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9 (목)

[이슈분석]영리병원 논란 속 대형병원 적자 늪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자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제주 녹지국제병원이 국내 1호 영리병원으로 개설 허가를 받았다. 2002년 김대중 정부에서 영리병원 설립을 검토한 지 16년 만이다. 의료 부문에서 금기시되던 '영리'라는 간판을 달고 환자를 받는다.

영리병원의 본뜻은 투자개방형 병원이다. 외부 투자를 유치해 의료 인프라와 서비스 고도화를 추구한다. 병원 수익은 투자자 배분, 병원 재투자 등에 자유롭게 쓴다.

국내 병원이 1호 영리병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영리'라는 단어는 조심스럽다. 하지만 갈수록 악화되는 수익성을 고려할 때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국내 대표병원마저 의료수익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연구수익 강화와 외부투자 등 활로 모색이 절실하다.

◇의료이익 적자 태반, 연구·시설로 간신히 충당

병원 매출 구조는 진료, 수술 등 '의료수익'과 연구과제, 각종 편의시설 등 '의료 외 수익'으로 나뉜다. 국내 주요병원 대부분은 의료수익이 적자거나 줄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추진되면서 매출 하락은 가속화된다.

지난해 기준 국내 빅5병원(서울대병원, 아산사회복지재단, 연세의료원, 삼성서울병원, 가톨릭의료원) 중 전년대비 의료이익이 성장한 곳은 연세의료원이 유일하다. 서울대병원은 분당서울대병원 실적을 제외하면 의료이익은 120억원 적자다. 적자 폭이 2016년과 비교해 30% 가까이 늘었다. 삼성서울병원은 2016년 570억원 적자이던 의료이익이 지난해에는 638억원까지 늘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아산사회복지재단 등도 100억~150억원씩 의료적자가 심화됐다.

공공의료기관 역할을 하는 국립대병원 사정도 비슷하다. 공공기관경영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립대병원 10곳 중 9곳이 의료이익이 적자 상태다. 충북대병원만 작년 21억9000만원 의료이익을 남겼을 뿐 전북대병원·경상대병원(-244억원), 경북대병원(-147억원), 전남대병원(-15억원) 등 대부분 병원이 적자다.

의료적자는 대부분 의료 외 수익으로 메운다. 정부 연구개발(R&D) 과제를 수주하거나 병원 내 각종 부대시설에서 수익을 낸다. 서울대병원의 작년 의료외 수익은 1653억원으로, 전년대비 약 8% 늘었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은 이 수익마저 전년대비 4% 줄면서 실적이 더 악화됐다.

김완배 대한병원협회 국장은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건강보험 급여 확대, 선택진료 폐지 등으로 의료수익이 줄었다는 병원이 늘었다”면서 “전반적인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병원 수익구조가 약해졌다”고 분석했다.

◇'적자→의료 서비스 질 저하' 당연 수순

지난해 스타벅스코리아는 매출 1조2634억원, 영업이익은 1144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대비 26%, 34% 증가했다. 스타벅스코리아와 매출이 유사한 삼성서울병원은 1조2392억원의 매출을 거뒀지만, 적자를 포함해 순자산마저 전년대비 99%나 줄었다. 업종과 원가, 인건비 등 단순 비교가 어렵지만, 병원 업계에서는 커피 값보다 못하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병원 적자가 지속될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간다. 의료 서비스 수준이 떨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의료 서비스 가격은 사실상 정부가 통제한다. 비급여 항목으로 수익을 충당하는 것도 한계다. 결국 의료수익을 늘리기 위해서는 외래, 수술 등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대형병원 간 환자 유치 경쟁은 의료전달체계 왜곡을 심화시킨다. 병원 간 병상 수 늘리기 경쟁에 몰두하면서 서비스 질은 하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대형병원이 적자에 허덕이지만 값비싼 암 치료기기나 신축병원 구축에 열을 올리는 것은 의료수익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투자 회수를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하는데, 제한된 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보다보면 의료 서비스 질 하락이나 의료 사고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 수익성 하락에도 대형병원 병상 수 증설 움직임은 뜨겁다. 수도권에서만 이화의료원(마곡), 가톨릭중앙의료원(은평), 연세의료원(용인), 중앙대병원(광명), 을지대병원(의정부)이 새 병원을 건립 중이다. 충남대병원, 전북대병원, 경희대병원 등도 새 병원을 건립하거나 병상 수를 증설한다. 대형병원이 의료수익 확보에 혈안이면서, 중견·중소병원 경영은 더 어려워진다.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외치는 정부 목소리가 헛도는 이유다.

◇기술사업화 모델 정립, 병원 경쟁력 강화 방안

현 구조에서 병원이 의료수익만으로 경영하기는 어렵다. 장례식장, 푸트코트, 주차장 등 부대시설로 충당하는 것 역시 한계다. 결국 R&D 기반 기술사업화가 유일한 대안이다. 정부는 연구중심병원 제도를 시행해 병원 연구 역량 확보와 창업을 유도한다. 헬스케어 산업이 주목 받으면서 대형 국가 과제도 발주돼 병원 참여가 확산된다.

미국 등 선진국 병원의 연구 부문 매출은 평균 20~30%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해 기준 서울대병원이 985억원, 연세의료원 339억원, 분당서울대병원 329억원 등을 기록했다. 전체 매출의 10%도 안 된다.

의료수익에 치우친 매출 구조를 연구 부문으로 전환하는 것도 쉽지 않다. 사업화와 재투자를 위한 전담 기관(기술지주회사, 산병협력단), 제도가 미비하다. 국내 병원 설립 주체에 따라 재단법인, 사회복지법인, 학교법인 등으로 나뉜다. 재단이나 사회복지법인은 국내법인 지분을 5% 이상 보유 못 한다. 현행법으로는 기술 사업화와 수익을 재투자하는 전담 기관 설립이 원천 금지된다. 의료법인은 성실공익법인 인정을 받아야 자회사 설립이 가능하다. 병원이 기술사업화를 위해 자회사를 설립하려면 해외의료 수출 등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학교법인 소속 병원은 기술지주회사 설립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자회사가 거둔 수익은 병원이 아닌 학교(대학)로 간다. 병원으로 재투자될 여지가 적다.

병원 수익성 제고와 의료 서비스 질 고도화를 위해서는 연구 역량 강화가 필수다. 법을 개선해 기술이전, 창업, 재투자, 자회사 설립 등을 위한 산병협력단 설립이 허용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규제개선을 약속할 정도로 정부도 필요성을 인지한다. 7월 정부 부처 합동으로 연내 산병협력단, 첨단기술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병원 자회사 설립과 기술 사업화를 위해서는 보건의료기술진흥법(보건복지부), 기술이전법(산업통상자원부) 개정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을 위해 지난달 연구용역을 마무리하고, 국회의원 발의를 준비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기술이전법 개정을 논의한다. 정부가 발표한 연내 추진은 물 건너갔다. 개정안 발의, 처리, 후속법안 마련 등을 고려하면 내년 하반기 정도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별도 법 마련보다는 신속한 처리를 위해 개정안 국회의원 발의로 추진 중”이라면서 “병원 자회사 설립 등 사업화 허용 내용이 담겼으며, 후속법안 마련까지 고려하면 내년 중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