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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총파업 하루 전날… 정부, 탄력근로제 빼고 다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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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노위 공익위원안 살펴보니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20일 발표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공익위원 합의안'은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민노총은 현 정부 들어 전교조의 합법화를 대화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고, 공무원 노조 범위 확대 등을 정부에 요구해왔다. 이 때문에 정부·여당이 최근 악화된 노동계와의 관계 복원을 위한 시동을 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해직자, 소방관, 고위 공무원 노조 가입 가능해져"

이날 공개된 경사노위 공익위원 안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해직자·실직자의 노조 가입을 금지하는 현행 노조법(제2조 4호)을 개정해 이들의 노조 가입이나 활동을 허용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회사의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해고된 해직자도 외부에서 노조에 가입해 복직 투쟁을 벌일 수 있게 된다. 경사노위는 다만 현대차처럼 기업별 노조가 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을 고려해 해직자·실직자는 기업별 노조의 임원·간부는 할 수 없도록 했다.

둘째는 6급 이하·일부 직종만 가능하게 돼 있는 공무원의 노조 가입을 모든 직급으로 확대하고, 소방관의 노조 가입도 허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행정고시 출신 사무관이나 서기관 등 고위 공무원도 공무원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정부 중앙부처의 과장이나 국장 등 '관리직 공무원'은 지금처럼 노조 가입을 제한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관리직의 범위는 추후 입법 과정에서 확정한다.

셋째는 해직된 교원에 대해 노조 가입을 허용하고, 정부가 가진 '노조 아님' 통보 권한을 사실상 없애기로 했다. 현행 교원노조법은 해직된 교원의 노조 가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경사노위는 "퇴직자의 조합원 자격은 노조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사실상 해직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도록 권고했다. 또 정부가 '노조 아님' 통보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노조법 시행령에 대해서도 "행정관청의 일방적 판단에 의해 노조의 지위 자체를 사실상 부정하는 기능을 한다"며 관련 규정을 삭제하라 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13년 해직 교사가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에 내렸던 '노조 아님' 통보는 사실상 근거를 잃게 된다. '전교조 합법화'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소방관 노조 가입해 연가 투쟁 벌이면 누가 불 끄나"

이날 발표에 대해 노동계 안팎에서는 '탄력근로제(일정 기간 내에 근로시간을 늘리고 줄이면서 조절하는 제도)'를 놓고 노동계와 관계가 틀어진 정부가 노동계에 화해의 손을 내민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는 "아직 경사노위가 정식 출범하지 않았는데도, 공익위원안이 오늘 먼저 나온 것은 뜬금없다"며 "공익위원안이 사실상 정부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민노총의 요구를 들어주고 손을 내민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경영계는 안 그래도 기세등등한 노동계의 힘이 더 세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총 관계자는 "실직자·해직자 위주로 노조가 꾸려지면 외부에서 복직 투쟁을 벌이며 시끄러워지고 산업 현장은 더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관과 고위 공무원이 노조에 가입해 '연가 투쟁'과 같은 사실상 파업을 벌이면 국가적으로 상당한 혼란에 빠질 우려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함께 경사노위의 권고대로 정부가 갖고 있는 '노조 아님' 통보 권한이 사라진다면 향후 특정 노조가 아무리 법을 어기거나 문제점을 갖고 있더라도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한편 경사노위는 노동계의 요구에 맞서 파업 시 대체 근로 허용이나 단체협약 유효 기간을 1년에서 2~3년 이상으로 연장하는 등 경영계의 요구 사안에 대해서는 내년 1월 말쯤 결과를 내놓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날 합의안에 담긴 내용은 대부분 국내법 개정 사안으로, 국회에서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경영계와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입법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경제·노동 현안에 대한 노사정(勞使政) 대화를 위해 만들어졌다. 22일 공식 출범한다. 주요 노사 단체 외에 소상공인·중견·중소기업 대표와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가 참여한다. 산하에 노사 관계 제도와 사회 복지 제도 등을 논의하는 각종 분과 위원회를 두고 있다.

[곽창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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