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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맞춤아기 충격 한달…‘미끄러운 경사길’ 우려 깊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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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맞춤아기 출생’ 발표 파장

지난달 25일 중국 과학자 공개

“유전자 변이로 에이즈 저항성 갖춘

쌍둥이 출산...또다른 임신 진행중“

우려한 맞춤아기 등장에 세계 발칵

과학자 모습 감추고 조사공개 없어

파문 실체도 명확한 확인 안된 상태

미국-중국 과학계 ‘충격, 우려’ 성명

“자율규제 실패, 규제강화” 커질 듯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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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 교수가 지난달 25일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법이라는 ‘유전자 수술’을 받아 에이즈 바이러스에 저항성을 갖춘 쌍둥이 여아, 루루와 나나가 건강하게 태어났다고 발표했다. ‘맞춤아기’의 등장으로 충격에 싸인 과학계에선 그 연구의 실체뿐 아니라 윤리 쟁점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 쟁점을 짚어보았다.

지난 11월25일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 교수(남방과학기술대학)가 4분43초짜리 유투브 영상에서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Cas9)라는 유전체공학 기법을 써서 에이즈 저항성을 지니는 쌍둥이 여아, 루루와 나나를 건강하게 출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약간 들뜬 모습이었지만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그의 순진한 표정과 달리 그가 일으킨 일대 파문은 충격과 경악이었다. 그는 많은 이들이 우려하던 최초의 ‘맞춤아기’ 탄생을 선언한 것이었다.

마침 그는 홍콩에서 열릴 제2차 인간유전체편집 국제회의에 초청받아 다른 주제의 연구내용을 발표하려던 참이었다. 국제회의는 유전자가위 연구 분야의 내로라하는 세계 과학자들이 한데 모인 자리였다. 허젠쿠이의 ‘크리스퍼 맞춤아기’는 언론 보도로 먼저 알려졌고 홍콩의 회의장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사흘 뒤인 11월28일 허젠쿠이는 국제회의장에서 루루와 나나의 탄생 과정을 정식으로 발표했고 세계 언론매체에서 ‘논란의 인물’로 주목을 받았다. 홍콩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김옥주 서울대병원 임상연구윤리센터장(의대 인문의학교실 주임교수)은 “두려워했던 맞춤아기가 태어났다는 주장을 들으면서 많은 참석자들이 이게 현실인지 드라마인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이런 주장이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혼란스러웠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로부터 한 달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섣부른 생명공학 기술로 유전자를 바꾼 아기를 만들어냈다는 과학자들의 비판이 줄을 이었다. 한번 시작된 길이 제2, 제3의 맞춤아기로 이어지는 ‘미끄러운 경사길’ 같은 상황에 대한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중국의 한 과학자가 일으킨 연구윤리의 붕괴에 대해 세계 과학계의 반응과 대응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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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퍼 맞춤아기 몇 해 전부터 준비”

중국 당국과 과학자들은 허젠쿠이의 ‘승인받지 않은 연구’를 비판하며 정식 조사 방침을 밝혔다. 허젠쿠이는 이후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세세한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선 그의 유전자가위 시술이 실제로 이뤄졌는지, 안전성 문제는 없는지도 불분명한 상태다. 중국 당국은 진위 여부와 연구 과정을 조사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아직 조사과정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른 네 살 젊은 과학자 허젠쿠이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그의 맞춤아기 구상이 꽤나 오래 전부터 진행됐음이 드러났다. 미국 과학전문매체인 <에스티에이티(STAT) 뉴스>가 최근 허젠쿠이의 경력과 연구 과정을 추적해 보도한 긴 기사를 보면, 그는 중국에서 상당히 유망한 젊은 과학자였으며 몇 해 전부터 실험동물 쥐, 원숭이와 인간배아를 대상으로 유전자가위 연구를 계속해왔다. 미국 라이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다른 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마치고서, 2011년 중국에 들어와 대학에 최연소 조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허젠쿠이는 본래 생물학 현상을 다루는 수학적 모형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구에서 성과를 내왔으며 몇 해 전부터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배아 연구를 계속해왔다. 허젠쿠이는 유전자가위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이름 난 연구자들을 찾아가 만나고자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다. <에스티에이티 뉴스>는 그가 미국과 영국의 몇몇 연구자들에게 자신의 맞춤아기 연구 구상을 밝혔으며 위험한 맞춤아기 연구를 중단하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고 전했다.

허젠쿠이는 맞춤아기 연구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강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유튜브 영상에서 그는 지능이나 머리카락, 눈 색깔을 바꾸는 데 유전자가위 기술을 쓰는 것은 금지해야 하지만 유전 질환의 고통을 받는 아이와 부모를 위해선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민의 30%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에이즈 마을’을 방문한 적도 있으며 중국의 에이즈를 퇴치하는 수단으로 유전자가위를 사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질의응답 때도 “나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또다른 유전자 편집 아기는 임신 초기 상태라고도 밝혔다.

그가 속한 중국 남방과학기술대학교는 지난달 26일 성명서를 내어 “휴직 중인 그의 연구활동은 대학 밖에서 이뤄졌으며 연구윤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라며 “곧 국제적인 전문가를 초청해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 결과를 공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사 활동의 준비 과정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유전자 편집은 성공적?’ 꼬리무는 의문

허젠쿠이의 맞춤아기 연구는 ‘달리 치료법이 없는 심각한 질환에 한해 유전자가위의 인간배아 연구가 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있으며 배아의 착상은 금지한다’는 세계 과학계의 연구윤리 합의를 깨뜨린 것이었다. 그럼 그의 맞춤아기 연구는 성공하긴 했을까? 현재로선 관련 자료는 그가 국제회의장에서 슬라이드로 발표한 것이 전부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연구자들은 유전자가위 인체실험 결과가 그의 기대와는 달리 성공적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유전자가위의 안전성 문제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른바 ‘표적이탈 효과’와 ‘모자이크 현상’이 그의 맞춤아기들에서 명확하게 제거됐는지가 의문으로 제기됐다. ‘표적이탈 효과’는 유전자가위가 표적으로 삼은 특정 유전자에서 벗어나 다른 유전자 염기서열을 건드릴 위험을 말하며, ‘모자이크 현상’은 유전자가위가 일부 세포에만 작용해 한 개체 안에 서로 다른 유전자들이 혼재하는 위험을 말한다. 허젠쿠이는 국제회의장에서 모자이크 현상과 표적 이탈 효과를 억제하고 검증하는 여러 방법을 시행했다며 자료들을 제시했으나, 자세한 데이터와 논문은 없는 상태다. 유전자 편집 아기의 안전성 의문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표적이탈과 모자이크 현상을 피했다 하더라도 허젠쿠이의 맞춤아기 연구에선 다른 의문도 제기된다. 그는 수정 직후의 초기 배아에서 에이즈 바이러스의 감염 통로가 될 수 있는 특정 유전자(‘CCR5’)의 기능을 제거했는데, 이런 유전자가위 시술이 적절했느냐는 것이다. 유전자는 한 가지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일들에 관여하므로, CCR5 유전자 제거로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개발한 핵심 주역 중 한 명인 펑장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는 공개자료를 내어 “CCR5의 기능을 제거하면 (급성 중추신경장애를 일으키는) 웨스트나일 바이러스의 감염에는 훨씬 취약해질 수 있다”면서 “부모의 에이즈 바이러스가 신생아에 감염되는 것을 막을 일반적인 다른 방법이 이미 있다”는 점을 들어 이번 실험이 무모했음을 지적했다.

발병하지 않은 잠재적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생식세포에서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는 전략은 매우 제한적으로만 가능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대한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박사후연구원은 “대부분 질병엔 하나의 유전 변이가 아니라 다수의 유전 변이가 관련돼 있으며, 대개 단일 유전 변이의 효과는 작거나 그마저도 환경과 다른 유전 변이들의 상호작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서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유전자 편집 치료는 효과가 적거나 사람마다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환경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변이가 명백한, 그런 극소수 유전 질환만이 임상 시험과 적용의 문턱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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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토리움보다 규제기준 강화에 무게

세계 과학계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양대 과학저널의 사설들에서 대략적인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는 미국과학아카데미, 미국의학아카데미, 중국과학아카데미의 대표 3인이 ‘홍콩에서 온 경종’이라는 제목으로 쓴 사설이 실렸다. 이들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사용해 인간유전체를 편집하는 능력이 윤리 이슈에 대응하려는 과학의료계의 노력을 앞질러 나아가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더 정교한 기준과 표준에 대한 국제적 합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과학저널 <네이처>의 사설도 “유전자가위 기술이 비교적 간편하고 유전자 편집 도구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허젠쿠이가 했다고 주장하는 바가 충분히 가능해졌다”면서 “그가 유전자 편집 아기를 만든 마지막 사람일 리는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 또 나타날 수 있는 위험한 연구들에 대한 ‘명료한 규제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실 인식을 보여주는 이런 사설들은 유전자가위 연구윤리가 쟁점이 됐던 2015년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당시 과학계에선 유전자가위 연구윤리 등에 대한 공동성명을 논의하면서 인간배아 연구를 당분간 중단하자는 이른바 ‘모라토리움’ 제안이, 실제 채택되진 못했지만 연구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이런 당시 분위기와 비교해 이번 사태에선 모라토리움을 주장하는 과학자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다. 여전히 한시적 모라토리움을 주장하는 생명과학자 폴 노플러 교수(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학)는 2015년 공동성명에서 모라토리움 선언이 빠진 것이 결과적으로 맞춤아기의 문을 열어놓았다고 비판하며 또 다른 맞춤아기의 등장도 막기 힘들게 됐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법의 개발 주역인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는 “(연구윤리 위반이 일어난 이후에 모라토리움을 다시 주장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면서 “대신에 장차 있을지 모를 인간 생식세포 편집에 앞서 명확한 과학적, 윤리적 기준을 확립하고 이를 무시했을 때의 후속조처들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제는 과학계 바깥에서 규제 강화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유엔(UN) 같은 국제기구의 관여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전방욱 강릉원주대 교수(전 아시아생명윤리학회장)는 “과학계의 자율 규제가 실패하고 위험이 현실화하면서 과학계의 주도적인 자기 규제 목소리는 작아질 듯하다”며 “생식세포 유전자 편집의 규제를 누가 결정해야 할지에 관한 문제가 더욱 첨예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맞춤아기 실험은 과학계 합의 의도적으로 깨뜨린 것”

유전자가위 개발 다우드나 교수 이메일 인터뷰

한겨레

세계 과학계의 동향에 밝은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사진)는 우려했던 맞춤아기의 탄생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법을 처음으로 개척한 핵심 주역 중 한 명으로, 유전자가위 분야에서 과학계의 지도적 인물이다.(▶관련기사: “내게 유전자가위는 경이롭고도 두려운 미래”) 다음은 <한겨레>가 그와 한 이메일 인터뷰다.

-홍콩 국제회의장에서 중국 과학자가 발표했을 때 참석자들의 분위기는 어땠나?

“참석자들은 몹시 당황스러워했으며 그 연구에 강한 반대를 나타냈다. 중국 과학자의 얘기를 듣고나서 우려는 더 커졌을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도 그 소식에 분개했으며 지금도 그렇다.”

-모라토리움 주장에 대해 당신이 “이미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는데, 어떤 의미인지?

“그의 실험은 임상 목적으로 인간 생식세포에 유전자 가위 편집을 써서는 안 된다는 현재의 국제 합의를 의도적으로 급진적으로 깨뜨린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다시 모라토리움을 요구하는 건 이미 늦었다. 대신에 내가 지지하는 바는 장차 있을지 모를 인간 생식세포 편집에 앞서 명확한 과학적, 윤리적 기준을 확립하자는 것이다.”

-세계 과학계 지도자들 사이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가?

“세계 과학계와 사회는 이런 연구에 강한 반대를 보여왔다. 나도 일원으로 참여한 제2차 인간게놈편집 국제회의의 조직위원회는 강한 어조로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 과학자 주장의 진위를 밝혀야 한다는 요구는 계속되고 있으며, 유전자가위의 임상 적용에 대한 특정 기준들과 이런 기준을 무시했을 때의 후속조처들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배가하고 있는 중이다.”





☞ 열쇳말: 맞춤아기, 크리스퍼 아기

맞춤아기(designer baby)라는 말은 본래 착상 전 유전자검사를 통해 선별되어 태어난 시험관 아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위키백과). 근래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Cas9) 기법으로 수정란이나 배아 단계에서 유전자를 선택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미래 기술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그렇게 유전자 변이를 통해 태어나는 아기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그래서 최근엔 ‘크리스퍼 아기(CRISPR baby)’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인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세포 안에서 특정 유전자를 찾아가 그 기능을 멈추게 하거나 특정 염기서열을 교체해 그 기능을 바꾸는 기법으로, 2012년 말 이후 빠르게 발전해왔다. 치료법 연구 분야에서는 환자의 몸 일부에서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는 체세포 유전자 편집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유전자 변이가 영구적으로 대대손손 유전되는 생식세포(배아) 편집 분야에서는 안전성과 윤리 논란 때문에 매우 제한적인 연구만이 허용되며 편집된 배아의 착상은 엄격히 금지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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