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면 신을 느낄 수 있다’
마라도 교회에서 본 숨 막히는 일몰
여행자들이 빠져나간 뒤의 고요함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아름다운 섬
마라도와 산방산·한라산이 한눈에
하루 동안 섬을 전세 낸 ‘행운’
겨울에는 벵에돔, 여름엔 돌돔이 제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겨울로 들어서는 문턱, 풍랑이 심해 배가 끊어진 날 마라도에 머물렀다. 사람 좋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집 잘 봐달라”는 말을 남긴 뒤 마지막 배로 제주 본섬으로 떠나버린 뒤 텅 빈 게스트하우스에 혼자 남았다. 온종일 섬에서 걸어 다니는 이를 거의 만날 수 없었다. 그런데 지루하지 않았다. 구름과 태양의 숨바꼭질, 바람과 파도, 빗방울에 따라 풍경은 시나브로 변했다. 30만㎡가 안 되는, 도보 30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작은 섬이 걸을 때마다 새로웠다. 적막한 섬 마라도에서 나를 만났다. 마라도/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제주를 카메라에 담는 작업에 평생을 바치고 루게릭병으로 13년 전 세상을 떠난 사진작가 김영갑(1957∼2005). 그는 자신의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에서 가슴에 뭔가 맺히면 그것을 풀기 위해 마라도를 찾았다고 썼다. 그곳에 가면 신을 느낄 수 있었고 마음의 응어리가 풀렸다고 했다. 문득 겨울 문턱으로 들어서는 마라도의 모습이 궁금했다. 훌쩍 마라도로 떠났다.
11월20일 제주시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니 마라도로 떠나는 마지막 배 시간까지 불과 한 시간 남짓 남았다. 대정에서 떠나는 배는 오후 2시 반이면 끊어졌다. 송악산에서 3시 35분에 떠나는 배만이 남아 있었다. 정신없이 차를 달려 겨우 표를 끊을 수 있었다. 송악산에서 3시 35분에 출발하는 마지막 배는 앞 배로 마라도로 떠난 마지막 손님을 태우고 바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낚시꾼 등 민박 손님이나 마라도 주민을 제외하고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서울서 짧은 휴가를 마치고 마라도의 식당으로 다시 일하러 간다는 김선미씨를 갑판에서 만났다. 김씨는 “일할 때는 정신없이 바쁘지만 여행자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엔 마라도만의 고요함이 좋다”고 말했다. 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30여 분을 달리자 멀리 마라도가 눈에 들어왔다. 섬 전체가 공원 같고 목장 같은, 동화책 속에서 툭 튀어나온 듯 예쁜 섬이다.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자 벌써 해가 바다 저편을 금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한다. 석양을 보기 위해 마라도 교회 뒤 언덕을 오른다. 누런 억새밭을 가로질러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이 섬에 유일한 교회인 마라도 교회가 보인다. 교회 어디에서 봐도 오래 머무르고 싶은 절경이다. 바다를 금빛으로, 그다음엔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태양과 바닷가 마을, 출렁이는 억새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낙조를 배경 삼아 항구로 돌아가는 고기잡이배들이 매우 느리게 지나가고, 사람들로 붐비던 섬에는 노을과 적막만 남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마라도행 배편은 일주일에 2∼3번 정도였다. 이마저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보름을 기다려야 입도 가능한 날도 많았다 한다. 요즘엔 한 해 50만 명 가까운 이들이 마라도를 찾는다. 하지만 당일치기 마라도 여행에 주어지는 체류 시간은 승하선 시간을 빼면 사실상 60분 내외다. 경보라도 하듯 종종걸음으로 해안을 따라 섬을 한 바퀴 휙 둘러본 뒤 ‘마라도 짜장면’ 한 그릇을 부랴부랴 삼키고, 행여나 배를 놓칠까 선착장으로 달려가는 여행으로는 마라도의 참맛을 알기 힘들다. 마라도에서 일박하고 싶었던 이유였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마라도에서는 바다 위 일출과 일몰을 다 볼 수 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속 ‘어린 왕자’가 살았다는, 해 지는 것을 보려면 의자를 조금 옮기면 됐다던, 소행성 b612처럼 말이다. 마라도 게스트하우스 앞 벤치에선 석양을 볼 수 있었고, 해 뜨는 것을 보려면 그곳에서 10여 분만 걸으면 됐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출 사진을 찍으려 등대 부근으로 갔지만 구름 때문에 실패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주인장이 “내일 풍랑 주의보가 내려 배가 끊기니 오늘 오후 마지막 배로 나가는 게 좋을 것”이라 권한다. 다른 손님이 없어 자신도 제주로 나간다며, 하지만 만약 내가 머무르고 싶다면 혼자 있어도 된다고 했다.
잠시 망설이다 하루 더 머무르는 쪽을 택했다. 민박집 주인마저 빠져나가는 폭풍 속의 텅 빈 마라도가 궁금했다. 오후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고 파도가 높아졌다. 밤에 게스트하우스 처마를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었다. 숙소 앞바다에선 밤새도록 성난 파도가 해변을 때렸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다음날 아침 여전히 바람은 심했지만 비는 그쳤다. 혹시나 하고 일출 포인트인 마라도 성당과 등대 사이로 향한다. 오전 7시가 조금 넘으니 수평선 언저리가 붉어지더니 낮게 깔린 구름을 뚫고 붉은 태양이 불쑥 솟아오른다.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태양을 응시하며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어느새 저만치 올라간 태양이 등대 앞 언덕 위의 풀들과 야생화 위로 금가루를 뿌린다.
일출 촬영을 마친 뒤 마라도 등대를 지나 해안 절벽 길을 따라 북쪽 살레덕 포구로 향한다. 해안 절벽 언덕 위 풀밭 사이로 예쁜 벤치 몇 개가 바다 쪽을 향해 놓여 있다. 빈 벤치에 앉아 텀블러에 담아온 뜨거운 모닝커피를 마셨다. 멀리 산방산과 한라산 등 남부 제주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벤치에서 항구까지 다른 사람은 없다. 오직 바다와 마라도 그리고 파도만이 있었다. 적막하고 외로웠는데 오랜만에 자신과 직접 대면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라도로 가는 짐을 꾸리며 책꽂이에 학생 시절 사둔 프랑스 작가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이 눈에 띄기에 무심코 집어왔다. 전날 밤 게스트하우스에서 잠도 잘 오지 않고 해서 빗소리를 들으며 이 책을 읽었는데 벤치에 앉아 있으니 문득 그중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해 여행한다…. 어떤 낯선 도시를 앞에 두고 깜짝 놀랄 때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온종일 어디를 가도 사람을 만나기 힘들었다. 하루 동안 섬을 전세 낸 ‘행운’을 제대로 즐겼다. 텅 빈 짜장면 거리를 지난다. 이장댁인 마라도 해녀촌 짜장을 시작으로 모두 10곳의 짜장면 식당이 모여 있다. 식당 사이사이로는 호떡집과 기념품 가게 민박집 간판이 보인다. 그 길 한쪽 조금 떨어진 곳에 이제는 문을 닫은 쓸쓸한 마라분교가 있다. 지금은 학생 수가 적어 휴교했지만 예전에는 30여 명이 모여 공부하던 곳이다. 오른쪽 표지판을 따라가면 자리덕 선착장이다. 선착장 아래로 내려가니 파도치는 해안 절벽과 오랜 세월 파도가 만들어낸 해식동굴이 절경을 이룬다. 그 부근에 풍랑을 잠재우려 소녀를 제물로 삼았다는 슬픈 전설을 담은 애기업개당 바위와 할망당이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다시 마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라도 교회와 유일한 불교 사찰 기원정사, 전복을 닮은 독특한 모양으로 이름난 마라도 성당 등을 모두 만날 수 있다. 기원정사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예쁜 나무 양옥집이 있다. 예전에 초콜릿 박물관으로 쓰던 곳인데 지금은 문을 닫고 그 앞에서 미니 카페를 하는 주인이 주거용으로 쓰고 있다. 맑은 날 마라도엔 그야말로 별이 쏟아지는데 이 부근이 별 관측 포인트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곳을 지나치면 선인장 자생지, 대한민국 최남단 비, 신선바위, 마라도 해양경찰 초소, 마라도 성당 등이 차례로 나온다. 대한민국 최남단 비에서 성당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1915년 처음 불을 밝힌 마라도 등대가 있다. 등대 앞에는 세계 각국의 등대 모형으로 꾸민 작은 등대공원이 있다.
원래 마라도는 산림이 울창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종 21년(1884) 무인도이던 이곳에 처음 개경이 허락되면서 개간과 뱀을 쫓을 목적으로 숲에 불을 질렀는데, 전하는 말로는 석 달 열흘이 지나서야 불길이 멎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마라도엔 뱀이 없다. 지금 등대 주변에 그나마 있는 숲들은 1990년대 이후 새로 조림된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바람을 맞으며 섬을 쏘다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유일하게 문을 연 민박 식당에 들렀다. 나처럼 빈 섬에 남아 있던 낚시꾼 둘이 소주잔을 기울이다 “오늘 잡은 건데 맛 좀 보시라”며 인심 좋게 부시리(방어를 닮은 전갱잇과 생선) 회 한 접시를 내밀었다. 바다 내음 나는 신선한 부시리 회 한 점을 초장에 찍어 입에 넣으니 입 안에서 절로 녹아내리는 듯했다. 구좌읍 세화리에서 바다낚시를 하러 왔다는 한희철씨는 “마라도는 ‘대물’이 잘 잡히는 데다, 좁은 섬이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바람을 피해 다양한 포인트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어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겨울에는 벵에돔, 여름에는 돌돔이 제철이다.
다음날 첫 배를 타고 마라도를 떠났다. 배에서 쏟아져 내리는 여행자들을 뒤로하고 제주 본섬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2층 갑판 위에 올라가 멀어지는 마라도를 본다. 일렁이는 바다는 검푸르렀고, 나는 방금 헤어진 섬이 다시 그리웠다.
■가는 길
모슬포 운진항과 송악산에 마라도로 가는 유람선이 있다. 동절기와 하절기 출항 횟수와 시간이 다르고 배가 안 뜨는 날도 있으니 전화로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
성인 기준 마라도 왕복 1만8000원, 064-794-5490(모슬포 운진항), 064-794-6661(송악산)
■먹고 자기
이장댁인 마라도 해녀촌 민박(064-794-0701)을 비롯해 민박집이 여러 곳 있다. 마라 게스트하우스(064-792-7179)도 편리하다. 민박에서 일정 요금을 내면 식사도 가능하다. 편의점도 2곳이나 있어 물 등을 굳이 들고 갈 필요는 없다.
마라도/글 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 신뢰도 1위 ‘한겨레’ 네이버 메인에 추가하기◀] [오늘의 추천 뉴스]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