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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일이삶]도대체 탄력근로제가 뭐길래 이 난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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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세종=최우영 기자] [시작은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내년 본격 시행 앞두고 단위기간 확대 논의 불붙어]

머니투데이

시작은 근로시간 단축이었다. 올해 3월 주 최대 68시간에 달하던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탄력근로제를 둘러싼 노사 갈등의 서막이 올랐다. 경영계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산업현장의 충격을 완화할 방안이라는 입장인데, 노동계는 근로시간 단축 입법의 취지가 무색해진다며 총파업까지 불사하고 있다.

탄력근로제의 개념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근로시간을 매주 최대 52시간으로 묶어두지 않고, 특정한 기간 동안 평균값이 52시간 내로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다. 업무가 많을 때는 52시간을 넘길 수 있지만, 업무가 적을 때는 그보다 적게 일하는 식이다. 근로기준법 제51조에 따라 최대 3개월의 단위기간을 둘 수 있다.

주 68시간 근로가 가능하던 때에는 탄력근로제가 별로 필요 없었다. 집중근로가 필요한 성수기에도 법으로 정해진 최대 근로시간 내에서 모든 게 해결 가능했다. 그런데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52시간 이상 근로가 필요한 경우가 산업현장, 특히 제조업에서 적지 않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현행 탄력근로제를 활용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 사업체를 운영하는 이들은 현행 제도로는 성수기에 일하기 힘들다고 난리다. 현행제도에 따르면 최대 3개월간 탄력근로제를 쓸 수 있는데, 이를 12주로 나누면 6주는 52시간을 넘겨 일할 수 있지만 나머지 6주는 그만큼 더 적게 일해야 한다. 결국 집중근로할 수 있는 기간은 6주에 불과할 뿐이다. 대신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리면 3개월간의 집중근로, 1년으로 늘리면 6개월간의 집중근로가 가능해진다.

고용노동부는 원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부정적이었지만 실태조사를 해본 뒤 입장이 바뀌었다. 고용부는 단위기간 확대가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계절산업, 대형 제조업 현장을 찾아 들여다봤다.

여름 한철 물량을 많이 생산해야하는 에어컨이나 선풍기 제조업체, 겨울 장사가 중요한 난방기기 제조업체들은 최소 4개월간의 집중근로가 필요했다. 석유화학 등 굴뚝산업현장에서는 전체 공장을 멈추고 대규모 개보수를 할 때 집중근로 기간이 3개월씩 걸리기도 했다.

그래서 고용부는 단위기간 확대를 검토하기로 했다. 마침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여당 인사들도 탄력근로제 개선이 필요하다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노동계는 단위기간 확대가 근로시간 단축을 무력화시킨다며 반발한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만큼 인력을 더 뽑을 생각은 안 하고 있는 인력을 최대한 뽑아먹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난 6월 한 정부 고위관계자가 기업들의 속사정을 전했다. 당시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기 직전이었다. 이 관계자는 기업들의 상황으로 인해 6개월간 처벌 위주의 단속을 유예하는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4대그룹 중 한 곳의 경영진을 만나 '인력을 더 뽑아서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하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신규인력을 뽑을 여력이 제일 많은 기업이었는데 '뽑고 싶어도 뽑을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 법에 맞추려면 당장 웃돈을 주고라도 사람을 뽑고 싶은데, 현장에 투입할 숙련인력을 대규모로 수급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근로시간만 규제하면 현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얘기였다."

이 관계자는 "주요 대기업의 여건이 이렇다면, 이보다 신규 직원을 채용할 여력이 적은 나머지 기업들의 상황은 더 나쁘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노동계는 탄력근로제를 도입하면 기존에 받던 연장근로수당이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국노총은 단위기간을 절반으로 나눠 전반기에 주 52시간씩, 후반기에 주 28시간씩 일할 경우 원래는 전반기에 매주 12시간분의 연장근로수당을 받을 수 있는데 이 금액이 없어진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계산법은 단위기간이 확대되지 않는 현 제도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아울러 고용부는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때 정하는 기준근로시간에 따라 연장수당이 기존과 똑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성수기에 주 64시간을 일하는 업체는 비성수기에 주 40시간만 일해서 평균 52시간을 맞출 수 있다. 이 경우 성수기에는 기준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비성수기에는 28시간으로 잡는다. 각각의 시기에 12시간씩 연장근로수당이 발생한다. 탄력근로제를 도입하지 않았을 때는 성수기에만 주 24시간의 연장근로수당이 나온다. 전체적으로 보면 임금총액은 똑같다.

경영계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탄력근로제가 필요한 사업체들이 현행법상 가능한 주 52시간 근로만 하려고 제도를 도입하지는 않는다"며 "연장근로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한국노총의 계산법은 현실과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때 사업주는 기존 임금수준이 낮아지지 않도록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법 규정이 있기에 노사 협의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임금을 보전한다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노동계의 우려는 또 있다. 집중근로시기에 무한정 노동이 가능해져 근로자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술적으로는 집중근로시기에 주 104시간 일을 시키고, 비 집중근로시기에 일을 안 시키는 식으로 인력을 운용할 수도 있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어떠한 제도를 적용해도 이를 악용하고자 하는 극단적인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같이 고민한다"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함께 무한정 노동을 막을 수 있는 장치들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용부가 생각하는 장치로는 현행 만성과로 인정기준을 준용하는 방식이 있다. 12주 평균 60시간 또는 4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법제화하는 것이다.

세종=최우영 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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