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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朝鮮칼럼 The Column] 외국인 전용병원 개설을 허가한 원희룡 지사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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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資로 외국인 환자 받으면 밑천이나 유치 노력 없이도 국내에 '새 일자리' 생겨

참신한 발상과 시도로 '일자리를 만든' 실적 갖고 지도자 평가하고 뽑아야

조선일보

박병원 前 한국경총 회장


원희룡 제주도 지사가 지난 5일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 뤼디(綠地)그룹이 추진해 온 녹지국제병원의 개설을 허가한 것은 암담한 상태의 일자리 만들기 전선에 활로를 여는 쾌거다. 먼저 '외국인 투자 유치에 의한 외국인 전용병원'이 얼마나 좋은 일자리 만들기 수단인가를 보자.

중국 등 후발국들의 거센 추격으로 제조업만으로는 필요한 일자리를 다 만들 수 없으므로 지식 기반 고(高)부가가치 서비스업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서비스산업도 거의 모두 공급과잉과 과당경쟁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해외 수요를 잡아 올 수 있는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국제경쟁에 노출되어온 항공·해운 등을 제외하면 그나마 국제경쟁력이 있는 분야는 의료와 한류(韓流) 엔터테인먼트 산업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80년대에 우리가 가진 최고의 인적자원을 공대에 퍼부어 그 인력으로 제조업을 세계 최강 반열에 올려놓은 것처럼, 90년대 이후 우수한 젊은이들이 의대 쪽으로 쏠린 결과, 지금 우리는 경쟁력 있는 의료 인력을 갖게 됐다. 지금까지 제조업이 한국 경제를 이끌어 왔다면, 앞으로는 의료산업이 일자리 창출과 외화 획득을 책임질 만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의료산업이 그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막는 규제는 한두 개가 아니지만, 가장 근본적인 장벽은 병원에 대한 투자를 막는 의료법 규제다. 법에 의하면 병·의원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의사 면허를 가진 개인'과 '비영리법인'으로 돼 있다. 병·의원을 열어서 영리(營利)를 하지 말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법인이 병원을 할 때 비영리법인으로 하라는 것은 "병원을 만드는 데 드는 밑천을 출연(기부)으로 조달하고 투자를 받지 말라"는 뜻일 뿐 의료산업을 영위해 돈을 벌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실제 모두가 영리를 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 유치가 가능한 병원을 만들려면 큰 밑천이 든다. 그런데 이를 기부에 의해 조달하고 투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일부 반대론자의 주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마당에 '본전 찾을 생각'을 반드시 하는 환자 송출국 투자자의 돈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더 확실한 환자 확보 방법이 있을까? 투자자가 병원 투자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환자 유치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밑천도 들이지 않고, 환자 유치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일자리만 차지하면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비영리법인 논쟁을 하면서 15년 제자리걸음 하는 동안, 중국 의료산업은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이고 원격진료 기술을 발전시키는 등 급속히 경쟁력을 높여왔다. 이들도 조만간 한국 병원을 찾지 않게 될 것이니, 환자 유치를 위해서라도 '외국인 투자자'가 꼭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투자를 허용하면 외국인 투자가 줄을 이을까? 천만의 말씀, 다른 외국인 투자 유치와 마찬가지로 세제·금융 등의 혜택을 주면서 열심히 노력해야 겨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해에 고용이 128만 명이나 줄었던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 창출은 모든 정부의 비원(悲願)이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일자리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이 없는 이유가 뭘까? '지금까지 가능하지 않았던 일'들을 가능하게 해 줘야 새 일자리가 생기는데 그런 규제 혁파에 성공한 정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사업들은 모두 공급과잉·과당경쟁에 시달리고 있고, 이런 업종에선 투자가 이뤄져 새 일자리가 생기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다른 누군가가 망해서 그만큼 일자리가 없어지기 십상이다.

외국인 환자를 유치해 일자리를 만들어 보자는 시도는 지금까지 가능하지 않았고, '새로운 수요'를 확보하는 일이기에 그만큼 의미가 크다. 그리고 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의한 외국인 전용병원 구상은 김대중 대통령 때인 2002년 경제자유구역법에서 시작된 것인 만큼, 인천경제자유구역 등도 같은 모델로 투자개방형 병원을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방식으로 일자리를 만들려는 시도로는 윤장현·이용섭 전·현 광주시장의 '광주형 일자리'도 있다. 이 역시 광주시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한국GM의 철수로 빈 자동차 공장을 갖고 있는 군산은 강력한 후보가 될 수 있다.

이런 참신한 시도가 계속 나타나서 다음 대선에서는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공약이 아니라 '일자리를 만든' 실적으로 후보를 평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지나친 꿈일까.

[박병원 前 한국경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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