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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KTX 탈선사고가 노조 탓? 겨눠야 할 대상은 다른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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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 등 경제 부처를 맡아 세종시를 지키고 있는 노현웅입니다. 회의 참석이며 취재원과의 만남 등 때문에 오송·조치원·서울역을 전전하는 삶을 살고 있는 까닭에, 지난 8일 강릉에서 일어난 케이티엑스(KTX) 탈선사고 기사를 쓰며 ‘남일이 아니구먼’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궤도를 벗어나 ‘ㄱ’자로 꺾인 열차를 바라보며 저처럼 불안감을 느낀 국민들이 많으실 듯 합니다. 철도는 이미 국민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잡은 공공 운송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 걸까요? 보수언론 등 보수진영 쪽에서는 이 사고가 모두 철도노조 때문이라는 듯 연일 노조 때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지난 며칠간 보수언론은 오영식 전 코레일 사장과 철도노조가 코레일을 ‘노조왕국’으로 만들었다고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노조가 득세했고, 이들 ‘철밥통’의 무사안일이 사고의 위험을 키웠단 겁니다.

잘못이 있다면 비판을 받아야겠지만, 이런 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먼저 지금까지 드러난 사고 원인은 코레일과 철도노조보다 철도시설공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오류 표시가 잘못 전달된 선로전환기는 지난해 강릉선 개통 당시부터 설계가 거꾸로 돼 있었습니다. 철로와 신호체계의 시공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책임집니다. 그렇다면 이 ‘오조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 답은 2004년부터 시작된 ‘상하분리(철도 운영은 코레일이, 철도 건설은 시설공단이 맡는 체제)’와 철도민영화의 과정에서 찾아봐야 합니다. 국토부 외청이었던 철도청은 노무현 정부 당시 시설공단과 쪼개져 공기업인 철도공사(코레일)로 전환됩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본격적인 철도민영화가 추진됩니다. 코레일에서 ‘알짜노선’인 수서고속철도만 떼어 민간에 넘기는 구상이었습니다. 정부는 “독점구조가 방만경영으로 이어진다”며 민영화를 밀어붙였지만, 그때마다 철도노조(코레일 노조)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특히 철도노조는 국토부가 수서고속철도(SR) 설립을 강행한 2013년 겨울, 22일간의 초장기 파업에 나섰습니다. 이 철도파업이 국민적 지지를 받으면서, 민간에 넘기려던 수서고속철도는 코레일의 자회사로 남게 됩니다. 보수정부 내내 사력을 다한 민영화의 결론이라기엔 어정쩡한 마무리였습니다. 민영화 지지세력에게 철도노조는 ‘눈의 가시’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이번 사고를 기회로 철도노조를 때리는 것은 과도합니다. 특히 ‘코레일은 노조왕국’이라는 주장은 과잉을 넘어 사실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쪽에서는 노조왕국의 징표로 ‘해고자 복직’과 ‘케이티엑스 승무원 특별채용’을 꼽았습니다. 앞서 오영식 전 코레일 사장과 철도노조는 철도파업 등으로 해고된 노동자 98명이 일터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경찰을 총동원하고 검거작전을 생중계하다시피했던 2013년 철도파업에 대해, 최근 사법부는 무죄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이들의 복직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케이티엑스 승무원들은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하기 위해 볼모로 잡았던 이들입니다. 2심까지 ‘불법파견’이 인정돼 복직대상이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양승태 대법원은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이들을 다시 길바닥으로 밀어냈습니다. 이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서는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이들이 일터로 돌아온 것은 노조왕국이란 방증이 아니라,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철도노조를 ‘실드’ 치려는 게 아닙니다. 과도한 ‘노조 때리기’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문제를 뒤켠에 미루기 때문입니다. 한 달 동안 10여차례 사고가 날 정도로 철도안전이 무너져 내린 이유는 명백히 정책의 실패 탓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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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부 임기 내내 국토부가 철도민영화를 밀어붙이는 동안, 철도안전을 위해 협업해야 하는 코레일과 시설공단은 사실상 적대적인 관계에 놓였습니다. 이들은 10년 동안 조직과 예산, 권한 범위를 놓고 싸움을 벌여왔습니다. 철도역사 소유권, 관제권, 유지보수 권한, 알짜노선 등 국토부는 매번 그럴듯한 ‘먹잇감’을 꺼내들어 이들의 대립을 부추겼습니다. 철도민영화를 추진하기 위해 코레일의 힘을 줄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철도 거버넌스 붕괴를 조장한 직업 관료들이 여전히 국토부 철도국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언젠가 정권이 교체되면 다시 철도경쟁체제와 민영화의 효율성을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안전한 철도를 복원하기 위해 우리가 주시해야 하는 대상이 ‘방만한 철밥통’ 철도노조인지, 구조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국토부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하는 이유입니다.

노현웅 경제팀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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