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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북위 60도 캐나다 설원, 오로라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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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콘 화이트호스 겨울 여행

사흘 관측 도전하면 97% 성공

낮엔 개썰매·스노슈잉 즐기고

야생동물 관찰, 온천 체험까지

캐나다 유콘 준주의 북위 60도 도시 화이트호스로 날아갔다. 일본·호주·멕시코·스페인 여행자와 함께 밤을 지새우며 하늘만 쳐다봤다. 이들의 공통점. 북극광, 즉 오로라를 볼 수 없는 나라에서 왔고, 초록빛 밤하늘을 보는 게 버킷리스트(죽기 전 이루고픈 소원 목록)라는 것. 하늘은 여행자의 간절함에 응답했다. 다섯 번 오로라 사냥에 나서 두 번 성공했다. 낮엔 개썰매를 타고 설원 속 온천에 몸을 담갔다. 윈터 원더랜드. 말 그대로 동화 같은 겨울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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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직선거리 6723km인 캐나다 화이트호스에서 하늘을 초록빛으로 뒤덮은 오로라를 만났다. 날이 흐렸는데도 구름 위쪽으로 파도처럼 일렁이는 초록빛이 강렬했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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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나타난 초록빛
지난해 12월 8일 오후 6시 30분. 밴쿠버에서 탄 76인승 소형기가 화이트호스공항에 착륙했다. 박제 순록 두 마리가 지켜보는 수하물 수취대를 빠져 나와 공항보다 작다는 화이트호스 다운타운으로 이동했다.

오후 10시 30분. 현지 여행사 ‘아크틱 레인지’가 운영하는 오로라 투어에 합류했다. 첫날밤이라고 뺄 순 없었다. 까마득한 극북(極北)의 도시까지 날아간 건 오로지 오로라 때문이었으니까. 시차 적응, 여독. 이런 단어를 부러 머리에서 지웠다.

다국적 여행객 14명과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30분을 달려 빛 공해가 없는 아득한 숲으로 들어갔다. 오로라센터에 도착하자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오로라가 아니라 별 때문이었다. 모래처럼 많은 별이 어찌나 밝던지. 밤하늘이 보랏빛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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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반짝이는 겨울 밤. 몽골식 텐트 유르트에서 오로라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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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가이드 히로키가 오로라 관찰법과 사진 촬영 요령을 알려줬다. 북극성이 반짝이는 하늘을 향해 카메라와 삼각대를 설치했다. 옅은 초록빛 하늘이 파인더에 담겼다. 셔터 속도 20초, 이른바 ‘장노출’ 사진 기술을 빌려야 볼 수 있는 빛이었다. 맨눈에는 옅은 회색 안개처럼 보일 뿐이었다. 히로키는 강한 오로라가 나타나면 부르겠다며 텐트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핫초코를 홀짝이며 몸을 녹였다. 한 시간, 두 시간 지나도 깜깜무소식. 얄궂게도 북쪽 하늘에만 먹구름이 짙었다. 오전 2시. 끝내 오로라는 제빛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음날을 기약하며 돌아오는 버스에서 까무룩 잠든 채 호텔로 왔다.

오전 10시 30분. 한국과의 시차, 새벽까지 이어진 오로라 투어로 늦잠을 잤다. 커튼을 젖히니 동쪽 지평선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해가 뜨거나 질 때의 때깔이었다. 시간과 풍경의 어색한 조합을 보고 나니 북위 60도 도시가 실감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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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호스 다운타운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형형색색의 주택. 화이트호스에는 눈이 많이 내려 건물이 눈에 잘 띄도록 화려하게 채색한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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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눈으로 지켜보다
두 번째 오로라 사냥에 나섰다. 어김없이 별 밝은 밤, 북쪽 하늘이 어제보다 깨끗했다. 영하 5도는 화이트호스에서 이례적으로 따뜻한 밤이었기에 눈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리라 작정했다. 보통 화이트호스의 겨울 최저 기온은 영하 20~30도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걸고 마음을 졸였다. 갑자기 구름 위로 레이저 빔처럼 얇은 초록 빛줄기가 솟구쳤다. 가이드 모토가 “오로라 폭풍이 나타나기 전의 조짐”이라고 말했다. 모두 숨을 죽였다. 불현듯 구름 위에서 짙은 초록빛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너울거렸다. ‘초록빛 커튼’이라는 상투적 표현이 적확했다. 이내 별들을 쓸어버릴 듯 강력한 빛이 하늘을 휘감았다. 가장자리는 옅은 자줏빛이 보이기도 했다. 오로라는 소리를 내지 않는데도 조성진의 쇼팽 연주가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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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 '아크틱 레인지'가 운영하는 오로라센터에는 원주민 텐트 티피가 설치돼 있다. 사진 연출과 휴식을 위한 공간이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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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사진을 찍다가 맨눈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를 타임랩스 모드(일정 간격으로 자동 촬영하는 기능)로 해두고 북쪽 하늘에 시선을 고정했다. 홍콩의 야경이 이리 황홀할까, 프라하의 밤거리가 이렇게 낭만적일까. 3시간이 눈 깜짝할 새였다. 호텔로 돌아와서도 감격이 이어졌다. 객실 천장에 초록빛이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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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호스 다운타운 방향에서 구름 뒤편으로 오로라가 나타났다. 도심 불빛과 어우러져 독특한 색을 연출했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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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은 일찌감치 기대를 접었다. 일기예보가 ‘구름 많음 혹은 눈’이었다. 오로라센터에 도착하니 하늘 전체가 잿빛이고 별빛조차 희미했다. 한데 북서쪽 하늘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화이트호스 다운타운 방향에서 오로라가 피어 올랐다. 구름 사이사이로 삐져나온 초록빛이 도시의 붉은빛과 어우러져 어제와는 또 다른 장관을 연출했다. ‘반지의 제왕’ 속 어둠의 군주, 사우론이라도 나타날 것 같았다. 영화보다 영화적인 장면이었다.

오로라 말고도 재미나다
네 번째, 다섯 번째 밤에도 오로라 사냥에 나섰지만 소득은 없었다. 닷새 중 이틀, 캐나다 원주민이 ‘신의 영혼’이라 믿는 존재를 알현한 것에 만족했다. 캐나다 북부에서 사흘 오로라 관측을 시도하면 한 번 이상 볼 확률이 97%라는 말은 믿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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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200m 산자락에 있는 잭슨호수에서 스노슈잉을 즐기는 사람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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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인 사이에서는 오로라 여행지로 캐나다 노스웨스트 준주의 옐로나이프가 유명하다. 화이트호스보다 관측 확률이 5~10% 높아서다. 하나 화이트호스는 오로라 말고도 즐길 게 많다. 야스 야마모토 유콘관광청 아태 지역 매니저의 설명이다.

“오로라만 본다면 옐로나이프가 좋을 수 있죠. 그러나 화이트호스에서는 야생동물 관찰, 온천, 박물관·갤러리 탐방도 즐길 수 있습니다. 캐나다인이 이곳을 버킷리스트로 꼽는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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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호스에는 설원 속 온천도 있다. 미네랄이 풍부한 42도 온천에 몸을 담그면 언몸이 사르르 녹는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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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랬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해가 떠 있는 짧은 시간도 흥미진진했다. 해발 1200m, 꽁꽁 언 호수를 설피 신고 건넜고, 유콘 야생동물 보호소에서 북극여우·사향소·순록 같은 북극권 동물을 만났다. 타키니온천에서는 언 몸을 눅이며 피로를 풀었다.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얼린 머리 사진 콘테스트 도전은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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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콘 야생동물 보호센터에서 만난 동물들. 북극여우, 바이슨, 무스, 산양, 스라소니 순.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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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썰매 체험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알래스칸 허스키 세 마리가 끄는 썰매를 타고 가문비나무 숲을 질주했다. 개에게 너무 가혹한 놀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개썰매 업체 ‘묵툭’의 철저한 정책을 듣고 수긍했다. 묵툭은 썰매 개 170여 마리를 기르는데 절반 이상이 버려진 개를 데려온 거란다. 두세 마리로 팀을 이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순환 근무’를 시키고, 나이 들어 썰매를 못 끄는 녀석은 숨을 거둘 때까지 돌봐준단다.

직원들이 부탁한 게 있었다. 썰매가 쉴 때마다 개 이름을 부르며 어루만지고 칭찬해주라고. 그래. 이렇게 온기를 나눌 수 있다면, 밤마다 오로라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영하 30도 추위도 견딜 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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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썰매 체험은 화이트호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아시아에서 베링해를 건너온 원주민은 1만 년 전부터 개썰매를 탔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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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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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화이트호스를 가려면 밴쿠버를 경유해야 한다. 에어캐나다가 인천~밴쿠버 노선을 매일(9~11시간 소요), 밴쿠버~화이트호스 노선(2시간 30분 소요)을 하루 두 번 운행한다. 화이트호스 갈 때 밴쿠버에서 환승 대기는 4시간. 이때 공항 인근 ‘맥아더글렌 아웃렛’에서 쇼핑하면 좋다. 갭‧아르마니 등 브랜드 제품을 30~70% 싸게 판다. 화이트호스도 쇼핑하기 좋은 도시다. 백화점이나 아웃렛은 없지만 유콘 준주 전체가 모든 제품에 연방세(5%)만 붙고 주세(7%)가 안 붙는다. 1월 8일 기준 1캐나다달러 847원. 화이트호스는 한국보다 17시간 느리다. 여행사 롯데관광과 샬레트래블이 유콘 오로라 여행상품을 판다. 자세한 정보는 캐나다관광청 홈페이지 참조.

화이트호스(캐나다)=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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