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둘레길 걷기
마음과 일정 맞춰 길동무 ‘모객’
2주 휴가 내 떠난 히말라야 트레킹
해발 4130m 베이스캠프 찍고 오기
하루 5~7시간 걸어 8박9일 일정
우뚝 선 설산, 보름달에 일출
볼 때마다 가슴 뛰고 눈물 찔끔
‘금주’의 밤엔 둘러앉아 책 낭독
하산길 발자국마다 아쉬움 찍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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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에게 히말라야는 지극한 동경의 대상이다. 등반은 쉽지 않지만 산 주변의 마을과 둘레를 걸으며 풍경을 감상하는 트레킹은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전할 만하다. 평소 다리로 하는 활동에 관심 많은 이주현 기자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다녀와 체험기를 썼다.
최초의 결심은, 멀리서 실루엣을 본 5년 전이었다. 네팔 포카라로 출장 갔던 2013년 9월의 아침, 숙소에서 마주한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의 빛나는 자태는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진짜로 결심한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고단한 일상으로 어지러워진 마음을 추스를 곳이 필요했다. 발음뿐 아니라 뜻(수확의 여신)도 아름다운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에 가고 싶다’라고 속으로 되뇌일 때마다 내 지친 가슴에도 찌리릿 푸른빛이 감도는 것 같았다. 둘러보니 나와 증상이 비슷한 이들이 또 있었다. ‘모객’에 성공했고 드디어 올여름 ‘진갈사’(진짜갈사람들)라는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가입자 세 명. 즉각 네팔행 항공권을 끊었다. 올가을 인왕산·안산·심학산 등지에서 소박하게 이뤄진 세차례 전지훈련으로 서로의 체력을 확인했다. 자신감 보다는 우려가 깊어졌다.
하지만 떠났다. 히말라야 트레킹의 ‘기초과정’ 격인 에이비시(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11월19일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12월2일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웬만한 직장인들에겐 쉽지 않은 2주간의 휴가 였으나, 우리는 최근 <한겨레> 경영진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의무 휴가 일수 소진 방침’에 충실히 따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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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지 않고 넉넉한 일정으로
네팔 동서 방향으로 길쭉하게 뻗어 있는 히말라야 산맥에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8000m급 봉우리가 14개 있다. 이 봉우리를 올라가는 행위는 등반 또는 등정으로 불리며 숙달된 산악인 아니곤 엄두를 내기 어렵다. 그러나 이 봉우리들을 올라가기 전 머무는 베이스캠프를 찍는 것은, 걷기만 좋아한다면 평범한 사람들도 가능하다. 그 중 해발 4130m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다녀오는 코스는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산장(롯지) 등 편의·숙박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가장 대중적인 히말라야 트레킹 프로그램으로 통한다. 걸어서 두서너시간 거리마다 작은 산골 마을이 나타나고 여기에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하고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에 캠핑이나 조리 도구가 필요 없다. ‘히말라야 둘레길’ 일부를 걷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곳에 가는 방법은 대략 세가지로 나뉜다. 한국의 패키지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네팔 현지 여행사나 민박집 등을 통해 가이드·포터를 구해 도움을 받거나, 가이드·포터 없이 트레커들만 다니는 것이다. 한국 여행상품을 이용하면 대부분 한국 요리에 숙련된 네팔인들로 구성된 ‘한식 조리팀’이 따라붙기 때문에 매 끼니마다 잡채·불고기·김치찌개·미역국·양(羊)수육·보쌈 등으로 포식할 수 있다. 잘 먹어야 잘 걸을 수 있다는 것인데, 히말라야까지 와서 굳이 닭백숙을 먹어야 하냐는 반발심이 있거나 여행 비용을 아끼고 싶다면 두번째·세번째 방법을 이용하면 된다.
우리는 포카라의 음식점·민박인 ‘낮술’을 통해 현지 가이드와 포터를 구했다. 지역경제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무거운 짐을 지고 그 높은 곳을 올라가는 것은 우리의 실력에 비해 지나치게 무모한 도전처럼 느껴져 가이드와 포터를 따로 구했다. 가이드 ‘허리’는 길 안내·숙소 예약·음식 주문·건강 체크·도보 일정 조정 등을 맡고, 포터 ‘비벡’은 침낭·옷가지·고추장 등이 들어 있는 우리 배낭(17kg)을 옮겨주기로 했다. 진갈사 멤버들은 각각 30~50리터 가방을 멨다. 에이비시는 서두르면 5박6일로도 다녀올 수 있지만 천천히 갈수록 고도 적응 시간이 확보되기 때문에 고산병 발병 가능성이 낮아진다. 우리는 하루에 10㎞가량, 5~7시간 걷는 것으로 잡고 넉넉하게 8박9일 일정을 짰다.
트레킹 첫날인 11월21일 아침 포카라에서 지프를 타고 세시간 남짓 달려 시와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흰 이마를 빛내고 있는 히말라야 남봉과 그 옆 히누출리를 바라보며 첫발을 내디뎠다. 능선이 겹겹이 포개지고 켜켜이 쌓인 다락밭 곳곳에 자리잡은 마을들이 지리산 산골 동네처럼 정다운데, 창공을 가르며 우뚝 서 있는 설산을 바라볼 때마다 심장이 펌프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심쿵!
“나마스테” 네팔 미소 닮은 보름달
트레킹 두번째 날인 지누단다(1750m)?촘롱(2210m)?시누와(2340m)?밤부(2310m) 구간은 히말라야의 읍내라고 할 수 있는 제법 큰 마을 촘롱을 중심으로 갖가지 물품을 실어나르는 포터와 나귀들의 숨소리가 더욱 격해지는 구간이다. 히말라야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자기의 짐을 든 사람과 타인의 짐을 든 사람. 타인의 짐을 든 사람들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가스통·생수통 같은 생필품을 운반하는 사람들과 트레커들의 가방을 멘 이들. 트레커들 가방 무게는 20㎏ 이내로 제한이 되는데 현지 물품을 나르는 사람들은 그런 규제도 없다. 가장 작은 가스통을 기준으로 할 때 빈 통은 7㎏, 액체가스가 꽉 찬 통은 21㎏에 이른다고 한다. 네팔의 ‘가스통 청년’들은 ‘도코’라고 불리는 대나무 광주리에 가스통뿐 아니라 다른 물건도 함께 싣고 마을과 마을 사이 수천개의 계단을 오르내린다.
안나푸르나에 와봤다면, 세상 사람들을 나누는 방법이 또 있다. 안나푸르나에 못 와본 사람과, 왔지만 보름달을 못 본 사람, 그리고 보름달을 본 사람. 날이 어두워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나가서 할 일이 없어 이른 저녁을 먹은 뒤 저녁 8시부터 새벽 6시께까지 숙소에 머물러야 한다. 고산병 걱정에 술도 마실 수 없다. 포커나 화투 같은 취미생활에 어두운 우리 진갈사 회원들은 2촉짜리 엘이디(전기가 부족하다보니 다들 효율이 높은 엘이디 전구를 사용한다) 흐린 불빛 아래에서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같은 책을 소리내 읽는 낭독회를 하다가, 목이 아파지면 누워서 끝말잇기를 하다가, 가위바위보 놀이로 뜨거운 물이 담긴 수통을 돌아가며 끌어안고 추위를 이겼다. 이 천진한 밤, 화장실에 가려고 부스스 일어나 밖에 나가봤더니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마치 집을 덮칠 것처럼 산세가 험준한 산골 마을에 밝게 뜬 보름달은 척박한 자연에서 힘겨운 발걸음을 내디디면서도 “나마스테”라는 외지인의 인사에 꼭꼭 “나마스테”라고 답하는 네팔 사람들의 미소를 닮아 있었다.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는 데우랄리(3200m)?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m)?에이비시캠프(4130m) 구간이다. 고통과 환희는 한쌍이라, 3000m 이상 이르면 어지럼증, 구토 등을 동반하는 고산병 위험이 커지는 반면, 안나푸르나 남봉(7219m)·1봉(8091m)·강가푸르나(7455m)·3봉(7555m)·마차푸차레(6993m)의 장엄한 봉우리가 성큼 다가온다. “산봉우리를 바라보는 것은 신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라고 한 네팔 작가가 말했는데, 아, 믿음이 낯선 자여! 너는 산봉우리를 영접하는 것에도 눈물이 찔끔 나는구나!
풍경의 절정은 단연 에이비시캠프의 석양과 일출이다. 서쪽으로 해가 기울면 동쪽에 있는 마차푸차레가 그 뚜렷한 윤곽으로 황금빛을 가득 받아안는다. 반대로 아침엔 서쪽에 있는 남봉, 1봉 쪽에 첫 햇살이 꽂히면서 일출이 시작된다. 동쪽을 보며 저무는 해를 느끼고, 서쪽을 보며 떠오르는 해를 마음에 담아둔다. 황금색으로 물든 설산의 눈빛은 눈동자를 파고들며 서로의 눈빛 속에서 황홀함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저 빛을 잡고 싶어 산악인 지현옥(1961~1999), 박영석(1963~2011), 신동민(1974~2011), 강기석(1978~2011)은 안나푸르나에 혼을 남기고 떠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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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기 아쉬워…’ 흥얼거린 하산길
하산길엔 발자국마다 아쉬움이 찍혔지만 한편으론 익숙해서 정다운 길이었다. 우리는 “돌아보기 아쉬워 거꾸로 걷는다/ 끝을 아는 내 발길 거꾸로 걷는다”(어반 자카파의 ‘거꾸로 걷는다’)를 흥얼거리며 동지 앞둔 햇볕처럼 자꾸만 짧아지는 길을 안타까워했지만, 한편으론 “설렘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떠올리며 기운을 차렸다. 평소 헤모글로빈 수치가 부족해 에이비시에서 밤새 구토에 시달린 한 진갈사 회원은 고도가 낮아질수록 건강 상태가 좋아져 시누와에선 완전히 기력을 회복하고 란드룩?담푸스?페디 마을로 이어지는 5일간의 하산길 내내 웃음꽃을 피웠다. 길에서 만난 아이에게 초콜릿을 건네며 뭔가 꺼림칙함을 느꼈던 탓인지 그는 몸이 덜 회복된 와중에도 ‘우리가 진정 남을 돕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가난한 이들의 자립을 돕는 진정한 지원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꿈을 꿔 거의 매일밤 지인들과 지지고 볶는 꿈을 꿨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한가지 더, 쑥쓰러운 고백을 하겠다. 네팔인 가이드가 한국어를 모른다는 점을 십분 활용해서, 동료 회원이 고산병을 앓는 와중에도, 나는 엉뚱한 질문에도 친절하게 답을 해주고 진심으로 우리를 걱정해주는 띠동갑 아래 가이드에게 잠시 마음을 뺏기기도 했다. 내게 말을 건네는 그의 눈빛 역시 한없이 따뜻했다는 진갈사 회원의 증언에 용기를 얻어 잠시 지면을 빌렸다. 역시, 사랑은 길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여행의 묘약이다.
진갈사 회원들이 어느날 밤 모여 읽은 책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걷는 사람이 바늘이고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이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이다.” (레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 히말라야 둘레길을 바느질하면서 나는 찢어진 마음을 꿰맸고, 길동무들과 진한 우정을 조각보처럼 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깨달았다. 내가 꿰매야할 것, 이어가야할 사람들…. 길은 어디에나 있다. 세상엔 수많은 길이 있다.
안나푸르나/글·사진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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