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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타고 일출과 동시에 올라 감동 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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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평리조트 발왕산서 맞이한 황금돼지해 해돋이

동아일보

2019년 기해년 1월 1일 오전 7시 30분 강원 평창군 발왕산 정상을 찾은 관광객들이 막 떠오르는 첫 일출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 정상에는 2000여 명이 모여 해돋이를 맞았다. 용평리조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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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를 완등한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국내의 수많은 산 가운데 의미 있는 새해 첫날 일출을 보기 위해 찾은 곳은 어디일까.

2019년 1월 1일, 기해(己亥)년을 알리는 첫해가 뜨기 직전 새벽. 강원 평창군 용평리조트 드래곤프라자 내 관광케이블카 탑승장 앞이 시끌벅적했다. 용평리조트를 품고 있는 발왕산 정상에서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엄 대장도 섞여 있었다. 일출 예상 시간인 오전 7시 30분에 맞추기 위해 6시 15분 탑승장에 모습을 드러낸 엄 대장은 사람들과 ‘기(氣). 기. 기’를 외치는 특유의 기합 인사와 함께 악수를 건넸다.

중견 배우 박상원 서울예술대(공연학부 연기전공) 교수도 탑승장 인파에 섞여 사람들과 덕담을 주고받았다. 그는 1959년 기해년에 태어나 올해로 환갑을 맞는다. 그만큼 2019년 새해 첫날의 의미는 남다르다. 박 교수는 “일출을 보면 지나간 60년 인생이 스쳐 지나갈 것 같다”며 설레는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 숨은 명산 발왕산


발왕산은 아직까지는 아는 사람만 아는 명산이다. 해발 1458m로 남한의 산 중 12번째로 높지만 비슷한 높이의 오대산(1563m), 소백산(1439m)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진다. 산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는 사람도 있다. 발왕산이 한류 드라마의 원조격인 ‘겨울연가’와 인기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지난해 평창 겨울올림픽 때 스키 알파인 회전, 대회전 종목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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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왕산 정상에서 새해 첫 일출을 바라보고 있는 산악인 엄홍길 대장(왼쪽)과 배우 박상원 서울예술대 교수. 평창=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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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1000m 이상 되는 산 정상을 케이블카를 타고 20여 분 만에 올라갈 수 있는 곳은 발왕산과 덕유산(1614m) 두 곳뿐이다. 길이는 왕복 7.4km를 오가는 발왕산 케이블카가 가장 길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오르자 탑승객들의 ‘갬성’(개인화된 감성) 자극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은 엄 대장. 최대 8명이 탑승할 수 있는 케이블카 구석에 자리 잡은 그가 케이블카의 블루투스 디바이스 기기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접속했다. ‘넬라 판타지아’가 스피커를 통해 나오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엄 대장은 “산은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다. 오감이 자극되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며 활짝 웃었다.

시계가 7시 31분을 가리키자 발왕산 정상의 어둠이 완전히 걷혔다. 동시에 해가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전망대 정면에 위치한 두타산(1325m)을 중심으로 좌(左)로 백봉령과 동해시, 우(右)로는 노추산(1322m) 사이에서 황금빛을 쏟아내면서 등장한 것. 산 정상에서 보아서인지 태양은 지상에서보다 훨씬 커 보였다. 히말라야에서 숱하게 일출을 봤을 엄 대장도 환호하는 사람들 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올해는 정상에 스카이워크가 건설될 예정이어서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발아래 유리를 통해 산 정상 위를 걸으며 일출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덕담이 오간 산 정상


해가 완연히 몸을 드러내고 주변 경관이 시야에 들어오자 산 정상에 모인 이들은 서로 신년 덕담을 주고받기 바빴다. 임신 5개월 차 아내와 산에 오른 김정환 씨(40)는 “황금돼지띠 해에 출산을 하게 돼서 아내와 일출을 꼭 보고 싶었다. 아내가 83년생 돼지띠라 안 올 수 없었다. 인생 최고의 추억이 될 듯하다. 배 속의 아이도 돼지띠인데, 정말 태어나서 매년 여기에 오자고 조를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2007년 돼지띠 해에 큰딸을 얻었다는 정우석 씨(46)는 “딸한테 지금까지 ‘네가 황금돼지띠야’라고 했는데 딸이 올해가 황금돼지띠라는 걸 알고 많이 실망했다”며 복주머니 메모지에 ‘딸아, 속인 거 미안하고 아빠가 새해에는 더 잘할게’라고 적어 전망대 앞에 걸어 놓았다.

배우 송일국 씨도 삼둥이 아들(대한, 민국, 만세)들과 함께 정상에서 일출을 지켜봤다. 일출에 비친 삼둥이의 모습을 찍어 추억에 남기려고 덩치 큰 몸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1971년생인 송 씨는 돼지띠다. 송 씨의 어머니이자 ‘장군의 손녀’인 김을동 전 국회의원도 엄 대장의 손을 잡고 “올해 돼지띠인데 나라도 그렇고, 주변분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며 덕담을 건넸다.

○ 발왕산의 숨은 보석들

발왕산은 최근 들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봄 이후 발왕산의 뛰어난 자연 환경과 역사를 테마로 하는 ‘콘셉트’(기성 개념에 없는 새로운 관점이나 시각)가 더해지고, 산의 특징을 보여주는 다양한 ‘스토리텔링’ 장치가 입혀진 게 효과를 거두고 있다.

발왕산 정상에서 산 높이와 같은 ‘1458’이라는 숫자가 자주 눈에 띄는 것만 봐도 그렇다. 용평리조트에서는 ‘1458 와인’과 ‘1458 맥주’까지 만들었다. 임진왜란이 1592년, 3·1운동이 1919년과 연결돼 일반인에게 기억되듯 1458과 발왕산을 기억하게 만들겠다는 아이디어 상품들이다.

엄 대장과 박 교수가 새해 첫날부터 발왕산을 찾은 이유도 재미있게 산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엄 대장은 “숨겨진 명산이라 부를 만한 발왕산은 산에서 다양한 재미를 느끼고 마음을 치유하려는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릴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산 밑이든, 정상이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발왕산의 역사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용평리조트의 신달순 대표는 발왕산의 유래와 역사 스토리텔링과 관련 콘텐츠 발굴에 무척 공을 들이고 있다. 발왕(發旺)산이 원래 팔왕(八王·하늘, 대지, 구름, 별, 물, 바람, 해, 나무)의 묫자리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옛 전설과 기록을 메인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삼았다.

발왕산의 높이 1458m(해발고도 기준)를 각각 더한 18(1+4+5+8)을 활용해 8월 18일을 발왕산의 생일로 정하는 이벤트도 만들어냈다. 또 18이라는 숫자를 2018 평창 겨울 올림픽의 개최지 중 한 곳이라는 의미로도 확장해 사용하고 있다.

발왕산을 걸어서 등반하면 명품 나무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발왕산에는 둘레만 3∼4m에 이르는 주목 260여 그루가 모인 군락이 있다. 수령이 수천 년 이상인 나무들이어서 산림청에서 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했다. 엄 대장은 “굵은 주목 기둥에 이마를 대면 나무가 뿜어내는 엄청난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둘레길 초입에는 활처럼 휘어진 나무(‘겸손의 문’) 서울대 정문을 닮은 나무(‘서울대 나무’) 승리를 의미하는 Victory의 ‘V’를 닮은 나무(‘승리 주목’) 등도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볼거리 올리기에 열광하는 젊은층들이 좋아할 만한 아이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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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왕산 정상에 있는 용평리조트 드래곤피크 건물에서 새해 일출을 기다리던 어린이가 복주머니 메모지에 새해 소망을 적어 줄에 걸고 있다. 용평리조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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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서 40m 밑 암반 지대에 위치한 약수터는 발왕산의 ‘보물 창고’로 불린다. 암반지대를 뚫고 300m 깊이 지하에서 솟아나오는 물에는 극히 일부 자연산 약수에서만 검출된다는 바나듐 성분이 함유된 것으로 확인됐다. 바나듐은 혈당을 짧은 기간에 내려준다. 또 동맥경화 예방과 고혈압, 중성지방 등 혈관계 질환 개선 등의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대신 나트륨 성분은 극히 적고 암을 유발하는 불소 성분은 ‘제로’다. 이를 관리하고 있는 용평리조트 직원들은 발왕수에 ‘어머니의 양수’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발왕수가 임신부의 양수 성분과 비슷한 미네랄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어서 붙인 일종의 ‘스토리텔링’이다. 용평리조트는 발왕수를 마시며 힐링할 수 있는 ‘마더스 워터 가든(Mother‘s Water Garden)’을 연내 약수터 주변 일대에 조성할 계획이다.


○ 한류 탄 인기 관광지


다시 케이블카로 출발 지점으로 내려오니 동남아 관광객들이 밀어닥쳤다. TV 드라마를 통해 발왕산이 소개된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최근에는 말레이시아 초등학생들이 ‘겨울연가’를 보고 발왕산을 찾았을 정도다. 신 대표는 “대만과 중국의 여행사들을 중심으로 관광객 유치가 어느 정도 가시권에 들어 왔다”고 귀띔했다. 필리핀에서는 현지에서 가장 큰 영화 제작사가 1, 2월에 발왕산에서 영화 전체를 촬영할 예정이다.

엄 대장과 박 교수는 산을 내려온 이후에도 카멜레온처럼 변신한 발왕산의 여운에 빠져 있었다. 최근 10년간 히말라야에 학교 16곳을 짓고 있는 엄 대장은 “앞으로 10년 동안은 내실 있게 학교를 운영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다짐을 할 곳이 필요했는데 그곳이 발왕산이었다”고 말했다. 촬영 중인 드라마가 중반부를 넘어선 박 교수도 “재충전이 필요할 찰나에 찾은 발왕산에 푹 취했다”며 활짝 웃었다.

발왕산의 변신을 주도한 신 대표는 “처음에 여기에 왔을 때 산이 완전히 감춰져 있었다. 출입금지 등 웬 ‘금지’들이 많은지…. 그래서 처음 한 것이 무조건 금지를 풀었던 거다. 야간 조명을 설치하고 오후 4시 30분에 케이블카 운행이 종료되는 것을 야간에도 운행시켰다. 산을 못 믿는 것도 아니고 창피한 것도 아닌데 오히려 다 보여주자고 했다”며 앞으로도 이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난해 말 발간된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 올해 소비 성향 트렌드를 예측한 김난도 서울대(소비자학) 교수는 “결국 죽는 것은 오프라인이 아니라 변화하지 않는 재미없는 공간”이라며 소비자들을 끌어모으는 트렌드의 하나로 소비 공간의 재탄생을 강조했다. 발왕산의 변신은 그런 흐름의 한가운데 있는 셈이다.

평창=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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