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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남성 육아휴직 장려…인프라·정책은 여전히 '육아=여성 몫' [김현주의 일상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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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저출산은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저출산을 넘어 가히 '초(超)저출산'이라 할만합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올해 3분기 0.95명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0.10명 낮아졌습니다.

현재 인구를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2.1명은 되어야 하는데, 연간으로 봐도 1.0명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상태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미래는 매우 어둡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지 않고, 육아 때문에 여성의 경력이 계속 단절된다면 많은 부부가 아이를 낳는 일을 기피할 것입니다. 이제 남성의 육아 참여는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다행히도 지난 10년간 육아휴직자 가운데 남성 비율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부가 남성의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사회적 분위기도 남성 육아휴직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육아를 전적으로 여성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실제 육아를 실행에 옮긴 남성이 많아졌다는 것은 일단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다만 아이슬란드, 스웨덴, 포르투갈, 노르웨이 등 남성 육아휴직 비율이 40%가 넘는 국가와 비교하면 한참 부족한 수준입니다.

우리나라에 남성 육아휴직 제도가 갖춰진 것은 2007년부터입니다. 남성도 법으로 육아휴직을 1년간 사용할 수 있으나 실제 사용하는 남성은 많지 않습니다.

우선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큽니다. 육아휴직을 할 경우 육아휴직 기간 소득대체율이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정부가 지난해 9월 첫 3개월 육아휴직급여를 통상임금의 40%에서 80%로, 상한액을 월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인상한 것이 남성 육아휴직을 늘리는데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머뭇거리는 또 다른 이유는 선뜻 신청할 수 없는 직장 분위기라는 게 중론입니다.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보이거나, 육아휴직이 승진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육아휴직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입니다.

전문가들은 직장에서도 남성의 육아휴직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여성단체들이 육아에 대한 인식 전환 캠페인을 꾸준히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남성 의무육아휴직제도 시행 후 2년동안(2017~2018년) 3000여 명의 직원이 사용하는 등 남성 육아휴직 문화가 사내에 빠르게 정착되고 있습니다. 시행 첫해인 2017년 롯데에서 남성 육아휴직을 이용한 직원이 1100명이었고, 올해는 1900명으로 2배 가량 늘었습니다. 국내 남성 육아휴직자 12% 가량이 롯데 남성 직원들인 셈입니다.

이는 '다양한 사고를 가진 인재들이 존중받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미래 경쟁력 확보에 중요하다'는 신동빈 회장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그간 진정한 양성평등 직장문화 구현에 롯데 임직원 모두가 노력한 결실이라는 평입니다. 롯데에 이어 현대백화점, KT&G 등도 남성 육아휴직을 적극 권장하고 있어 직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세계일보

지난해 육아휴직자 수와 이들의 고용유지율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고 수준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가족친화 인증제도'의 인센티브가 확대되면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관련 인증을 받기 위한 노력이 강화됐고, 사회적 인식도 개선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아빠 육아'를 장려한 정부 정책에 따라 남성의 육아휴직은 큰 폭으로 늘어났지만, 여성 육아휴직은 2년 연속 감소했습니다.

통계청의 '2018 일·가정 양립지표'를 보면 작년 육아휴직 사용자는 9만123명으로, 전년보다 0.4%(328명) 증가했습니다. 2003년 통계 작성 시작 이래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은 1만2043명으로 전년보다 58.1%(4427명)나 증가했습니다. 반면 여성 휴직자는 7만8080명으로 전년보다 5.0%(4099명) 감소했습니다. 육아휴직을 한 여성 수는 2년 연속 줄었습니다.

다만 여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여전히 압도적입니다. 0∼7세 자녀를 둔 여성의 2010∼2017년 육아휴직 사용률은 38.3%였습니다. 같은 기간 같은 조건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1.6%에 불과했습니다.

12개월 이하 자녀를 둔 여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2010년 29.2%에서 2016년 43.7%로 정점을 찍은 뒤 작년에는 42.3%로 1.4%포인트 줄었습니다.

같은 조건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작년 1.1%로, 1년 전보다 0.6%포인트 증가했습니다. 역시 여성이 줄어드는 가운데 남성은 증가했습니다.

2016년 육아휴직자가 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뒤 1년 이상 같은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비율은 76.8%로, 전년보다 1.3%포인트 증가했습니다. 통계 작성 후 가장 높은 비율입니다. 이 비율은 2014년 76.4%를 기록한 뒤 2015년 75.5%로 감소했다 2016년 반등에 성공했습니다.

작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이용한 사람은 2821명으로, 1년 전보다 2.2%(60명) 증가했습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란 만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둔 노동자가 1년 이내의 기간에 주 15∼30시간을 일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를 사용하는 여성은 작년 2500명, 남성은 321명이었습니다.

통계청은 "여성의 육아휴직 수가 줄어든 이유는 남성의 육아휴직 증가와 함께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활용하는 여성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습니다.

◆男 육아휴직↑ 女 육아휴직↓…근로시간 단축제 활용 워킹맘 증가

전문가들은 주 52시간 근무제처럼 남성 육아휴직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국회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실 보건복지여성팀의 허민숙 입법조사관이 발표한 '남성 육아휴직제도의 국가 간 비교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슬란드는 3개월, 스웨덴은 90일, 노르웨이는 70일씩을 부모에게 각각 할당하고 있습니다.

핀란드는 육아휴직 남성할당제도가 없지만 자녀가 2세에 이를 때까지 9주(일요일을 제외하고 54일)의 유급 부성휴가를 부여합니다. 이 가운데 18일은 모의 출산휴가 기간에 사용할 수 있고 , 나머지는 36일은 그 이후에 사용할 수 있는데, 사실상 남성 육아휴직 할당제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허 입법조사관은 "할당된 기간은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돼 남성의 참여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한국은 육아휴직을 근로자 단위로 1년씩 부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우린 부모가 모두 근로자이면 2년까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며 "'아빠 전속 유급육아휴직기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길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빠전속 육아휴직기간이란 육아휴직기간 중 할당 또는 그밖의 방법으로 아빠에게 주어지며 엄마에게 양도하거나 공유할 수 없는 기간을 말합니다.

한국의 육아휴직 사용자 중 남성의 비중은 최근 급증했으나, 여전히 OECD 선두권과의 격차는 큰 편입니다. 아이슬란드, 스웨덴, 포르투갈, 노르웨이 등은 육아휴직 참가자 중 남성의 비중이 40%를 넘어, 부모가 거의 대등하게 육아휴직에 참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일보

이처럼 격차가 나는 것은 소득대체율이 남성 육아휴직 참여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됩니다. 유럽 복지국가들의 아빠전속 육아휴직기간은 대체로 20주 미만으로 한국에 비해 많이 짧지만, 소득대체율은 매우 높은 편입니다.

이들 국가들의 육아휴직급여의 소득대체율은 70% 이상에 이르고 있는 반면, 한국은 일본과 같이 아빠전속 육아휴직기간이 52주로 OECD 내에서 가장 길지만 소득대체율은 32%로 낮은 편입니다.

◆韓 육아휴직급여 소득대체율 32% 불과…유럽 복지국가 70%이상

우리나라는 남성 육아에 대한 인프라가 매우 부족한 실정입니다. 특히 엄마가 아닌 아빠와 아이가 단둘이 외출할 경우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는 게 현실입니다.

최근 보건당국이 아빠의 육아 고민과 관련한 온라인 게시물 2만6000여 건을 분석한 결과 정보 부족으로 겪는 어려움이 35%, 아빠 육아를 위한 인프라 부족이 19%를 차지했습니다.

한 예로 남자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가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다보니 아빠들은 아이를 한 손으로 안은 채 엉덩이를 씻겨 간신히 기저귀를 입히곤 합니다.

이조차 사정의 여의치 않으면 차에서 해결하거나 주변 마트, 백화점 등을 찾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초보아빠에게 있어 이는 매우 곤욕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에게 분유나 우유를 먹이는 것도 문제입니다. 보통 육아휴게실은 남성 출입 자체를 금지하는 곳이 많습니다. 실제 전국 17개 시도에 설치된 3259개 수유실 중 아빠가 이용 가능한 경우는 63%에 그치고 있습니다.

물론 여성 이용자가 대부분인 시설에 남성이 들어오는 것이 불편한 게 사실이지만, 부부 공동육아를 권장하는 최근 세태에 알맞지 않다는 반론도 적지 않습니다.

아빠들의 육아 동참을 장려하겠다는 정부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정책과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육아=여성 의무'로 여기고 있는 듯 해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육아휴게실, 남성 출입 금지? 부부 공동육아 권장 흐름에 역행"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차이로 인한 소득 보전 차이도 남성 육아휴직 사용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 현재 9만123명의 부모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있는 반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자는 2821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중 대기업 노동자가 718명(25.5%), 중소기업(우선지원대상기업)은 2103명(74.5%)로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주로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육아휴직 활성화로 부모의 자녀 돌봄을 제도화하려면 '부모보험'을 새로 도입해 양육 초기에 필요한 소득과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발행한 '부모보험 도입방안 보고서'에서 현재의 고용보험체계로는 육아휴직을 활성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육아휴직은 2001년 고용보험으로 유급화된 이래 이용자 수가 크게 증가했지만 고용보험 미가입자인 자영업자와 실업자는 혜택을 보지 못하고, 고용 안정성에 따라 이용률에서도 격차가 벌어지는 등 보편적인 가족제도로 정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육아휴직급여도 미흡한 수준입니다. 급여액은 하한 70만원, 상한 150만원 이내에서 휴직 첫 3개월간 통상임금의 80%를 지급하고, 나머지 기간은 40%를 줍니다.

남성 육아휴직자가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 휴직자가 남성의 6.5배에 달해 육아분담 불평등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재원인 고용보험기금도 육아휴직 지원액 급증과 실업급여·고용안정사업 확대로 지속가능성이 저하된 상태입니다.

보고서는 "육아휴직 활성화 필요성은 커지는데 고용보험체계에 기반한 대응능력은 역부족인 상태"라며 "별도의 부모보험 도입으로 육아휴직을 양육초기 보편적인 가족지원 정책으로 확대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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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가 제시한 부모보험 도입방안에 따르면, 수급자격은 직업이나 소득과 관계없이 출산 혹은 입양을 통해 자녀를 갖게 된 부모 혹은 양육자에게 있습니다.

급여는 한 자녀당 부부가 각각 1년 이내로 받고, 급여액은 통상임금의 80%를 첫 9개월간 지급하되, 액수가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상 중위소득을 넘는 경우에는 중위소득을 상한으로 하고, 최저보장수준보다 적은 경우에는 최저보장수준을 하한으로 합니다. 나머지 3개월은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상 최저보장수준을 지급합니다.

이렇게 되면 2019년 기준 상한액(2인가구 중위소득)은 290만6528원, 하한액은 87만1958원으로 현재보다 급여 수준이 크게 올라갑니다. 부부가 균등하게 각각 9개월 이상 휴직을 한 경우나 단독 양육자에게는 급여에서 인센티브를 줍니다.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기존 고용보험기금과는 분리된 부모보험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위해 부모보험료를 징수하는 방안이 제시됐습니다. 부모보험료 징수는 수급대상의 포괄성과 소득비례 보험료 부과를 구현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장기요양보험료의 징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덧붙였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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