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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머니人] 주가 조작, 꼼짝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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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있는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 포렌식(디지털 증거 분석)실. 지난달 22일 찾은 포렌식실에서 김정민 주무관이 컴퓨터 앞에서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 동안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최근 한 상장기업의 내부 정보를 한국거래소 공시(公示) 전에 빼내 불법 주식 투자를 한 A씨의 휴대전화 정보를 분석하는 중이었다. 화면에는 휴대전화 주인의 통화 기록, 메모, 인터넷 검색 기록, 녹음 파일, 문서, 사진 등 8만개 이상의 파일이 빼곡하게 나열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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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있는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 포렌식(디지털 증거 분석)실에서 직원들이 불법 주식 투자에 연루된 스마트폰 정보를 분석하는 모습. 이들은 주가 조작이나 미(未)공개 기업 내부 정보를 활용한 불법 거래 등을 포착·적발해 투자자를 보호하고 금융시장 왜곡을 막는 역할을 한다. /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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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A씨가 통화를 가장 많이 한 상위 10여명의 사람과 그들 사이의 관계도 거미줄 같은 형태의 그래프로 작성돼 있었다. 최근에는 불법 주식 거래에서 주모자들은 뒤에 숨고 앞에 '바지사장'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용의자들이 의사소통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자주 하는지 등 '관계' 자체도 혐의를 입증하는 중요한 정황 증거가 된다. 김 주무관은 "증거가 될 수 있는 문자 메시지 딱 한 줄이라도 찾기 위해서 길게는 일주일씩 휴대전화 속 파일 수만 개를 들여다봐야 하는 게 우리의 일상"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3년 출범한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자조단)은 금융위 11명, 검사와 검찰 수사관 등 6명, 금감원과 한국거래소, 예금보험공사 등에서 파견 온 직원 24명으로 이뤄진 조직이다. 주가 조작이나 미(未)공개 기업 내부 정보를 활용한 불법 거래 등을 포착, 적발해 검찰에 고발하거나 징계해 시장을 왜곡하는 행위를 막는 게 목표다. 광범위한 수사를 하는 검찰과 달리 자본시장법 관련 분야만 조사할 수 있지만 압수수색 영장을 받을 수 있는 강제조사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올해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건이나 2016년 한미약품 내부 정보 유출 사태 등이 모두 자조단이 깊숙이 관여해 혐의를 밝히는 데 일조했다.

현대인의 '분신' 휴대전화가 핵심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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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을 떠도는 소문, 이례적인 대규모 주식 거래, 기업 대주주의 갑작스러운 지분 변동 등이 자조단 수사의 출발점이다. 이때 다양한 조사 기법이 동원되는데 가장 중요한 실마리가 현대인의 '분신'과 같은 휴대전화다. 통화 내용 녹음, 회사 문건 사진, 계약이나 투자 관련 문자 메시지 등 허투루 볼 만한 것들이 없어 자조단에게는 정보의 보고(寶庫)나 다름없다.

휴대전화가 사건을 돌파하는 주요 단서가 된 대표적인 사례가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 사건이다. 그는 2016년 한진해운이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기 직전 갖고 있던 주식을 팔아 10억원 이상의 손실을 피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자조단은 당시 최 전 회장이 회사가 구조조정된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팔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곧바로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 그의 휴대전화는 정작 별 실마리 없이 '깨끗했다'. 조사가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 같은 순간, 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자조단이 최 전 회장 측근 중 한 사람의 휴대전화에서 삼일회계법인 안경태 전 회장과 최 전 회장이 주식 매각 직전 전화 통화를 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물증을 발견한 것이다. 이 증거는 검찰 수사에서도 안 전 회장이 최 전 회장에게 구조조정 정보를 알려줬다는 의혹을 입증할 '스모킹건'(중요한 증거)으로 활용됐다.

가짜 뉴스와의 전쟁

'가짜 뉴스'를 활용한 불법 거래와의 전쟁도 치열하다. 지난 10월 말 시장을 뒤숭숭하게 했던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개인 제재)' 관련 루머가 그중 하나다. 당시 미 재무부가 대북(對北) 제재 위반 가능성을 이유로 국내 은행 중 하나를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으로 정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특정 세력이 공매도를 위해서 소문을 퍼뜨린 뒤 은행 주가를 떨어뜨리려고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와 자조단이 현재 추적 중이다.

인터넷 포털이나 투자 동호회 게시판,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등이 활성화하면서 가짜 뉴스를 이용한 불법 거래는 최근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 일부 상장사의 경우 해외 수출 계약을 맺거나 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처럼 공시를 내고, 이를 뉴스로 꾸며 인터넷에 유통시키는 수법으로 주가를 띄우는 수법을 쓰고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김민석 자조단 사무관은 "일부 인터넷 매체가 상장기업과 기업 정보 유통 계약을 맺어 그 회사가 발표하는 걸 기사처럼 바꿔 그대로 실어주는 일도 있는데,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 인터넷 동호회 등으로 퍼지면서 투자자들이 속는 일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한국 기자(korej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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