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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중국 대학생들은 왜 ‘전태일 평전’을 읽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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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중국 ‘학출노동자’의 등장

공장 내 구타 항의, 노조 설립한

노동자·대학생들 줄줄이 연행

“노동자 목숨값은 들풀 취급받아”

마르크스주의·마오주의 학습한

좌파학생들, 노동운동에 투신 ‘불평등 해소’ 내세운 시진핑 체제

아래로부터의 개혁 요구는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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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한국에는 ‘학출노동자’라는 말이 있었다. 노동운동을 위해 공장 등에 취업을 했던 학생운동 출신 공장노동자를 말한다. 최근 중국에 ‘학출노동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전태일 평전>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이들의 필독서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이들은 왜 안락함을 버리고 노동자들의 손을 잡는 것일까.


중국 대학생들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 8일 밤 베이징대 캠퍼스에서 이 학교 학생 장성예가 괴한들에게 얻어맞고 강제로 차에 태워져 어딘가로 끌려갔다. 장과 함께 있던 사학과 학생 위톈푸는 소셜미디어 웨이신에 장문의 글을 올려 당시의 상황을 전하면서,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그들이 무슨 권리로 법과 시민의 권리를 완전히 무시할 수가 있나? 어떻게 그들이 부도덕하고 오만하게 학생들을 때리고 납치할 수 있나”라고 절규했다. 이날과 다음날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우한에서 22명의 학생과 노동자가 연행됐다.

사태의 발단은 올 봄 중국 남부 광둥성 선전의 용접기계 제조회사인 자스커지(佳士科技·Jasic)였다. 공장 내 구타와 폭언, 휴식시간의 강제 벌칙 등에 항의하던 노동자가 얻어맞고 해고 통보를 받았다. 노동자들은 공회(공산당이 관할하는 공식 노조)의 지역사무소를 찾아가 투서했다. 6월 초 젊은 노동자들이 독립 노조 결성에 나서자 회사 쪽은 선수를 쳐서 유사노조를 만들어 자신들의 심복을 대표로 앉혔다. 노동자들은 이에 항의하며 이틀 만에 전체 1000여명 직원 중 89명의 서명을 받아 공회 지역사무소에 설립 신고서를 냈지만 거부 당했다. 노동자들은 자스커지의 사장과 인사 담당자가 당국과 긴밀한 관계라서 공회가 사쪽 편을 들고 있다고 항의했다. 7월 독립 노조 설립을 주도한 10여명의 노동자들은 괴한에 구타를 당했고, 이후 공안에 체포됐다. 사태는 그렇게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7월29일 전국 각지의 좌파 대학생 수백명이 자스커지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고, 50여명의 대학생들이 직접 선전으로 와 노동자들과 연대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노동자들과 자신들의 시위 모습과 주장을 전하며 전국적인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여론의 관심이 커지자, 정부는 그물을 조이기 시작했다. 8월11일 대학생 출신 노동자로 ‘노학연대(노동자-학생 연대)’를 주도했던 선멍위가 정체 불명의 남성들에게 끌려갔다. 8월24일에는 무장경찰이 학생, 노동자들의 숙소에 들이닥쳐 베이징대 학생 위에신을 비롯한 대학생 50여명을 연행했다. 지금까지도 선멍위와 위에신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베이징대 동창들은 ‘위에 찾기 운동’을 결성해 친구의 석방을 요구했고, 장성예는 이 운동을 주도했다가 11월8일 연행됐다.(그는 19일 석방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이 보도했다.)

자스커지 노동쟁의와 노동자들을 지원한 좌파 대학생들의 규모는 작고 힘은 미약했지만, 시진핑 시대 중국의 삼엄한 통제를 뚫고 나온 송곳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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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운동권, 현장 속으로

2010년대 들어 중국 남부 광둥성의 공장지대를 중심으로 젊은 노동자들의 시위는 끊임없이 계속됐지만, 이들과 지식인들의 연대는 미약했다. 대학생들이 농촌 출신 노동자들과 그 자녀들을 지원하는 자원봉사에 나서거나 농촌 지원 활동에 참여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직접 공장에 들어가 파업에 동참하거나 연대하는 모습은 드물었다. 자스커지 사건은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의 본격적인 연대, 공장에 들어가 노동운동에 뛰어든 ‘학출 노동자’를 역사의 무대에 등장시켰다.

이들은 키워낸 것은 중국 대학들의 마르크스주의 학습동아리였다. 마르크스주의 학습동아리는 시진핑 집권 이후 더욱 권장돼왔다.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의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교육은 언제나 중요했지만, 시진핑 통치 시기에 서방식 민주주의를 비롯한 ‘서구 이념 교육’이 전면 금지되면서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당국은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공산당의 이념적 정통성을 강조하고자 했겠지만, 학생들은 동아리에서 마르크스와 마오쩌둥의 저서를 읽으며 불의와 불평등에 눈뜨고 사회를 바꾸러 현실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최근 베이징대와 런민대 학생 두 명이 애플 제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벌어지는 노동 착취에 항의하며 베이징시 애플 스토어 앞에서 시위에 나섰다 연행됐고, 진폐증에 걸린 탄광 노동자들을 위한 운동에도 대학생들이 나서고 있다.

그리고 공장 속으로 들어간 학생들이 있었다. 자스커지 노조 설립에 앞장섰다 ‘실종’된 선멍위는 중국의 ‘신세대 운동권’ ‘학출 노동자’의 등장을 알리는 상징적인 인물로 보인다. 선멍위는 광저우 명문대학인 중산대학에서 수학과 컴퓨터과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안락한 일자리를 거부하고 노동운동가가 되었다.

그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는 노동운동가의 길을 선택하기까지의 고민들이 드러나 있다.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들에 참여하면서 나는 노동자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나는 산재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보았다. 장애를 입은 그들의 몸은 경제 성장의 대가였다. 공장에서 투신한 폭스콘 노동자들을 보았다. 그들의 목숨 값은 들풀만큼 하찮게 여겨졌다. 진폐증이라는 직업병도 알게 됐다. 너무 고통스러운 병이라 그 병에 걸린 노동자들은 차라리 죽고 싶어했다. 나는 그밖에도 벤젠 중독, 백혈병, 청력 상실 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2014년 선멍위는 파업 중인 광저우대학 청소 노동자들과의 연대 활동에 나섰다. “청소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건물 관리 회사들의 위선과 부끄럼 모르는 행동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속이고 사회보험료를 체불하고, 노동자들에게 백지 계약에 사인하라고 요구했다. 노동자 지원에 나선 학생들은 그들의 연대와 투쟁 정신에 감동받고 배웠다. 20일 동안의 연대 투쟁을 통해 우리는 마침내 노동자들이 성공적으로 권리를 지켜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2015년 대학원 졸업 뒤 선멍위는 광저우에 있는 일본계 자동차 부품 회사에 생산직 노동자로 들어갔다. “은 훈련을 받은 뒤 처음으로 작업장에 들어갔다. 기계 굉음이 고막을 때리고 기름 냄새가 얼굴에 훅 끼쳐왔다. 쇳가루가 온 작업장에 가득했다. 작업장은 기름으로 미끌거렸다. 벤젠과 화학 약품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 문구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다. 노동자들은 먼지를 제대로 막아주지도 못하는 1회용 마스크만 쓰고 있었다. 일부는 마스크도 쓰지 않았다. 작업장은 1년 내내 더웠지만, 5월이 지나면 참을 수 없을 정도여서 어떤 곳은 50도는 되는 듯했다.”

선멍위는 올해 회사와의 단체협상에 대표로 나섰다가 해고됐지만, 임금인상과 회사의 노동자 주택자금 지원 등을 얻어냈다. 곧이어 자스커지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에도 앞장섰다가 실종된 것이다.

선멍위와 함께 자스커지 노동자들과의 노학연대에 앞장섰던 위에신은 베이징대 외국어학부 14학번 학생이다. 그 역시 마르크스주의 학습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윈난 농촌 지역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올해 4월에는 베이징대 교수의 성폭력으로 여학생이 자살한 사건의 재조사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공개서신을 발표했다 학교 쪽으로부터 경고와 압박을 받은 일을 폭로해 중국 미투 운동의 상징으로 주목 받기도 했다.

한국 노동운동의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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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중국 대학생들이 공장에 들어가 활동 중인지 외부에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중국 사회운동가들은 한국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져왔고, 한국 지식인과 대학생 엘리트들이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 공장에 진출해 현실을 변화시켰다는 데 주목해왔다. <전태일평전>(중국 번역판은 <星星之火: 全泰壹評傳>)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중국 번역판은 <??工人>)은 필독서였다.

홍콩시티대학 사회학과의 크리스 챈(챈킹즈) 교수는 지난달 홍콩 인터넷 언론 <이티엄 미디어>(端?媒)에 쓴 ‘한국 80년대 노동운동이 일으킨 나비효과가 중국에서도 일어날 것인가?’라는 글에서 “자스커지 노동쟁의의 가장 큰 의미는 좌파 학생들이 공식적으로 역사적 무대에 등장했다는 사실”이라며 자스커지 노동쟁의와 한국 노동운동을 비교했다.

챈 교수는 1990년대부터 홍콩 노동단체들이 중국 산재 노동자 지원, 노동법 교육 등을 통해 1970년대 한국 노동운동을 지원한 교회와 비슷한 역할을 했으며, 2010년 이후 중국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이 늘고, 요구도 임금인상을 넘어 노동조건 개선과 노조 민주화 요구 등으로 확대됐다고 지적한다. 중국 당국은 2015년부터 노동운동을 지원하던 변호사들을 대거 검거하고 해외 비정부 조직의 노동운동 지원을 차단했다. 기업들은 노조를 결성하려던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취업을 막고 있다.

챈 교수는 “중국과 한국 노동운동의 유사점이 있다”고 주목하면서도, “오늘날 중국의 노동자와 학생운동이 1980년대 초 한국의 상황에 도달했다고 할 수는 없으며, 앞으로 한국 노동운동과 같은 길로 갈지도 분명하지 않다”고 분석한다. 우선 중국에서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좌파에 공감하는 역량이 아직 미약하다는 점, 청년들이 신봉하는 마오주의 노선은 중국 내에서 논란이 있기 때문에 헌법에 의거한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자유파 세력 등과 연대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두번째로 1970~1980년대 한국에서는 기업 단위의 독립 노조는 세울 수 있었지만, 현재 중국 상황에서는 당국이 통제하는 노조 조직인 중화전국총공회 바깥에 독립 노조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자스커지 사건은 하나의 기점일 뿐”이라며 당국이 좌파 학생 단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청년 학생들의 공장행 흐름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 공산당의 모순

중국 당국은 좌파 학생들의 목소리를 포용하길 거부하고, 강경 대응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달 말 베이징대를 총괄하는 공산당 서기로, 이전에 오랫동안 베이징시 공안 책임자을 맡았던 추수이핑이 새로 임명됐다. 지난 14일 베이징대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통해 모든 학생에게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활동에 참여하지 말라며, 법에 도전하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통지를 보냈다. 베이징대는 최근 ‘중공 베이징대위원회 순찰반’과 ‘베이징대 내부통제관리반’을 설치한다는 공문을 당 조직을 통해 회람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베이징대 마르크스주의 학습동아리는 매년 갱신해야 하는 등록을 거부당하다 우여곡절 끝에 9월 말 등록은 했으나, 앞날은 불투명하다.

런민대 학생들이 노동자 지원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가택연금을 당하거나 감시를 당하자, 미국 코넬대학교는 런민대와의 협력 프로그램 중단을 발표했다. 난징대학교에서는 마르크스주의 학습동아리 등록을 거부하는 학교 당국에 항의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이 괴한들의 공격을 받은 뒤 연행됐다.

노동자·농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중국 공산당이 불평등에 맞서 노동자들을 지원하려는 좌파 학생들을 탄압하는 상황은 모순적이다.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인 올해, 중국 당국은 “시진핑 사상은 21세기 마르크스주의”라고 홍보해왔다. 시진핑 시기 중국의 정책들은 개혁개방 이후 40년 동안 시장화 정책을 추진한 결과로 나타난 빈부격차와 부패, 기득권 집단에 집중된 부의 문제 등을 사회주의적 요소를 통해 개혁하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추진돼 왔다. 하지만 시진핑 체제는 아래로부터의 변화의 요구는 허용하지 않고 ‘위로부터의 개혁’만 강압적으로 추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의 집단지도 체제와 공민사회(시민사회)의 역량, 민간기업의 역할 등을 뒤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진핑에 대한 개인숭배와 ‘문화대혁명의 부활’에 대한 공포 역시 커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마오주의의 깃발을 들고 일어선 청년들의 등장은 이런 상황을 뚫고 중국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역사의 전환점에서 청년들이 일어섰던 5·4운동 100주년과 천안문시위 30주년이 되는 2019년이 다가오고 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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