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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힐링 찾아 떠나 오감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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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삶의 질을 중시하는 풍토가 정착되면서 여행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대신 건강과 치유를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웰니스 관광’이 대표적이다. 웰니스(wellness)는 정신과 육체가 건강하고 조화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웰빙(well-being)과 행복(happiness)의 합성어이기도 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웰니스 관광을 육성하기 위해 지난해 25곳에 이어 올해도 엄격한 심사를 통해 8곳을 뽑아 총 33곳을 웰니스 관광시설로 선정했다. 한방, 뷰티·스파, 힐링·명상, 자연·숲 치유 등 네 가지 테마로 분류한 웰니스 관광지 가운데 세 곳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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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TV 없는 ‘디지털 디톡스’

테라피·숲속 강의에 ‘아~좋다’


■ 일부러 불편하게 만든 힐리언스 선마을

강원 홍천 종자산 자락에 자리 잡은 ‘힐리언스 선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전화가 먹통이 됐다. 스마트폰 신호가 아예 잡히지 않았다.

‘디지털 디톡스’를 위해 휴대전화는 물론 숙소에도 TV와 냉장고 등 전자제품을 들이지 않는다는 설명에 조금 당황스러웠다.‘힐리언스’는 힐링과 사이언스의 합성어다. 선마을은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의 제안으로 대웅제약·매일유업·풀무원 등 여러 기업이 자본을 모아 2007년 문을 열었다. 세계적인 장수촌들과 마찬가지로 250m 고지에 터를 잡았다. 건립 취지는 웰에이징, 즉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식습관, 운동습관, 마음습관, 생활리듬습관 등 4대 습관을 개선하도록 도와준다. 숙식을 제공하는 1박2일 ‘쉼 스테이’ 프로그램(21만원)에 참여했다.

먼저 ‘소도구 테라피’ 수업으로 몸을 풀었다. ‘밸런틱’이라 부르는 기다란 막대와 지압기를 이용해 팔과 다리, 발바닥 등을 스스로 지압했다. 입에서 얕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오며 몸이 천천히 이완됐다. ‘선요가’는 마이링, 리커버링 등 도구를 사용하는 선마을 특유의 요가 수업이다. 눕거나 선 채로 다리를 들어올리고 비트는 동작이 초보자에게 쉽지 않았지만 도구를 발에 걸고 하니 낑낑대면서도 따라할 만했다. 강윤희 강사(48)는 “초보자들도 ‘계속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끔 난이도를 조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빈자의 미학’으로 유명한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에 참여한 선마을은 ‘의도된 불편함’투성이다. 식사를 하려면 숙소에서 식당 건물까지 숨이 차도록 비탈길을 오르내려야 했다. 가는 곳마다 ‘소식다동’(小食多動)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식당 밥도 저염식으로 반찬 가짓수가 많지 않고 소박했다. 저녁까지 먹고 반나절을 보냈는데도 휴대폰 없는 일상이 어색했다. 틈만 나면 불안한 맘으로 주머니 속 전화기를 꺼내 확인하려는 모습을 보며 내가 얼마나 이 작은 기계에 집착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포기하고 나자 책이 눈에 들어왔다. 선마을엔 책이 가득한 서가가 두 곳이나 있다. 산자락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숙소에서 책을 읽다 일찍 잠들었다. 근래 드문 꿀잠이었다.

다음날 오전 전문강사가 진행하는 ‘숲 테라피’ 코스에 따라갔다. 산 공기가 시원하고 상쾌했다. 생강나무, 쪽동백나무, 화살나무 등 마주치는 나무마다 설명을 듣다 보면 더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잣나무가 빽빽한 ‘숲속강의실’에 도착해 매트를 깔고 앉았다. 정좌한 채로 묵상하는데 바로 근처에서 ‘톡톡톡’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으니 나뭇가지가 서로 몸 비비는 소리와 바람이 볼을 스치는 촉감이 더 생생해졌다. 자리에 누워 올려다보니 30~40m씩 시원하게 뻗은 우듬지 사이로 햇살이 어른거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 좋다”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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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풀어주는 천연 화산 암반수

해암하이드로 등 ‘수 테라피’ 체험


■ 위호텔의 자궁을 닮은 원형 수영장

제주 위(WE)호텔은 바다에 인접한 다른 제주의 5성급 호텔들과 달리 한라산 중산간 기슭에 외따로 자리 잡고 있다. 해안가 마을과 먼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전경도, 호텔 주위로 넓게 펼쳐진 편백나무 숲도 멋지지만 위호텔의 자랑거리는 물이다. 지하에서 솟은 천연 화산 암반수는 중탄산과 바나듐, 마그네슘 등이 다량 함유돼 있어 노폐물 제거와 피로 해소에 좋다고 한다. 물은 호텔 식수는 물론 객실 샤워시설과 수영장에도 사용된다.

‘헬스 리조트’를 표방한 위호텔은 웰니스센터를 운영하며 이 물을 이용한 각종 ‘수(水) 테라피’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가장 인기가 좋다는 ‘해암하이드로’를 체험해봤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아쿠아 메디테이션 풀’은 외양부터가 특이했다. 어머니의 자궁을 형상화했다는 돔 지붕의 원형 수영장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원색의 조명이 은은했다. 발가락 끝까지 투명하게 비치는 물은 소독약 대신 소금을 사용해서 기분 나쁜 냄새가 전혀 없었다.

부유기를 머리와 다리에 끼우고 힘을 빼자 몸이 물 위에 둥둥 떴다. 편안히 눈을 감은 상태에서 테라피스트가 다리부터 팔, 어깨 등의 순서로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시작했다. 발바닥이 엉덩이에 닿을 정도로 무릎을 뒤로 꺾자 허리가 활처럼 휘면서 배가 물 위로 떠올랐다. 보통 마사지 같았으면 가차없이 비명이 터졌겠지만 물속이라 그런지 별다른 통증 없이 동작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동작이 과격한 태국 마사지를 물속에서 하는 것 같았다. 목과 척추 부분 마사지는 하루 종일 책상 앞에서 컴퓨터를 만지며 고질이 된 ‘거북목’ 증상에 특효였다. 수중 스피커에선 클래식 음악이 나왔다. 마지막엔 부유기를 빼고 테라피스트가 직접 안은 채로 스트레칭을 하는 왓츠(WATSU) 기법을 선보인다. 물속에서 몸을 이리저리 돌리고 회전하는데도 어지럽기보다는 온몸의 근육과 관절이 이완되며 노곤해지는 느낌이었다. 수영장 안을 여기저기 헤집고 다닌 줄 알았는데 모든 동작을 제자리에서 했다는 설명에 더 놀랐다. 테라피스트와 합이 잘 맞는 경우 울거나 소변을 볼 정도로 몸의 긴장이 완전히 풀린다는 설명이 이해가 됐다.

이어서 체험한 ‘마인드 테라피’는 마음의 긴장을 덜어주는 데 집중한다고 했다.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눕자 배 위에 뜨겁게 달군 팥주머니를 올려놓고 눈에는 안대를 올렸다. 테라피스트가 99.9%의 수정으로 만든 ‘싱잉볼’을 연주하자 부드러운 파장이 실내에 퍼졌다. 각기 다른 크기의 싱잉볼을 두드리고 문지를 때마다 오묘한 멜로디와 울림이 발끝까지 전해졌다. 연주는 스르르 잠이 들려는 순간 끝났다. 40여분이 찰나처럼 흘렀다. 해암하이드로와 마인드 테라피는 친구·연인·가족 등 여러 명이 함께 체험할 수도 있다. 가격은 각 테라피 1인당 15만4000원. 투숙객은 할인 혜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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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재료 골라 체질 맞춤 차 권해

주제별로 10여종 ‘티 클래스’ 인기


■ 내 몸에 맞는 차를 만드는 ‘티테라피’

2008년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티테라피’는 한의사가 운영하는 다방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몸에 좋은 천연 재료를 골라 개인별로 체질에 맞는 차를 권해줘 인기가 높다.

안국동 2호점(행랑점)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나만의 차’ 만들기(3만원)를 체험했다.

먼저 쉽게 피로해지는지, 자주 현기증을 느끼는지, 소화는 잘되는지 등을 묻는 13개의 체크 리스트를 작성해 제출했다. 티 테라피스트 이은경씨(44)는 “눈이 쉽게 피로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술을 자주 마시며 몸에 열이 많다”는 기자의 설명을 들은 뒤 먼저 구기자를 추천했다. “구기자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오래 노출돼 피로한 눈을 촉촉하게 만들어줘요. 단맛이 나서 다른 차와 섞어 마시기에도 좋고요.” 이어서 수분 함량이 높아 열을 꺼뜨리고 술독을 빼는 데 좋은 칡을 추천했다. 향긋한 냄새 덕분에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귤피(귤껍질 말린 것)도 골라줬다.

추천한 세 가지 재료를 섞어 뜨거운 물에 우린 찻주전자가 곧 나왔다. 모래시계로 시간을 재 3분 후 거름망에 건더기를 걸러내고 차를 시음했다. 상큼한 귤피향이 먼저 코끝을 자극했다. 칡의 구수한 맛과 구기자의 은은한 단맛이 따뜻하게 입안을 감쌌다. 주전부리로 함께 내온 말린 대추와 볶은 율무, 약콩도 고소하게 씹히는 게 차와 궁합이 잘 맞았다. 만약 시음 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레시피를 변경할 수도 있다. 재료를 결정하면 스무번가량 마실 양의 차를 포장해준다.

외국인 관광객이 아닌 한국인 손님들도 체질에 맞는 차를 마실 수 있게 메뉴판과 함께 체질 감별 지도가 제공된다. 손발이 찬지, 잘 체하는지, 평소 과식하는지 등 문항에 답하며 따라가다 보면 네 가지 색깔 타입으로 나뉘고, 그에 맞게 원기차, 온경차, 보신차, 안심차, 향통차 등을 추천하는 식이다. 스트레스, 안티에이징 등 주제별로 어울리는 10여종의 차를 시음할 수 있는 ‘티 클래스’(1인 5만원, 2인 이상 신청 가능)도 인기다.

홍천·제주 |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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