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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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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수술 전·중·후 ‘최소 수혈’ 원칙의료 질 높여 환자 안전성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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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센터 탐방 고대안암병원 무수혈센터

국내 수혈 부작용 2600여 건

정형외과 혈액 사용량 반감

수혈량 적어도 치료 성적 비슷

중앙일보

고대안암병원 의료진은 자가 혈액을 모아 재주입하는 셀세이버(사진 왼쪽) 등을 통해 수술 전후 수혈량을 최소화한다. 프리랜서 김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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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은 수혈을 일종의 치료로 인식한다. 특히 수술 중 발생하는 출혈을 수혈로 보완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인다. 문제는 무분별한 수혈이다. 자칫 수혈 사고와 면역 거부반응으로 인해 합병증과 사망률이 높아지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고대안암병원은 지난달 1일, 무수혈센터를 개소하며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최소 수혈 병원’의 비전을 발표했다. 체계적인 혈액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을 동시에 향상시킨다는 목표다.

지난달 54세 김모씨가 고대안암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심장에 가까운 상행 대동맥 안쪽이 찢어지고 이곳에 피가 차면서 갈라진 대동맥박리증이었다. 자칫 심근경색·뇌경색으로 악화할 수 있는 위급 상황이었다. 의료진은 1시간30분 만에 응급 수술을 시작했다. 가슴을 열고 찢어진 대동맥을 잘라낸 뒤 인조혈관으로 교체했다. 종전에는 수술 과정에서 혈액(적혈구)은 총 2000㏄ 이상, 혈소판·신선동결혈장 등 혈액제제는 총 1000㏄ 이상 수혈했다. 하지만 김씨의 경우 수혈 대신 흐르는 피를 ‘셀세이버(자가혈구회수장치)’에 모아 정제한 뒤 재주입했다. 수술 후에는 체외순환기에 남은 혈액을 수액과 분리한 뒤 투여해 부족한 혈액을 채웠다. 수혈량은 기존의 5분의 1 정도였지만 김씨는 수술에 성공해 현재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수혈 때 감염·면역거부반응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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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에 ‘최소 수혈’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에는 환자가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거부했지만 지금은 의료진이 환자 안전을 위해 수혈을 줄이려 노력한다. 박종훈 고대안암병원장(정형외과)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수혈이 환자에게 득보다 실이 큰 치료라는 점이 확인됐다”며 “꼭 필요한 때만 수혈하는 최소 수혈에 의료진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혈이 위험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잘못된 수혈로 인한 안전사고다. 에이즈·간염·매독에 오염됐거나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는 혈액을 수혈받을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병원이라고 안전지대는 아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1년간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수혈 안전사고는 17건이다.

둘째, 면역 거부반응이다. 인체 면역 세포가 타인의 혈액을 세균·바이러스 같은 침입자로 인식해 공격하면서 발열·호흡곤란·저혈압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수혈로 인한 부작용은 모두 2663건이 발생했다. 단순 수혈만으로도 하루 평균 7건씩 부작용이 나타나는 셈이다. 박 병원장은 “혈액 내에는 200여 개 이상의 단백질이 있지만 아직 4분의 1은 어떤 작용을 하는지 확인되지 않았다”며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을 고려하면 수혈의 위험성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수혈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외상으로 인해 혈액량이 30% 이상 줄었거나 심뇌혈관계 질환 위험이 큰 환자는 수혈로 부족한 혈액을 반드시 보충해야 한다. 문제는 건강한 사람에게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수혈이다. 고대안암병원 정재승 무수혈센터장(흉부외과)은 “수혈 가이드라인에는 혈액 내 헤모글로빈 수치가 7g/? 이하로 떨어질 때 수혈해야 하지만 대부분 의사가 10g/?를 수혈 기준으로 삼는다”며 “무분별한 수혈은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의료 자원이 낭비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고대안암병원은 2013년부터 최소 수혈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 의사가 혈액제제를 처방할 때 화면에 해당 환자가 수혈 가이드라인에 적합한지 확인할 수 있게 창을 띄웠다. 비교적 단순한 방법이었지만 이를 통해 5년 만에 병원 전체 수혈량을 약 10% 줄였다. 정형외과의 경우 혈액 사용량이 절반 이상 감소했다. 하지만 수혈을 하지 않아도 치료 성적은 전혀 나빠지지 않았다. 뼈에 암이 생긴 골육종 환자를 대상으로 혈액을 평균 3.6팩 수혈한 20명과 0.23팩으로 최소 수혈한 19명의 예후를 비교했더니 양쪽 모두 수술 후 입원기간·사망률에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수술 부위 감염은 수혈을 많이 받은 사람의 20%에서 발생했고 최소 수혈한 그룹은 발생하지 않았다(미국혈액관리증진협회, 2018).

최소 수혈의 성과와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기존에 반신반의했던 의료진도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3월 병원장을 비롯해 종양내과·혈액내과·흉부외과 등 9개 진료 과가 모여 최소 수혈 태스크포스팀을 구축하고 최소 수혈의 적용 방안을 모색했다.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관련 교육을 받고 열 번 이상 내부 회의를 열어 고대안암병원만의 최소 수혈 프로토콜을 정립했다.

고대안암병원의 최소 수혈 과정은 수술 전·중·후로 나뉜다. 수술 전 빈혈이 있는 환자는 철분제·조혈제 등 약물로 이를 교정하고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 혈액내과와 협진을 통해 원인 질환을 찾아 치료한다. 수혈 없이 수술을 견딜 수 있도록 ‘내구성’을 기르는 것이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일정 수준(남성 13g/?, 여성 12g/?) 이상이면 자가 혈액을 뽑아두었다가 수술 중에 활용한다.

자체 최소 수혈 프로토콜 정립

중앙일보

수술 중에는 내시경·로봇 등 첨단 장비를 이용한 최소침습, 최소 절개로 출혈량을 최소화한다. 심장이나 간 이식처럼 출혈이 많은 수술은 ‘셀세이버’를 적극 활용한다. 흐르는 피를 모아 원심분리기로 돌려 적혈구·백혈구·혈소판 등을 분리해 몸에 재주입하는 장치다. 정 센터장은 “셀세이버를 쓰면 혈액 1~2팩(500~800㏄)가량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 체온을 보호하는 가온요법도 적극 활용한다. 비닐로 몸을 감싸거나 수술 침대에 따뜻한 물이 도는 매트를 까는 식이다. 박 병원장은 “체온이 떨어지면 혈소판 등 혈액 응고 물질의 활성이 억제돼 출혈량이 는다”며 “평균 체온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수혈량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술 후에는 분말·솜·패치 등 다양한 형태의 국소 지혈제로 배어 나오는 혈액을 잡는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진 환자도 즉시 수혈하기보다 조혈제와 철분제를 우선 적용한다. 혈액검사에는 일반적인 채혈량(4.5㏄)보다 적은 3.5㏄만 뽑는다. 혈액량이 부족한 환자라면 신생아에게 적용되는 용량(0.5㏄)만 채취한 뒤 수작업으로 혈액검사를 실시한다. 정 센터장은 “혈액검사는 환자 건강을 파악하기 위해 시행하는데 수술 후 의사가 환자 생체 징후 모니터링를 한 번이라도 더 보면 검사 횟수 자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소 수혈은 의료진의 열정과 체계적인 교육, 적극적인 투자란 삼박자를 고루 갖춰야 가능한 일이다. 고대안암병원은 이를 위해 무수혈센터 운영위원회를 조직, 수혈 가이드라인 개정과 협력 진료 확대 등 최소 수혈 병원으로서 역량을 강화할 예정이다. 박종훈 병원장은 “최소 수혈은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며 “다른 나라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때까지 병원 전체가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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