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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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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과 약은 한 끗 차이 …"건강에 좋다" 한때 라돈 목욕탕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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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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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서 판매중인 제품을 대상으로 방사선 라돈 측정을 하고 있는 모습. 침대, 마스크, 생리대에 이어 건축자재까지 라돈으로 인해 라돈 소동이 계속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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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돈 소동이 계속되고 있다. 라돈 침대, 마스크, 생리대에 이어 건축자재가 또 문제란다. 모르고 있었는데 건물의 벽체와 대리석 등에서 기준치의 수배 혹은 수십 배의 라돈이 검출됐다고 야단이다. 건물의 벽체와 바닥을 뜯어내고 재시공하는 아파트와 초등학교도 생겨났다.

라돈은 방사선을 내놓는 핵물질이다. 핵은 종류가 많다. 원자폭탄으로 쓰는 우라늄, 플루토늄이 있는가 하면 진단에 사용하는 X선도 있고, 이보다 위력이 약한 라돈과 3중수소도 있다. 모든 핵종은 방사선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 위해성은 종류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방사선에는 알파·베타·감마선이 있다. 감마선이 가장 강하고 알파선이 제일 약하다.

라돈에 조금 떨어져 있으면 피해 없어
또 방사선은 방사 거리가 문제가 된다. 방사성 물질에 가까이 있을수록 피해는 커진다. 라돈은 약한 알파선을 내놓고 방사 거리도 짧아 조금 떨어져 있으면 피해가 없다. 하지만 침대와 생리대의 경우는 피부가 맞닿아 있고 기체로 발산되면 호흡기로 흡입되기 때문에 위험하다.

라돈은 라듐이 붕괴하면서 나오는 기체이다. 암석이나 토양, 건축자재 등에 광범위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라돈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받는 자연 방사선량의 절반 정도가 라돈에 의한 것이라 한다. 대기 상태에서는 라돈의 피폭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피폭량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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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돈 검출 논란이 된 생리대. 대기 상태에서는 라돈의 피폭량이 그렇게 많지 않아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피부에 맞닿는 침대나 베개나 생리대의 경우엔 사정이 달라진다. [사진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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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밀폐된 공간에서 농도가 높을 때나, 피부에 맞닿는 침대나 베개나 생리대의 경우엔 사정이 달라진다. 우리나라 전체 폐암 발병의 3~12%가 라돈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라돈에 대한 긍정의 역사도 있다. 한때 국내에서도 라돈 탕이라는 것이 유행했다. 목욕탕에 라돈가스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장착해 건강에 좋다고 선전한 것이다. 이는 일본에서 시작됐다. 물론 라돈의 농도가 낮으면 인체에 무해하긴 하다. 아니 저농도에서는 인체에 오히려 이롭다는 설도 있다. 미량의 방사선은 신체 방어시스템을 활성화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거다.

이른바 ‘호르메시스’ 이론이다. 양이 많으면 독이 되나 적으면 오히려 약이 된다는 논리다. 돈을 주고 방사선을 쬔다는 얘기다. 이 또한 유사과학(사이비 과학)이 부른 또 하나의 버전에 해당하긴 하지만 온전히 부정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자연계에는 수만 종류의 화학물질이 존재한다. 인체에 해로운 것과 유익한 것으로 분류하지만 이런 분류 방법이 과연 옳은가 하는 거다. 호르메시스의 이론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약과 독은 양이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몸에 좋다는 것도 지나치면 해롭고 해로운 것도 미량이면 영향이 없거나 오히려 이로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기준이 모호하긴 해도 비타민과 미네랄도 지나치면 해가 되고 극약인 보톡스도 양이 적으면 약이 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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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톡스는 1000만분의 1g만 먹어도 사람이 죽는다는 맹독성 물질이다. 그런데 적은 양으로는 미용과 사시에 좋고, 천식 등 20여 질병에 듣는 치료 약으로도 사용된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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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톡스는 1000만분의 1g만 먹어도 사람이 죽는다는 맹독성 물질이다. 그런데 적은 양으로는 미용과 사시에 좋고, 천식 등 20여 질병에 듣는 치료 약으로도 사용된다. 뱀독, 벌 독, 전갈 독 등도 치료 약으로 쓰인다. 뱀독은 치매와 파킨슨, 호주 너구리 독에서는 2형 당뇨병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

세간에는 어떤 식품이나 물건에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검출되기만 하면 큰일 날 것으로 매도한다. 또한 그 반대현상도 벌어진다, 좋다는 것이 발견되면 앞뒤 가리지 않고 호들갑을 떤다.

예를 들어보자. 항암효과가 있다는 파네졸이 맥주나 포도주의 몇십 배가 있다고 해 한때 막걸리의 소비가 늘어난 적이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항암효과를 나타내려면 한꺼번에 750cc짜리 막걸리 17병 이상을 마셔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얼마 전에는 참기름에 1군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나왔다고 소동이 벌어졌다. 또 메주와 된장에 강력한 발암물질인 아플라톡신이 검출됐다고 난리였다. 하지만 참기름이나 메주 등에 이런 물질이 반드시는 아니지만 간혹 검출된다. 그러나 양의 문제다. 기준치 이하의 미량이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도 세간에는 양과 관계없이 검출되기만 하면 소동이고 침소봉대해 소비자께 공포감을 조성한다.

독이냐 약이냐는 양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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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가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중 제품 중 방사선 라돈이 나오는 제품들을 모아 측정 시연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시연과 기자회견을 통해 국산 베개(메모리폼), 라텍스 매트리스, 전기매트 등의 제품에서 기준치를 훨씬 웃도는 라돈이 검출되고 있다며 정부의 조속한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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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이 발달해서다. 과거보다 분석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만 해도 물질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식품 속에 있는 양이 mg(1000분의 1g) 아니면 μg(100만분의 1g) 이상이어야 측정이 가능했다. 지금은 무려 10억분의 1g인 ng, 아니 pg(1조분의 1g)까지도 검출이 가능하다.

옛날에는 없다고, 무해하다고 결론 내린, 있으나 마나 한 양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물질이 있기만 하면 큰일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먹어서는 안 되는 식품으로 매도한다.

모든 유해물질에는 기준치가 있다. 이를 넘기지 않으면 인체에 별 영향이 없다고 하는 양이다. 물론 유해물질이 미량이라도 먹지 않는 게 좋긴 하다. 그러나 유해물질이 전혀 없는 식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분석기술을 들이댄다면 말이다. 우리가 늘 먹는 채소나 과일에도 농약 등 유해물질은 반드시 있다. 아니 쌀에도 있고 빵에도 있다.

인간의 몸은 그렇게 허술하지가 않다. 당신이 낮잠을 자거나 넋 놓고 있어도 수많은 세포가 당신 몸을 지키기 위해 단 1초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파수를 보고 있다. 미량은 알아서 감당하고 무해하게 처리한다. 그렇게 노심초사할 일이 아니다. 노고를 아끼지 않는 간이나 신장 등에 고맙게나 생각하자.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leeth@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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