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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점심 시간인데도 교실에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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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실내에 ‘가만히 있도록’ 지도받는 아이들의 실태와 그에 대한 교사, 부모의 입장을 들어봤다



새파란 하늘과 선선한 기온에 직장인들도 점심을 먹고 나면 산책 욕구를 느꼈던 지난 10월과 11월, 서울에 사는 초등학생 160명에게 물었다. 점심 시간에 밥을 다 먹고도 밖에 나갈 수 없어 답답했던 적이 있는가? 46.2%(160명 응답 중 74명)의 아이들이 “있다”고 응답했다. <한겨레>가 진행한 온라인 설문에 아이들이 털어놓은 현실은 이랬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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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서 놀고 싶지만 선생님이 허락하지 않아 교실의 내 자리에서 조용히 다음 수업 준비를 해요. 점심 시간에 도서관 외에는 나갈 수 없어서 지겹고 답답해요.”

한 초등 3학년 학생의 답변이다. 초등 4학년인 한 학생은 “점심을 먹고 나면 남는 시간에 교실에서 논다. 밖에서 별로 안 놀아봐서 놀아보면 기분이 어떨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초등 5학년들은 거센 표현도 했다.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지 못할 때 학교가 감옥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이 지나치게 규칙을 내세울 때는 답답해요. 밖에 나가놀면 갇혀 있던 몸과 마음이 쫙 펴지는 느낌이 들 텐데요.”

“선생님 성격에 따라 무조건 자리에 앉아 있으라, 옆 친구와도 이야기 하지 말라, 이유 없이 운동장에 나가지 말라고 할 때는 우리가 무슨 노예인 듯해 완전 스트레스를 받아요.”

한 초등 6학년은 건조하게 말했다.

“점심 먹고 자유롭게 놀 수 없을 때 처음에는 불쾌했지만 일상이 되자 별 느낌이 들지 않게 됐어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자유롭게 밖에 나가 놀 수 있기를 원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야외 활동 부족으로 비타민디(D)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지만 안전 문제도 있고, 미세먼지 문제도 있고, 심지어 이제는 추워지는 12월이다. 아이들을 ‘단속’해야 하는 이유는 갈수록 늘어간다.

점심 시간을 중심으로 실내에 ‘가만히 있도록’ 지도받는 아이들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또 이미 이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해온 교사와 부모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한겨레

“뛰어노는 시간 있어야 학원 견뎌요”

초등학생들의 솔직한 마음을 듣기 위해 서울시 어린이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3~6학년 아이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했다. 160명이 설문에 참여했는데 문항별 응답자 수는 조금씩 다르다. 응답자 중 3학년은 17명, 4학년이 41명, 5학년이 64명, 6학년이 38명이었다.

초등학생들은 대부분 급식판에 음식을 받아 밥을 먹다보니 식사 시간에도 사고 우려가 커 이동을 제한받고 있었다. 160명 중 50%가 교실에서 급식을 받아 자기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밥을 먹어야 한다고 답했고, 30%가 급식실에서 줄을 선 순서대로 앉아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자유롭게 앉아 먹을 수 있다는 응답은 10% 수준이었다.

밥을 먹고나서 남는 자유시간은 20~30분 정도(41.3%)다. 절반에 가까운 74명(46.2%)이 점심식사 뒤 밖에 나가면 안 되고 교실 안에만 있어야 했던 적이 있다고 답했다. 쉬는 시간에도 화장실에 가지 않는 이상 자기 자리에만 앉아 있어야 했던 아이들도 72명(45.3%)이나 있었다. 한 6학년 응답자는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은 놀라고 만든 시간인데 자유롭게 원하는 활동을 하지 못해 답답하다”고 말했다.

점심을 먹고도 남는 시간에 마음대로 놀 수 없었다면 이유는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는 132명이 응답했다. 애초 그런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수(74명)보다 많다. 내용을 살펴보면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경험을 해본 초등학생’의 숫자는 74명의 두 배가량인 132명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설문 참여자 160명 중 82.5%에 달하는 숫자다.

아이들이 떠올린 ‘바깥활동을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세먼지’였다. 60명(45.5%)이 ‘미세먼지가 심해 하루 종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답했고, 27명(20.5%)이 ‘선생님이 점심시간에 자유롭게 노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교실 청소 등 식사 뒤 정해진 일과가 있어서(13.6%), 운동장 등 뛰어놀 공간이 좁아서(2.3%) 등의 답이 이어졌다.

아이들에게 점심 시간에 밖에 나갈 수 없을 때의 기분을 묻자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다”(5학년), “미세먼지처럼 마음이 답답했다”(3학년), “학교에서 낙이라는 것은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5학년) 등 부정적인 답변이 나왔다. 자유롭게 나가서 놀 때의 기분을 묻자 “아침부터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다”(5학년), “기분이 전환되고 머리가 맑아진다”(6학년), “뛰어노는 시간이 있어야 학원과 공부 시간을 견딘다”(5학년), “기분이 좋고 소화도 잘되고 5교시 수업에 활력이 넘친다”(4학년), “금지되는 것이 없는 기분이다”(4학년), “행복하다”(3학년)와 같은 긍정적 답변이 쏟아졌다.

점심 시간을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주관식 질문) 야외에서 뛰어놀거나 산책을 하고 싶다는 응답이 많았다. 선생님이 점심 시간에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너무너무 답답하고 심심하다”는 4학년 학생은 점심 시간에 꼭 하고 싶은 일로 ‘운동장 옆의 산책로에서 친구와 함께 산책하기’를 꼽았다.

한겨레

안전 사고 책임 추궁, 위축된 교사들

이런 아이들의 마음을 초등학교 교사들은 충분히 헤아리고 있었다. 전국의 초등학교 교사 365명이 내놓은 답변(<한겨레>, 2018. 10~11월 설문조사)에는 깊은 고민이 어려 있었다. 한 교사는 “예전에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 노는 것에 동의했으나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이제는 마냥 찬성할 수 없게 됐다”고 했고, 또 다른 교사는 “다치면 선생 책임이라 (나가 놀도록) 허용이 힘들다”며 “안타까운데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어떤 교사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고 표현했다. 최근 초등학교 하교 시간을 늘리거나 학교의 돌봄 역할을 강화하자는 논리에 교사들이 현실적인 반론을 제기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이 맡은 학급에서 점심식사 뒤에도 교실에 머무르도록 지도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 363명 중 16%(58명)가 있다고 응답했다. 점심시간에 아이들의 자유로운 활동이 부담스러운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 359명 중 244명(68%)이 ‘안전사고 위험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아이들이 자유롭게 흩어져 놀 경우 관리가 되지 않아서(35명·9.7%), ‘미세먼지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27명·7.5%), ‘운동장 등 아이들이 활동할 만한 공간이 좁아서’(18명·5%) 순이었다.

바깥 활동을 못하는 이유로 아이들이 ‘미세먼지’를 가장 많은 꼽은 것과 달리 교사들의 마음 속 이유는 ‘안전사고 문제’가 가장 컸다. 교사들은 ‘안전사고 발생시 책임 추궁, 학부모 항의, 소송 등으로 교사들이 위축되고 있다고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297명(82.3%)이 ‘매우 그렇다’, 53명(14.7%)이 ‘그런 편이다’라고 답해 학교 현장에서 일선 교사들의 위축감이 상당함을 드러냈다.

한 교사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뛰어놀게 하고 싶으나 사고가 발생할 경우 학교와 담임 교사를 물고 늘어지고 책임을 지게 하려는 학부모들 때문에 교사들은 몸을 움추리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안전 문제로 교사 밥줄이 끊긴다면 아이들의 자유를 제약해서라도 안전을 지키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라며 “교사 개인이 전적인 책임을 지는 구조 안에서는 아이들은 절대 자유를 누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5년간 교사 등에 안전 관련 소송 213건

실제 교사들의 90.9%(331명)는 “학생들의 안전 사고나 학생간의 사건사고로 교사나 학교가 소송을 당한 경우를 듣거나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교육부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해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3~2017년 사이에 학생 안전 관리 문제와 관련해 교육감, 학교장, 교사를 상대로 민사나 행정소송이 제기돼 손해배상 등이 확정된 경우는 213건, 배상액 23억4520만원에 달한다. 이러한 소송 등에 대비해 교직원 법률비용보험 가입도 늘고 있다. 응답자 364명 중에서도 77명(21.2%)이 이미 가입했다고 밝혔고, 163명(44.8%)이 “가입을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교사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아이들을 위해 학교 시스템이 바뀔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안을 묻자 다양한 답이 나왔다. ‘학교 안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더 확충한다’(34.8%)와 ‘안전에 대한 지나친 불안감을 경계하는 쪽으로 학내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20.7%)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학내 안전 관련 인력 보강, 학급당 인원 수 줄이기, 안전 사고에 대한 교사의 책임 범위 한정하기, 가정?학교 사이의 신뢰 회복 등을 언급한 교사들도 적지 않았다.

세월호·미세먼지… 높아가는 불안감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학교에서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과 경각심은 높아졌지만 학생 지도에 별다른 대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저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초등 저학년 학생들을 혼자서 돌보느라 담임 교사는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는 현실도 그대로고, 점심 시간에 교사나 학교보안관 등이 순찰조를 짜서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시스템을 갖춘 학교도 많지 않다.

이런 학교 현장의 분위기 속에 부모들의 불안감은 사그러들지 않는다. 초등학교 자녀를 둔 한 여성은 “부모가 맞벌이거나 한부모인 경우 더더욱 부모가 없는 사이 아이가 바깥 활동을 하다가 다치거나 위험에 노출될까봐 노심초사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또 다른 여성은 “안전하다는 조건만 맞으면 바깥놀이를 늘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며 “학교 밖에서도 안전하게 놀 곳을 찾다보니 아이와 실내 놀이시설인 키즈카페에 자주 가게 된다”며 고 말했다.

미세먼지는 바깥놀이의 중요성을 아는 이들조차 무력하게 만드는 거대한 공포로 자리잡았다. 바깥 활동을 하기 좋은 계절인 11월 한 달만 해도 서울 마포구를 기준으로 보면 6일, 10일, 27일, 28일, 29일에 미세먼지가 ‘나쁨’이었고, 그 날짜 전후에도 나쁨 수준에 근접한 대기 상태를 보였다. 미세먼지가 ‘나쁨’ 상태가 되면 각급 학교는 체육시간도 실내에서 수업하고 창문도 열 수 없어 급식 냄새조차 빼기 쉽지 않다.

교사·부모 모두 “안타깝다”… 변화 조짐도

초등학생 자녀의 평일 주중 바깥 활동 시간이 2시간에도 미치지 못 한다고 밝힌 한 학부모는 “미세먼지로 실외 활동 제약이 많은 게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공기가 좋은 날이 거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실내에서 머무는 시간이 너무 많아진다”며 “미세먼지만 없다면 매일 야외로 나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미취학 자녀가 둘이라고 밝힌 한 학부모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도 실외 활동을 못 하고 실내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며 “아이들의 놀 권리가 참으로 지켜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답답하다”고 했고 어른들은 교사와 부모 모두 “안타깝다”고 했다. 변화의 움직임도 있다. 강원도교육청은 올해부터 도내 초등학교 351곳 중 40곳에 점심시간 등을 연장해 하루 100분은 맘껏 뛰어놀게 하자는 취지의 ‘놀이밥 공감학교’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전북교육청도 점심시간 등에 60분 이상 신체놀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놀이밥 60+’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한 교사는 “단순히 바깥 활동, 놀이 등을 할 수 있는 시간만 확대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운영되어야 학생, 교사, 부모 모두 행복하고 지속가능할지 제대로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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