됐지만 사실 방사성 원료물질을 쓰는 건강 기능성 제품들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시중에 널리 퍼져 있는 상태다. 모르고 사용하다가 개인 사용자들이 라돈 측정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뒤늦게 실태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방사성원소를 함유한 천연광물로는 모나자이트, 토르말린, 게르마늄 등이 있다. 현재 시중에는 이런 광물을 원료로 쓰는 다양한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액세서리, 허리띠, 안대, 모자, 샤워용품 등 몸에 걸치는 제품부터 생활용품까지 다양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라돈 검출 제품들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은 “공식 계측이 아니라 쉽게 발표하기가 어려울 뿐이지 아주 다양한 제품들에서 라돈 방사선이 검출됐다는 제보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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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라돈 방사선 검출 생활제품들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대부분이 혈액 순환, 노화 방지, 면역 강화, 살균 같은 갖가지 건강 증진 기능을 한다는 ‘음이온 효과’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신비의 물질로 취급되는 ‘음이온’의 실체는 대체 뭘까?

1990년대 중반부터 ‘음이온 효과’의 허구를 지적해온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는 답답해했다. 그는 “존재도 불분명하고 건강 효과도 검증된 적 없는 음이온이 대략 30여 년 동안 생활제품 광고에 등장하고 있다”며 “모르는 소비자들은 음이온 제품을 계속 찾고 정부는 과학적으로 그 효과를 따지지도 않는 현실을 보면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 음이온을 내세운 첫 제품이 30여 년 전 한 중소기업이 출시해 주목을 받은 ‘음이온 공기청정기’였다고 설명했다. “양전하를 띠는 양성자의 수보다 음전하를 띠는 전자의 수가 더 많은 원소나 분자를 가리켜 음이온이라고들 부릅니다. 공기청정기가 전기 스파크를 일으킬 때 공기 중에 있는 산소 분자들이 쪼개져 음이온이 생성된다는 식이었죠. 사실 생긴다 해도 곧 사라지는데, 심지어 그 결과로 건강에 해로운 오존이 만들어집니다. 결국 오존을 만드는 거죠.“

2000년대 중반 들어 새로운 종류의 음이온 제품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모나자이트 같은 천연광물을 가루로 만들어 제품에 넣음으로써 음이온을 방출시켜 음이온의 건강 증진 효과를 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기 스파크도 없이 천연광물에서 방출되는 음이온이라는 것은 다름 아니라 방사선에 의한 효과라는 것이 이번 라돈 사태를 계기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 교수는 “방사성 광물에서 나온다는 음이온은 결국 방사선 효과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원안위 관계자는 “방사선이 나오면서 공기 중의 분자를 양이온과 음이온으로 쪼개는 전리 효과를 내어 음이온이 일시 검출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혜정 위원장은 “음이온 발생량이 많다고 광고하는 제품일수록 방사선량도 비례해 더 많이 검출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전했다. 이덕환 교수는 “음이온 건강증진설 같은 비과학의 맹신이 깨지지 않는다면 라돈 사태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체 밀착 제품에 방사성물질 사용금지”

‘라돈 사태’는 우리 주변에 있는 생활제품들의 방사선에 대해 그동안 소비자들이 무관심했음을 보여주었고, 정부 당국의 관리 체계에 허점이 있었음을 드러내주었다. 특히나 라돈 방사선에 대한 관리·규제가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다는 점이 이번 사태를 통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건축물 내부 마감재료의 라돈은 국토교통부가 맡는다. 실내 공기의 질과 먹는 물의 라돈은 환경부 소관이다. 사업장의 방사선장애 문제는 고용노동부가, 학교의 라돈 문제는 교육부가 맡는다. 온열매트, 생리대 등 의료기기나 의약외품이면 식품의약품안전처 관할이다. 원안위는 천연 방사성 원료물질과 그것을 이용한 가공제품의 방사선 문제에 대응한다. 김혜정 위원장은 “외국산 라텍스 제품이나 화장실 대리석의 라돈 방사선 문제가 제기돼도 관리 책임이 이리저리 떠넘겨지는 것을 보면서 생활방사선 통합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방사선의 통합관리 체계는 지난달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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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근본적인 문제는 ‘생활제품에 왜 방사성 원료물질을 사용하도록 허용하는가’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저선량 방사선도 인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방사선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한다”며 “(안전기준 초과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제품에 방사성물질을 쓸 이유가 없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덕환 교수는 “불가피하거나 편익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방사선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 즉 ‘알라라(ALARA·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원칙’이 방사선과 관련해선 기본 원칙”이라며 “침대나 생리대, 옷 같은 제품에 방사성 원료물질을 쓰는 것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늦었지만 라돈 사태를 계기로 침대, 베개, 옷, 팔찌 같은 이른바 ‘신체 밀착 제품’에선 방사성 원료물질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원안위 관계자는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생방법 개정안이 여러 의원실에서 발의돼 있다”면서 “국회에서 이른 시일 내에 통과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9일 현재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대진침대 사태가 터진 5월 이후에 의원들이 제기한 생방법 개정안은 10건에 달한다. 원안위는 신체밀착 제품이 아니더라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제품에 대해서는 방사선 안전성을 사전심사하고 정보를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최근엔 방사선 방출 의심 제품들을 조사분석 하는 인력을 대폭 늘리고 ‘생활방사선 안전센터’도 만들어졌다. 채희연 원안위 생활방사선과 과장은 “방사선 제품 조사인력을 47명으로 늘리고 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자력안전재단과의 협력 체제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원안위의 다른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제보가 밀려들어 시간이 걸리겠지만 담당 직원들이 야근도 하고 휴일근무도 하면서 되도록 빨리 조사 작업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라돈 측정기를 든 소비자들이 고발한 라돈 방사선의 실태가 생활방사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민감도를 높이고 정부 관리체계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셈이다.

용어설명

▶ 베크렐, 밀리시버트

베크렐은 방사성물질의 방사능 양을 나타내는 단위. 라돈 방사선의 경우 실내 농도의 기준치(권고)는 148베크렐(Bq/m³)이다. 방사능 양의 다른 단위인 1피코큐리(pCi/L)는 37베크렐과 같다. 밀리시버트(mSv)는 인체가 받을 것으로 추산되는 방사선량을 나타낸다. 일반인의 연간 방사선량 안전기준(자연방사선 제외)은 1밀리시버트다. 이보다 낮은 방사선량도 영향을 주기에 ’피할 수 있는 방사선은 피하라‘는 게 의료계의 권고 기준이다.

▶ 자연방사선

우리는 늘 방사선 속에서 산다. 방사선은 방사성 원소가 붕괴될 때 방출되는 입자 또는 파동을 말한다. 방사선은 우주에서도 날아오며, 방사성 원소들이 든 광물이나 건축자재, 음식과 물에서도 나온다. 이를 자연방사선이라 부른다. 우라늄 같은 불안정한 원자핵이 안정된 원자핵으로 쪼개지는 핵분열 과정에서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 같은 방사선이 방출된다. 우리나라 환경에서 나오는 자연방사선량은 대략 3밀리시버트다.

▶ 라돈, 토론

방사성광물(모나자이트 등)에 들어있는 방사성원소인 우라늄이나 토륨이 붕괴할 때 방사선이 나오는데, 그때 다른 방사성원소인 라돈(Rn-222)이나 토론(Rn-220, 라돈 동위원소)이 생성된다. 기체인데 물에 잘 녹는다. 이것들이 다시 붕괴할 때 방사선이 또 방출된다. 둘은 반감기(3.8일과 55.6초)가 다르고 인체 영향도 다르다. 특히 라돈은 폐암을 일으킬 수 있는 1급 발암물질로 분류돼 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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