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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50년만의 주세개편…수제맥주 웃겠지만 소주는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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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주세 제도 개편

‘4캔 1만원’ 수입맥주 유행

국산맥주 역차별 주장하며

종량세로 전환 요구 나서

정부 “내년에 개편 검토”

한 캔당 363원 인하 전망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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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원료로 술을 빚고 오래 숙성시켜 좋은 병에 담그면, 출고가가 오르는 것에 비례하여 제조자가 내야 할 세금이 폭증하고 가격 부담으로 판매가 잘 안 됩니다. 따라서 주류 제조자는 종가세의 덫에 걸려 원가 낮추기에만 골몰하다 보니 고급주가 설 자리는 좁아지고 저급한 싸구려 위주로 만든 시장이 형성됩니다. 대다수의 나라는 시대의 발전에 따라 점점 좋아지는 술을 마시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조선시대보다도 못한 저급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일제시대를 거치고 50년전 낡은 종가세 제도를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종가세를 종량세로 주세를 개편하자며 올라온 글이다. 이 글은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후 국세청은 기획재정부에 주세 체계를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하는 안을 건의했다. 그러나 기재부가 지난 7월 발표한 ‘2019년 세법개정안’에 주세 개편은 포함되지 않았다. 수입맥주 세금이 오를 경우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수입맥주 4캔에 만원’ 같은 상품이 사라질 수 있다는 반발 여론 때문이다.

지난 3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연구용역,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 주세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개편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주세 개편안은 내년 하반기 국회를 통과해 2020년부터 시행될 수 있을 것이다. 1969년 종가세가 자리잡은 지 50년만에 주세 체계가 개편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산-수입맥주 형평성 문제가 도화선

종가세는 술의 가격에 비례해 세금을 책정하는 방식이고, 종량세는 알코올 ‘도수’와 ‘양’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우리나라가 50년 동안 종가세 방식을 선택한 것은 세부담의 형평성을 강조하는 ‘고가주=고세율, 저가주=저세율’ 구조의 유지를 위해서다.

현재 맥주·증류주(소주·위스키 등)에는 최고세율인 72%를 적용하고, 발효주류인 와인·청주·약주 등은 30%의 세율을, 탁주(막걸리 등)에 대해서는 5%의 가장 낮은 세율을 적용한다. 전반적으로 증류주류에 대해서는 고세율을, 발효주류에 대해서는 저세율을 적용하고 있지만, 발효주류인 맥주는 72%의 최고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맥주를 고급 주류로 봤던 당시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술에는 주세 외에 교육세가 추가로 부과된다. 주세율이 70% 이상인 경우엔 주세액의 30%, 주세율이 70% 미만인 경우 10%를 교육세로 부과한다. 여기에 다시 부가가치세(원가와 주세, 교육세를 합한 금액의 10%)가 붙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모든 주류에 대해 종가세를 적용하는 국가는 한국, 칠레, 멕시코 뿐이다. 한국 주세법의 토대가 된 일본도 이미 1989년에 종량세로 전환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은 맥주의 주세 방식에 쏠려있다. 종량세 도입 논의 자체가 수입맥주와 국산맥주의 형평성 문제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현재 맥주에 부과되는 총 세금은 ‘과세표준(세금 부과 기준이 되는 금액)’의 112.96%에 이른다. 이 세율은 국산이나 수입산이나 차이가 없다. 대신 과세표준에서 차이가 난다. 국산맥주는 ‘출고가격’을, 수입맥주는 ‘수입 신고가격’을 과세표준으로 삼는다. 국산맥주의 ‘출고가격’엔 이윤이나 판매관리비 등이 포함된 반면, 수입맥주의 ‘수입신고가격’에는 국내 이윤·판매관리비가 포함되지 않는다. 이를 근거로 국산맥주 제조사들은 국산맥주의 세금 부담이 더 커지고 결과적으로 가격경쟁력에서 수입맥주에 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런 과세구조 덕분에 수입맥주는 이윤과 판매관리비를 조정해 다양한 판매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이윤을 높게 책정해 판매가격을 높인 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대폭 할인을 하는 것처럼 팔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산맥주는 이윤과 판매관리비가 세금과 연동되기 때문에 이런 전략을 구사하기 어렵다. 국세청 고시에 따라 국산맥주 제조사는 출고가격을 국세청에 신고해야 한다. 국내 맥주 업체들은 이를 ‘역차별’로 규정하고 과세방식을 종량세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조제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수입 맥주의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은 2013년 4.9%에서 2017년 16.7%(추정)으로 5년 동안 3배 이상 늘었다.

같은 종량제라도 과세단위를 알코올 함량에 두는 경우와 단순히 용량에 두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알코올 함량을 기준으로 주세를 부과하는 종량세 방식은 저알콜 주류의 생산을 장려할 수 있다. 한편 제품의 용량을 과세단위로 하는 종량세 방식은 알코올 함량이 높은 주류의 생산과 소비자 선호에 맞춘 다양한 주류의 생산에 유리하다.

현재 정부가 검토하는 종량세 방안은 용량을 기준으로 해, 맥주 1리터당 835~860원의 주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국회에는 법안도 발의돼 있다.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주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보면 △맥주 과세표준을 주류 제조장에서 출고한 수량이나 수입신고하는 수량으로 전환해 생산지와 무관하게 세 부담을 공평히 하고 △세율은 1리터당 835원으로 신설하자는 내용이 핵심이다.

‘4캔에 1만원’ 맥주, 없어지진 않을듯

종량세를 도입할 경우 국산맥주에 대한 세금이 낮아져 판매가도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4캔에 1만원 수입맥주’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심기준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세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종량세를 도입(1리터당 835원 과세 기준)하면 국산맥주는 캔맥주 500㎖를 기준으로 363원 저렴해진다.

특히 수제맥주를 만드는 중소 제조업체의 전망도 더욱 밝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다품종을 소규모로 생산하기 때문에 제조원가가 높고, 이에 따라 기존 종가세를 적용할 경우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종량세를 적용할 경우 지금보다는 세금 부담이 줄어줄 수 있어, 보다 합리적인 가격 책정이 가능해진다. 한 수제맥주 업체 대표는 “종가세는 출고가가 저렴할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좋은 원료나 고급 포장재를 안 쓰게 되고, 고가 장비나 오래 걸리는 제조 방법도 도입하지 않게 된다”며 “종가세는 수입맥주 뿐 아니라 대기업에서 대량으로 만드는 저렴한 술에 유리한 제도였다. ‘가성비’ 좋은 술은 나올 수 있지만 국내에서 프리미엄 주류가 탄생하기 어려웠던 이유”라고 말했다. 한국수제맥주협회는 지난 10월,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소매점에서 4천∼5천 원에 팔리는 국산 수제맥주 제품은 종량세로 바뀌면 1천원 이상 가격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수입 맥주 가격도 크게 오르지는 않을 전망이다. 관세청 품목별 국가별 수출입 실적을 근거로 근거로 현재 수입 맥주에 부과되는 주세를 리터 단위로 환산하면, 영국은 1194원, 필리핀은 1032원, 아일랜드는 1004원, 일본은 958원이다. 종량제가 도입돼 1리터당 835원의 세금을 부과한다고 가정한다면, 이들 국가의 맥주는 주세가 더 낮아져 소비자 가격이 더 싸질 수 있다. 반면 주세액이 835원보다 낮은 네덜란드(519원)·벨기에(567원)·미국(654원)·독일·덴마크(735원) 등은 주세 부담이 커지면서 가격이 비싸질 수 있다.

와인은 어떨까. 종가세 방식에선 제조원가·판매관리비·이윤 등을 포함한 출고가격에 주세를 부과하고 여기에 교육세, 부가가치세까지 붙는다. 와인을 예로 들어보자. 와인은 출고가격(수입신고가격)에 주세 30%가 부과되고, 여기에 주세의 10%인 교육세가 붙고, 부가세(원가+주세+교육세의 10%)까지 붙어서 총 세금을 원가대비 46%가량 내야 한다. 만약 출고가 1만원짜리 ㄱ와인과 10만원짜리 ㄴ와인이 있다면, ㄱ엔 세금이 약 5천원, ㄴ엔 세금이 약 5만원이 붙게 된다. 여기에 유통비용과 판매마진까지 고려한다면 ㄱ은 2만원, ㄴ은 20만원 정도로 시중에 팔리게 된다. ㄱ와인과 ㄴ와인의 출고가는 9만원 차이지만 소비자가 구매하는 가격은 2배인 18만원 차이가 되는 셈이다. 반면 종량제를 적용하면 두 와인간 세금이 같아지기 때문에 소비자가격 차이가 출고가격 차이와 비슷해지게 된다.

이처럼 종량세가 도입되면 와인을 비롯해 생산비용이 높은 프리미엄 수입맥주, 위스키 그리고 전통주 등 고가주의 판매 가격이 하락하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 마트에서 만원에 파는 와인과 수백만원짜리 와인의 세금이 같아지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민의 술’ 소주는?

업계에서는 우선 맥주부터 종량세를 도입한 후 단계적으로 전체 주종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 다수다. 무엇보다 맥주에 비해 도수는 높으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서민의 술’ 소주의 세율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종가세에서는 소주(360㎖) 출고가가 1000원대로 72% 세율을 매겨도 주세가 800원대에 불과하지만, 종량세로 바꿔 알코올 1리터당 비율로 세금이 부과되면 세금이 훨씬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술의 알코올 함량을 고려하는 방식의 종량제를 채택해도 마찬가지다. 유럽, 미국 등 종량세를 도입한 대부분의 국가는 고도주에는 고세율, 저도주에는 저세율을 부과하는 기본 틀을 갖고 있다. 국민 건강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를 그대로 반영할 경우 소주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재부는 현재 조세재정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향후 관련업계와 전문가를 모아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맥주와 소주 가격이 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종량세 전환을 검토할 계획”이라며 “전반적인 과세 형평성을 확보하면서 소비자의 부담을 늘리지 않는 방향으로 주세 개편안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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