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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최갑수의 먹고싶GO] 몰디브에서 모히토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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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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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천장에는 팬이 돌아가고 있다. 창밖에는 푸른 바다. 샴페인을 들고 발코니로 나간다. 여기는 몰디브. 적도의 햇살에 잠깐 눈부시다. 샴페인 한 모금을 마신다. 아무 생각이 없다. 한국에서의 어지러운 일을 정리하고 새 일에 대해 생각해 볼 요량으로 왔다. 하지만 여기 와서는 아무 생각이 없어져 버렸다. 매일매일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역시 해변은 생각하는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일과는 이렇다. 새벽 6시 30분 일어난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붉은 아침 빛이 눈을 뜨게 만든다. 차가운 생수를 마시고 발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발코니 앞은 바다. 발코니 끝에 바다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에 앉아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해가 뜨는 걸 본다. 가끔 작은 상어 몇 마리가 다가와 놀다 간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잔다. 아침 9시면 아침을 먹고 오전 내내 스노클링을 한다. 점심을 먹고 낮잠. 오후에는 다시 스노클링을 하든지 마사지를 받는다. 늦은 오후에는 잘 구워진 오징어와 참치를 먹으며 샴페인을 마신다. 어느새 해가 진다. 해변이 보랏빛으로 물들고 모히토를 마신다. 이 모든 걸 내 비자 카드가 전부 하는 걸 알고 있지만 살면서 이런 날도 며칠쯤은 있어야지. 여행은 생을 잊는 그리고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몰디브에서의 마지막 날, 해변의 식탁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파도소리가 식탁 위를 적셨다. 갈매기 한 마리가 우리 머리 위를 맴돌았다. 짙은 턱수염을 기른 몰디브 남자는 자신은 인도 서쪽 출신인데 그것으론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는 샴페인을 마시며 아침에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며 보았던 만타 가오리와 스리랑카의 낚시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는 사이 식탁은 점점 어두워졌고 마침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몰디브 남자가 말했다. "아름답죠." 그가 샴페인 잔을 살짝 들었다. 무수히 많은 작은 거품들이 잔 아래쪽에서 솟아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뭘까. 사랑, 미소, 무지개, 바다, 안개 가득한 새벽…. 그런 건 없어. 다 사라지니까. 나도 모히토 잔을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바로 지금이야. 이 순간이지. 보랏빛으로 가득한 저녁이었다. 사랑이든 일이든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우린 점점 사라지고 있으니까. 모히토에 든 얼음이 녹아내리며 달그락거렸다.

[최갑수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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