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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5년 복무” “사회복지 투입”… 대체복무 ‘디테일 전쟁’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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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정부안이 지난달 28일 발표되면서 대체복무를 둘러싼 논란은 정치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방부가 이날 발표한 ‘현역병(육군 병사 18개월 기준)의 2배인 36개월 복무’ ‘교정시설 합숙 근무’를 규정한 정부안과 별도로 국회에는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대체복무 법안들이 다수 계류되어 있다.

정부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정치권은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과 함께 입법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해 6월 28일 헌법재판소가 종교나 양심을 이유로 군복무를 거부한 이들을 위한 대체복무를 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하면서 오는 12월31일까지 국회가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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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이날 국방부가 발표한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정부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의 대체복무제 도입 결정 판결을 전후로 정치권은 다양한 형태의 대체복무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국방부는 “국회 논의과정에서 정부안을 최대한 관철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지만 2020년 1월 시행을 앞두고 국회의 법안심사가 시작되면 복무기간과 분야, 대체복무자 심사 기준 등을 둘러싸고 여야 정치권과 국방부, 시민사회단체 간에 치열한 어젠다 선점 경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대체복무 필요성 인정’ 외에는 공통점 없어

정부안과 의원 발의 형태의 대체복무 법안들은 대체복무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나 그 외에는 공통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복무기간의 경우 27개월부터 60개월까지 천차만별이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의 법안은 복무기간이 60개월에 달한다. 같은당 김학용 의원은 44개월로서 공군 복무기간(22개월)의 2배다.

같은당 이종명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 바른미래당 김중로 의원,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은 정부안과 비슷한 36개월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박주민 의원과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대체복무기간이 현역의 1.5배 이상이면 징벌적”이라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권고에 맞춰 복무기간을 육군 병사의 1.5배인 27개월로 설정했다.

복무 분야는 사회복지와 소방, 의료, 재난, 구호 등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 서비스 관련 분야 업무가 다수를 이룬다. 김종대, 이용주, 김중로 의원은 아동과 노인, 장애인 등의 보호와 치료, 요양을 비롯한 사회복지 관련 업무와 소방업무 등을 명시했다. 정부안은 합숙근무와 인력소요 등을 고려, 교정시설 근무로 일원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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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제공육군 장병들이 지뢰탐지기를 사용해 유실된 지뢰를 찾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반면 김진태 의원은 군사시설 유지보수와 지뢰제거, 유해발굴 등 비(非)전투분야 업무를 강조하고 있다. 이종명, 김학용 의원도 평화통일의 증진, 전쟁 예방, 보훈사업을 대체복무 범위에 포함했다. 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인명 살상이나 시설 파괴 등과는 관계없는 분야에서 활동하는 형태의 대체복무를 제시하는 셈이다. 징벌적 성격이 없어야 하며 사회복지와 치안, 환경 등 다양한 분야를 복무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시민사회단체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으로 국회 논의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대체복무자를 선발하는 심사위원회 소관 부처도 법안에 따라 행정안전부, 국방부, 병무청 등으로 갈라져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심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이유로 국방부 산하에 심사위를 설치하는 방안에 반대하고 있으나, 대체복무를 병역의 일부로 해석할 경우 심사위를 국방부나 병무청 소속으로 두는 것이 합당하는 지적도 있다.

◆쟁점 사안 놓고 진통 예상

국회의 입법논의가 본격화되면 대체복무 기간과 분야, 심사기구 등 예전부터 지속됐던 논란 외에도 다양한 사안들이 이슈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우선 현역이나 보충역으로 복무중인 사람에게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를 허용할지 여부가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

현역, 보충역 복무자에게도 대체복무를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입대 후에도 양심에 의한 신념이 형성될 가능성을 지적한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직접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이라는 말처럼 생명을 빼앗는 무기를 다루고 훈련을 받으면서 양심에 의한 신념이 싹틀 수 있다는 것이다. 현역이나 보충역 복무 도중 대체복무 신청을 허용하지 않으면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어도 양심의 자유가 여전히 침해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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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조에 대한 위헌소헌 공개변론이 열린 2015년 7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등 참가자들이 죄수복장을 하고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현행 병역법은 위헌'이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신념은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것으로, 군사훈련과 집총(執銃)을 경험한 상태에서 양심의 진실성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회에 제출된 의원입법 대체복무 법안 중에는 “양심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신청 범위를 종교에 의한 것으로 규정한 경우도 있다. 군에서는 성실하게 복무중인 청년들의 사기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안은 대체복무 신청 시점을 입영일이나 소집일 5일 전까지로 규정하고 있으나 법안심사 과정에서 변경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체복무제 도입 이후 재정소요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제도 도입 및 운영과정에서의 예산 규모는 대체복무제 입법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대체복무제를 시행할 경우 소요되는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직 없다. 다만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대체복무제 법안에 대한 국회예산정책처의 검토를 통해 유추해볼 수는 있다. 이용주 의원의 대체복무 법안에 대한 국회예산정책처 비용추계보고서에 따르면, 2020~2024년까지 대체복무위원회 설치 및 운영비와 대체복무요원 보수, 합숙근무 생활비, 건강보험부담금 등에 744억5400만원(연평균 148억9100만원)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개혁 2.0으로 현역 병사들의 급여가 지속적으로 인상되는 부분과 합숙근무는 증액요소지만, 사회복지와 소방업무를 담당토록 한 이 의원의 법안과 달리 교정시설만 포함한 정부안은 비용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여 실제 비용은 이보다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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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훈련병들이 연막을 뚫고 앞으로 돌격하고 있다. 육군 제공


대체복무자의 예비군 훈련은 정부도 고심하는 난제다.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친 예비군은 1~4년차에 2박 3일 동안 부대에 입소하는 동원훈련을 받거나 지역 예비군 훈련장에서 32시간 출퇴근 훈련을 받는다. 예비군 5~6년차의 훈련시간은 20시간(출퇴근)이다.

정부는 예비군 대체복무 대상자가 현역병 예비군 훈련시간의 두 배 만큼 교정시설에서 근무하거나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체복무 대상자의 예비군 편성 기간을 현역병과 동일한 수준인 소집 해제 이후 8년으로 정했으나 구체적인 예비군 대체복무 이행방안은 정부안에 포함하지 못한 채 ‘소집절차, 소집기간 및 복무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만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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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훈련병이 교관의 지도하에 수류탄 투척훈련을 하고 있다. 육군 제공


36개월 대체복무는 관리가 용이하고 업무도 명확하다. 반면 예비군 훈련 대체복무는 아무리 길게 설정해도 1주일 이상이 되기는 어렵고 대상자도 적다. 인력관리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다. 전시 등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병력동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도 감안해야 한다. 정부는 이같은 현실을 고려,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친 사람들이 받는 예비군 훈련과 유사한 수준의 복무 강도를 유지하면서 사회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고 복무관리가 용이한 분야에 예비군 대체복무자를 투입한다는 방침이지만 정부의 의중에 맞는 분야를 찾기가 쉽지 않아 제도화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가 대체복무제 정부안을 확정했지만 이는 대체복무를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 국방부는 “많이 노력했다”며 당위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대체복무가 사회 공공의 이익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에는 미흡했다는 평가와 대체복무에 대한 여론이 양극화되어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혼재되어 있다. 이제 공은 정치권으로 넘어갔다. 병역의 공정성과 인권, 사회 복리 증진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를 정치권이 발휘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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