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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美·中 힘겨루기에 IT 기업들도 불똥…‘화웨이 사태’로 애플·구글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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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무역·안보 갈등의 불똥이 정보기술(IT) 기업들에까지 튀었다. 미국과 중국은 자국을 대표하는 IT 기업을 내세워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중 갈등이 경제와 정치, 기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격화하는 모양새다.

미국이 중국의 ‘5G(차세대 통신기술) 굴기’ 싹을 자르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하며 중국 최대 통신기업인 화웨이를 공격하자 중국도 애플 보이콧(불매 운동)에 나섰다. 애플 제품을 쓰는 직원에게 벌금을 물리는 중국 기업도 생겨났다. 지난 1일(현지 시각) 미국 정부가 화웨이 창업자 딸 멍완저우(孟晩舟·46)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대(對)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캐나다에서 체포하자, 무역전쟁을 ‘휴전’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두 나라 간 신경전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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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조선DB


여기에 검열 가능한 중국용 검색 엔진을 개발하며 중국 재진출을 노렸던 구글은 미 정치권과 직원들 반발에 부딪혀 검색 엔진 출시 계획을 취소했다.

◇ 중국 IT 산업 경계한 美, ‘협상 카드’로 화웨이 잡다

화웨이는 미국이 중국 코를 눌러놓을 수 있는 좋은 목표물이다. 승승장구하는 화웨이의 기를 눌러 놓는다면 앞으로 미·중간 무역·안보·IT 경쟁에서 미국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런정페이 회장이 1987년 중국 선전에서 세운 화웨이는 통신장비 분야에서 에릭슨 등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됐다. 휴대폰 분야에서도 올 상반기 애플을 누르고 세계 2위(판매량 기준)에 올랐다.

중국 5G 산업을 이끄는 화웨이가 본격적인 5G 진입을 앞둔 미국의 타깃이 됐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2020년 5G 상용화를 목표로 할 정도로 세계 5G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이밖에도 중국이 반도체·인공지능(AI) 등 핵심 기술 육성 정책을 육성하며 미국에 맞서자, 미국은 이를 경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IBM·퀄컴 등 미 IT 거물 최고경영자(CEO)들을 비공개로 불러 모아 중국을 견제할 방안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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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완저우(46)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2015년 열린 화웨이 파이낸스 포럼에서 연설하는 도중 웃고 있다. /화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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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화웨이 사태에서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중국이 아니었다. 지난 7일 멍완저우의 보석 요청이 거부되자 중국은 캐나다 전직 외교관을 억류했다. 이를 두고 중국의 ‘보복성 조치’라는 관측이 나왔다. 캐나다는 캐나다인 억류가 멍완저우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멍완저우는 11일 보석금 1000만캐나다달러(약 84억5000만원)을 내고 전자발찌를 차는 조건으로 석방됐다.

미국도 화웨이 사태를 미·중 무역전쟁 협상 카드로 꽉 쥐겠다는 셈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멍완저우 체포와 관련, "국가 안보나 미·중 무역 협상을 위해서라면 직접 개입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미·중 무역협상 지렛대로 삼겠다고 했다. 향후 회담에서 멍완저우 체포를 거론하며 중국 진출 미국 기업에 대한 ‘강제 기술 이전’ 이슈와 특허 등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미국 기업들에 대한 중국의 사이버 해킹 등을 주요 의제로 삼겠다는 뜻이다.

◇ 불똥 튄 애플, 中서 보이콧 움직임…"애플 제품 사용한 직원은 벌금"

화웨이 사태 직격탄은 미국 최대 스마트폰 업체인 애플이 맞았다. 화웨이 사태를 ‘모욕’으로 여긴 중국인들은 화웨이와 경쟁하는 애플에게 보이콧이라는 총구를 겨눴다.

11일 CNN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이 자사 직원들에게 "애플 제품을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 기업들은 애플 제품을 쓰다 걸린 직원에게 벌금을 매기거나 중국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직원에게는 보조금을 지급했다. 또 화웨이 지지를 촉구하는 공문을 발행한 곳도 있었다. 아직 주요 기업이나 중국 정부 부처는 공식적인 보이콧에 나서지 않았다.

애플 보이콧은 소규모 업체들이나 단체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중국 난충상공회의소는 성명을 내고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고자 한다. 중국인이 단결해 우리 제품을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선전에 있는 전자부품 공급업체진 멍파드도 "화웨이 칩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며 화웨이 스마트폰을 사는 직원에게는 가격의 15%를 보조해주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러면서 "애플 아이폰을 산 직원에게는 아이폰 가격만큼의 벌금을 매기겠다"고 했다. 컴퓨터 등 회사 내에서 쓰이는 장비도 미국산은 금지됐다.

쓰촨성에 있는 IT 기업 청두RYD도 회사의 모든 장비를 화웨이 제품으로 구비하고 화웨이 제품을 사는 직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회사는 여러 직원이 보조금을 신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쓰촨성 상공회의소도 애플 제품을 산 사람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화웨이 제품을 구입하면 보너스 10%를 주겠다고 밝혔다.

보이콧 움직임은 고가의 패딩으로 유명한 캐나다 의류업체 캐나다구스로까지 번졌다. 캐나다가 미국의 요청으로 멍완저우를 체포했기 때문이다. 중국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에 멍완저우 체포를 항의하며 캐나다구스 불매 운동을 촉구하는 글이 게시됐고 중국 관영 환구시보가 이를 다루면서 빠른 속도로 퍼졌다. 이에 캐나다구스 주가는 닷새 사이 20% 폭락했다.

중국인들은 자국에 불리한 문제가 불거질때마다 불매 운동으로 분노를 표출해왔다. 이들은 2012년 일본과의 영토분쟁으로 일본 기업을 보이콧했으며 2008년 프랑스 정부가 티베트 독립 지지자들을 지원하자 프랑스 기업을 보이콧했다.

앞서 중국 법원은 애플 아이폰 구형 제품에 대해 판매 금지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중국 신화망, 인민망 등은 11일 "중국 푸저우 지방법원이 지난달 30일 애플에 대해 퀄컴의 특허 2건을 침해했다고 판결하고, 아이폰6s부터 아이폰X(텐)까지 총 7종을 중국 내에서 판매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애플 신제품인 아이폰XS·XS 맥스·XR 판매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구형 제품 판매를 중단하면 애플 실적에 영향을 주게 된다.

애플은 즉각 반발하면서 항소했다. 이를 두고 미국 정부가 화웨이 사태를 촉발한 것에 대한 중국 정부의 반격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 美·中 갈등 상황 속, 中 재진출 포기한 구글

미 IT 거인 구글의 중국 재진출 길도 무산됐다. 순다 피차이 구글 CEO는 11일 미 의회에 출석해 중국 정부의 검열 정책에 맞춘 검색 엔진을 개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미·중 갈등이 무역·안보에서 IT까지 확대되는 상황에서 미 정치권과 직원들이 사용자 자유를 침해하는 중국용 검색 엔진 개발 계획을 강하게 비판한게 작용한 것이다.

피차이 CEO는 이날 미 하원 법사위원회에 증인으로 나와 구글의 중국용 검색 엔진 개발 프로젝트인 ‘드래곤플라이’와 관련 "지금 당장 중국에 재진출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증언에서 수차례에 걸쳐 드래곤플라이 프로젝트를 개시할 계획이 없음을 강조했다. 피차이 CEO는 중국 당국과도 검색 엔진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시실린 민주당 하원의원은 피차이 CEO에게 "현재 중국 정부 체제에서는 당신이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등 보편적 가치를 약속하면서 중국에서 활동할 수 있다고 상상하기 어렵다"고 계속 지적하기도 했다.

드래곤플라이 프로젝트에서 개발하는 중국용 검색 엔진은 중국 당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인권·민주·종교 등 이슈를 자동 검열·통제하는 기능 등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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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다 피차이 구글 CEO는 2018년 12월 11일 중국 정부의 검열 정책에 맞춘 검색 엔진 ‘드래곤플라이’ 프로젝트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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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중국에서 검색엔진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중국 정부의 검열을 비판하며 서비스 제공을 중단했다. 그러나 지난 8월 구글이 중국 재진출을 위해 중국 정부의 요구에 협조하는 검색 엔진 드래곤플라이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 때문에 구글은 내·외부적으로 비판에 직면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지난 10월 드래곤플라이 프로젝트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펜스 부통령은 구글을 콕 집어 언급하며 "구글은 중국 공산당의 검열을 강화하고 중국 고객들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드래곤플라이 앱 개발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구글 직원들까지도 프로젝트를 반대하고 나섰다. 1400명이 넘는 구글 직원은 검색엔진의 투명성을 요구하고 회사를 비판했다. 일부 정보를 차단하는 검색엔진이 중국 정부가 발생시키는 인권 문제를 묵인하는 일이며, 구글의 정신인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는 모토와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다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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