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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신의 직장' 박차고 1인 관광기업 창업… "직업이 꿈이 될 순 없죠" [궤도 밖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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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관광커뮤니케이터' 윤지민 리얼관광硏 대표 / 밥먹듯 장래희망 바뀌던 학창시절 / 해외 여행 다니며 관광 산업 관심 / 서울시 한류 담당 공직 내려놓고 19國 다니며 경험 쌓아 컨설팅 창업 /“정보과잉 시대… 맞춤관광 수요 커…직업 아닌 인생목표를 꿈 삼았으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목표의식이 남달랐어요. 열심히 꿈을 좇다 보니 지금에 이를 수 있었죠”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교과서 위주로 열심히 예습과 복습을 했더니 서울대에 붙었다’는 합격수기만큼이나 부럽지만 맥빠진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윤지민 리얼관광연구소 대표의 학창시절은 여느 청소년처럼 갈팡질팡, 오락가락했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런 그가 지금은 ‘국내 1호 관광 커뮤니케이터’이자 한국관광스타트업 협회 사무국장으로 누구보다 뚜렷한 자신만의 궤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울 중구의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에 자리한 윤 대표의 사무실을 찾아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계일보

◆이유 있는 고집

“어렸을 적에는 꿈이 자주 바뀌고 금방 싫증을 느끼는 성격이라 뭘 하면 몇 번 해보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어요.”

의외였다. 남다른 방식으로 자기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확고하게 마음먹은 무언가가 있지 않았을까란 기대는 편견에 불과했다.

그는 초등학생일 때 뮤지컬 배우를, 중학생일 때는 체육선생님을 꿈꿨다가 고등학교에 가서 미술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학교 성적은 상위권이었지만 공부를 꾸준히 열심히 하기보다 ‘벼락치기’에 능한 편이었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아 피아노, 연기, 글쓰기도 배웠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부모님이 ‘왜 너는 학원에 등록하고 한 달 만에 그만두느냐’고 핀잔을 주시곤 했어요. 몇 달 졸라서 시켜줬더니 금세 지겹다고 관두니까 그런 걸로 많이 혼났어요.”

그렇다고 아예 고집이 없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 태권도를 배우고 싶었는데 못해본 게 한이 돼 미국에서 석사과정 밟을 때 한인타운에 있는 태권도장을 다녔어요. 현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좀 멋쩍었지만 그래도 ‘아, 이제야 (한을) 풀었다’ 싶었죠.”

미술계 진학을 위해 등록한 입시미술학원에서의 일화도 재미있다.

“실력테스트였는지 양동이를 그려보라고 하더라고요. 있는 그대로 그리기 싫어서 양동이 안에 개구리를 그렸죠. 우물 안 개구리를 표현한 거였어요.” 결국 선긋기부터 배워야 했는데 ‘미술로 대학가는 건 안 되겠구나’ 싶어 관뒀다.

◆직업이 된 취미, 여행

대학(이화여대)에 와서도 금방 진로를 정한 건 아니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여행을 더 많이 다니려고 ‘해외’라는 단어가 붙은 공모전에 부지런히 응모했다. 해외파견단, 해외봉사, 해외탐방, 그래도 성에 안 차면 아르바이트로 ‘급전’을 마련해 떠났다. 1년에 3번 이상은 나라 밖으로 나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여행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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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 교환학생을 갔는데 그 조그만 나라에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이 오는 거예요. 여기는 왜 관광객이 많지? 우리나라가 부족한 게 뭘까? 고민하다 여행관련 일을 해야겠다 생각하게 됐죠.”

그렇게 2012년 서울시청의 한류관광 담당 주무관이 됐다. 꿈의 직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게 많은 만큼 채울 수 없는 것에 대한 갈증도 커졌다.

“큰 조직의 생리상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이해는 하면서도 여러 번 좌절을 겪다 보니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고. ‘상상했던 것만큼 일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느꼈죠.”

우울증세가 찾아왔고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10주에 걸쳐 상담을 받은 끝에 그는 공무원 명찰을 떼버렸다. 1년10개월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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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힘들어도 회사생활 잘 하는데 나만 못 하는 거 아닌가, 비겁하게 도망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더 우울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정말 이러다 죽겠다 싶을 정도로.”

그간 모은 돈을 탈탈 털어 다시 여행을 떠났다. 여기저기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어떤 답이든 얻겠지 싶었다.

외국 관광청, 관광 관련 국제기구 등을 찾았다. 담당자 이메일이 홈페이지에 나와 있으면 사전 약속을 잡고, 다짜고짜 관광안내소에 가서 ‘난 이게 궁금하다, 어디를 가서 누구를 찾아야 하는가’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담당자를 만나면 기관 특징이나 민간 출자 방식 같은 제도적 궁금증을 묻기도 하고, 해당 도시를 여행하며 눈에 띈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번은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랑 인터뷰를 했는데 저를 좋게 봤는지 ‘다음달에 멕시코에서 열리는 세계 관광의 날 행사에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곳에서 각 나라 관광부처 장관, 관련 교수들을 만났는데 저에게 매우 큰 경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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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민 리얼관광연구소 대표가 사무실이 있는 서울 중구 청계천로에서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 대표는 직업보다 삶의 목표를 먼저 정하라고 조언했다. 이제원 기자


그렇게 260일 동안 19개국을 돌았다. 그러면서 관광산업이란 외부의 누군가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이전에 우리나라 사람이 먼저 즐기고 좋아하는 환경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직업 자체보다 삶의 가치를 추구하길”

돌아와서 2016년 관광의 저변을 넓히고 컨설팅이나 교육을 하는 1인 기업 ‘리얼관광연구소’를 창업했다. 정부기관이나 기업이 준비하는 관광 관련 프로젝트에 맞춰 정책이나 마케팅, 관광상품을 컨설팅 한다. 진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정보과잉의 시대다 보니 전문정보를 어떻게 큐레이션(목적에 맞게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해서 일반인 눈높이에서 전달할지에 대한 수요가 많아요. 제 전문인 관광분야의 1인 연구소를 열었고, 다른 영역에서도 이런 연구소가 많아지고 있어요.”

수많은 변덕과 싫증 속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뭐지?’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그가 들려준 말은 이렇다. “꿈을 이야기할 때 직업이 아니라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말해봤으면 좋겠어요. 만약 자신의 꿈은 공무원이라고 해버리면, 공무원이 되고 난 후 다음이 없잖아요. 자칫 저처럼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큰 좌절을 맛볼 수도 있고. 단순히 특정 직업보다 자신이 어떤 일을 이뤄내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바라보고 걸어갔으면 좋겠어요.”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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