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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박기자 어디가?] 힐링은 지겹다, 열흘간의 워라밸 실험일지-한 디지털 노마드의 제주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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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으로 결항 직전, 제주행 비행기를 잡아탔다. 이 세상에 남아있는 좋은 술을 다 맛보기도 전에 하직하는가 싶을 만큼 길게 기류에 흔들리던 비행기는 가쁜 숨을 내쉬며 안개에 휩싸인 제주공항에 날 내려주었다. 관광객으로 가득한 제주도도, 빵지순례도, 카페와 맛집 이어달리기도 다 귀찮았다. 다들 힐링을 외치며 가는 그 제주도에서 서울의 일상을 그대로 이어가 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것은 그 열흘간의 실험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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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이슨호텔 내 객실에는 세탁기, 전자레인지, 냉장고 등이 비치돼 있어 장기 투숙에도 걸맞다. 1~5. 1차 호텔 체이슨호텔 더 스마일 2, 7. 제주 출신 갑빠오(고명신) 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이 곳곳에 있다. 6~8. 2차 호텔 체이슨호텔 더 리드. 아이콘 폰트를 주제로 디자인한 호텔 더 리드는 책, 워라밸, 아트 프로젝트를 테마로 꾸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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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실험자 1일차 날씨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제주 도착 첫날. 예약해둔 범섬 다이빙도 태풍 때문에 모두 취소다. 제주의 바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1000배는 강했다. 우산의 존재 의미 따위 태풍 앞에선 마른 낙엽 같았다. 꺼내자마자 살이 구부러진 우산을 접은 뒤, ‘체이슨호텔’까지 뛰기 시작했다. 제주도 한 달 살기가 유행처럼 번지며 장기 투숙객을 위한 숙소가 많아진 가운데, 사무실이 딸린 객실에서 먹고, 자고, 일하고, 운동하고, 여행하는 모든 경험을 제공하는 ‘워라밸 스마트 오피스’를 체험해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싱크대, 인덕션,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이 있는 객실을 1박에 비교적 저렴한 5만 원 정도의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이 ‘워라밸 스마트 오피스’가 체이슨호텔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됐다. 체크인을 할 때 객실 키와 스마트 오피스 키 2개의 카드를 받아들었다. 객실에 짐을 풀고 열흘간 내게 배정된 스마트 오피스로 내려간다. 높이 조절이 가능한 테이블과 프린터, 에스프레소 머신과 유선 전화기 등이 놓여 있다. 핸드폰으로 프린터와 연결, 메일로 받은 원고를 바로 출력할 수 있고, 바로 옆 싱크대에서 뭔가를 만들어먹거나 전자레인지로 쉽게 음식을 데워 먹을 수도 있다. 일종의 오피스텔형 작업실이다. 일을 하다 눈을 들어 창밖을 보면 법환 바다가 저 멀리 보인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 쾌적한 환경에서 일을 하다, 피곤하면 객실에 올라가서 낮잠을 잔다. 지역 출신 스태프를 고용하고 로컬 아티스트와의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든다. 워라밸 스마트 오피스는 일반 숙박객은 물론 기업의 사내 복지로도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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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쉬지 마라’ 체이슨호텔 워라밸 스마트 오피스 ‘일과 삶의 균형(Work-and-life balance)’을 뜻하는 ‘워라밸’을 서비스 네이밍에 넣은 체이슨 호텔의 슬로건은 ‘제주에서 쉬지 마라’다. 일과 생활을 함께 하도록 밸런스를 잡아준다는 뜻일까. 워라밸 스마트 오피스는 기존의 공용 비즈니스 라운지와는 달리, 객실마다 독립적인 사무공간을 제공한다. 세탁기, 커피머신 등 슈페리어 더블룸과 같은 구성에 책상, 스탠드 테이블, 데스크탑 컴퓨터와 프린터 등 사무기기가 함께 비치된 스마트 오피스가 제공된다. 일정금액을 내고 7일, 15일, 30일권 중 선택해 스마트 오피스를 체험하면서, ‘디지털 노마드’족이 되어볼볼 수 있다. 4~5인까지 장기 투숙 시에는 인덕션 이용도 가능하다. 호텔스닷컴(4.9/5), 익스피디아(4.8/5), 부킹닷컴(9.9/10), 데일리호텔(베스트 서비스 부문) 등 게스트어워즈 최고평점 4관왕에 오른 체이슨호텔 더 스마일은 지난해 포시즌스 호텔을 제치고 베스트호텔 1위로 꼽혔으며, 우수한 부티크호텔 및 디자인호텔을 뽑는 마이부티크호텔(Myboutiquehotel) 멤버로도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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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커피와 제주3대 베이커리 ‘봉주르 마담’의 갓 구운 따뜻한 빵이 인 룸 조식으로 제공되는 체이슨호텔 더 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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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실험자 2일차 크로와상이 커피 향과 어우러진 냄새가 잠을 깨운다. 조식을 방으로 갖다 줘서 화장할 필요가 없어진 여성들이 더욱 좋아한다는 체이슨표 ‘인 룸 조식’이다. 창 밖을 보니 태풍은 끝났고 제주 하늘은 거짓말처럼 다시 맑아졌다. 내 우산을 2초 만에 망가뜨리고, 전신주를 흔들어대던 그 바람이 자기 이름도 기억하지 말라는 듯 사라졌다. 스마트오피스로 내려가 인터뷰 질문지를 확인해본다. 오전에 제주살이 6년차를 실행 중인 정우열 웹툰작가를 인터뷰하고 올레길을 걷는 것이 오늘 계획이다. 인터뷰 촬영 차 나간 법환해변에서 해녀학교를 발견했다. 그러나 2명 이상만 해녀체험을 할 수 있다는 말에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제주에서도 좀녀(해녀)가 가장 많은 법환마을은 국내 최남단 해안촌이다. 해가 지기 전에 올레길을 걸어야겠기에 체이슨호텔에 ‘올레길 서비스’를 요청했다. 차가 없는 손님들을 고근산 올레길 입구까지 픽업, 샌딩해주는 서비스다. 30여 분 산을 오르니 태풍이 끝난 산 위에서 한라산 자락이 선명하게 보였다.

저녁엔 ‘#법환동술집’을 검색해 나온 집으로 향했다. ‘#심야식당, #제주플라야, #말짜하우스, #기태야’ 등 인기 술집들은 다 문을 닫았다. 오후 10시, 해변을 걷다가 유일하게 불이 켜진 술집에는 어느 소설 한 대목에서 나올 듯한 여주인 혼자 바에 앉아 있다. 그 음악과 분위기에 홀려 한라산 한 병을 시켰다. “태풍이 왔을 때 해변 풍경이 아주 멋진데, 선주들 때문에 좋아할 수는 없고.” 지인인 듯한 사내가 태풍 걱정을 뒤로 하고 안주를 주문한다. “태풍 준비 잘해라이. 더는 못마신다 이지갱.” 택시를 부르자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차가 도착했다. 아뿔싸, 배터리는 없는데 숙소로 가는 길을 잊었다. 기사가 답한다. “제주는 구짱(곧장) 가면 되요. 다 통하니까.” 열심히 일한 후 즐긴다는 ‘제주 1일2펍’의 규칙, 일단 오늘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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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실험자 4일차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오늘은 늦잠이다. 혼자서 매일 아침 닦는 난초 잎마냥 자기 자신을 잘 보살피며 산다는 건 이토록 힘든 일이었다. 오늘은 산림치유(3시간, 2만원) 체험이 가능한 서귀포 치유의 숲을 취재하기로 한 날이다. 산림치유지도사의 설명에 따라 일단 크게 숨을 한번 쉬고 자율신경계 균형 검사를 받았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고 했다. “걸으면서 호흡과 명상에 집중해보세요.” 노고록무장애숲길을 지나 삼나무숲길로 향한다. ‘노고록’은 제주어로 ‘여유있는’이라는 뜻이다. 비우러 왔다가 새로운 걸 충전해오는 이곳은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피톤치드가 숙취를 해결해주길 바라며 발걸음을 뗐다. 족욕과 편백열치유까지 마치고 나면, 차롱(제주에서 음식을 담기 위해 대나무로 만들어 사용하던 바구니)에 담긴 도시락을 받는다. 차롱으로 유명한 치유의 숲 호근마을 주민이 새벽 일찍부터 나와 만든 도시락이다. ‘좋은 인연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라고 적힌 도시락 안에는 전, 한라산 표고버섯, 톳주먹밥 등이 담겨 있다. 제철 재료를 이용해 만들어 씹을수록 건강한 맛이 나는 차롱은 밭에 점심을 싸고 나갈 때나 제사음식을 담아두던 바구니다. 그러나 이제 인건비가 올라 누구 하나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숲길 힐링과 산림치유 프로그램 참여자가 3일 전 사전예약을 한 경우 먹을 수 있다. 육지 왕대나무로 만든 것은 5년을 넘기기 어렵지만 제주의 질 좋은 대나무로 만든 것은 80년도 가는데, 대나무는 음력 10월부터 정월 전, 물때가 조금일 때 베서 두 달 동안 말려야 한다. 오후에 들른 서귀포자연휴양림에서는 캠핑을 하는 이들이 보였다. 하늘을 향해 누워 책을 펼쳤다. 서울에서는 그렇게 오지 않던 잠이, 여기서는 머리만 닿아도 바로 쏟아진다. 서귀포 치유의 숲 산록남로 227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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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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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실험자 6일차 이제 워라밸 스마트 오피스 생활에 완벽히 적응됐다. 내가 원할 때 일어나서 내가 원하는 음식을 천천히 먹는 행위의 즐거움에 대해 깨닫게 된 아침이다. 지각하지 않을 만큼 억지로 일어나 허겁지겁 집어넣는 샌드위치가 아니라, 밥 먹을 때 유튜브 따위 보지 않고 재료의 물성을 하나 하나 음미하며 먹는다. ‘이건 어디 귤이지?’ ‘이것은 어디에서 온 멜젓인가’, ‘어디서 온 옥돔이지?’ 밥을 먹고 나서 제주에서 유명하다는 하타요가를 하러 시내로 차를 몰았다. 이효리 요가 선생에게 사사받았다는 이철호 강사가 차를 따라준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겼다. “잘 들여다보세요. 분명히 몸이 좋아하는 소리가 들리죠. 몸이 기뻐하고 있는 게 보일 거예요. 고통스러웠던 부분이 풀리는 소리, 몸의 시원함, 처음 느끼는 고통도 그대로 직시하세요.”

서울에서 회사 생활로 오래 몸을 혹사했다는 그는 10여 년 전 휴가 차 온 제주에 반해버렸다. “휴가 차 온 뒤로 서울에 올라가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조금 고통스럽게 느껴져도 하타요가를 오래 하다 보면 분명히 심신이 좋아집니다. 식생활도 자연스럽게 바뀌고 술도 밤새 먹게 되요. 억지로 끊어내려 하지 마세요. 뭔가를 억지로 끊으면 또 다른 걸 찾게 되죠.” 지난해 내내 딴 집 살림 하고 있던 근육들이 나한테 왜 이러냐며 비명을 지른다. 한번도 움직인 적 없던 부위가 내 몸에 이토록 많았다는 것을 자세를 풀고 나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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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진: 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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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실험자 8일차 제주 생활이 끝나기 전에 섬 속의 섬, 가파도로 향했다. “가파도는 2시간이면 다 보는데 4시까지 뭐하시려구요. 더 일찍 나오시는 걸로 끊으시지.” 두 번이나 거듭 설득하려 했던 매표소 직원의 말이 무색하게 가파도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보리가 다른 곳보다 2배 넘게 크게 자라는 가파도는 청보리축제로 유명하다. 최근엔 아티스트들이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하는 ‘가파도 프로젝트’로 꽤 알려졌다. 난개발 대신 자연을 해치지 않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 개발, 문화적 스토리가 있는 섬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오게 하자는 제주시와 현대카드의 공동 프로젝트다. 가파도는 모슬포에서 배로 15분, 건너편 송악산과 산방산이 두 손에 잡힐 듯 가깝지만 태풍이 오면 며칠씩 섬에 갇힐 수도 있는 섬이기도 하다. 항구에서 가장 먼저 맞아주는 건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 그들의 집사가 되어 노란색 지붕의 식당 ‘황금보리’집으로 향했다. 주인장은 가파도를 ‘걸으며 돌아보라’고 권했다. “1시간쯤 걸려요. 자전거 타면 25분 밖에 안 걸려서 걸으며 보는 풍경을 놓쳐요. 서울에서 오셨어요? 나도 서울여잔데, 하하.” 제주에 온 지 40년 됐다는 ‘서울여자’의 말이다. 청보리막걸리를 주문하고 보니 ‘대한민국에서 최고 높은 한라산, 대한민국에서 가장 키 작은 섬 가파도’라는 설명이 눈에 들어온다. 가파도에서 가장 높은 곳은 해발 20m의 소망전망대로 한라산, 마라도가 한눈에 보인다. 주인장의 말대로 항구가 있는 상동마을에서 북쪽의 하동마을까지 걸었다. 청보리축제가 펼쳐지는 밭 옆에는 사람이 걸터 앉거나 올라서면 태풍이 몰아친다는 까마귀돌, 어멍돌이 있다. 제사를 지내는 짓단과 밭담이 뚝심 있게 가파도를 지켜내고 있었다. 잠수함 굴뚝처럼 생긴 건물이 눈에 띈다. ‘가파도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이 머무는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가파도 AiR)’다. 2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곳에 생긴 젊은 변화다. 사회공헌(CSR) 철학이 반영된 ‘가파도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카드는 건축가 최욱이 이끄는 ‘원오원 건축사무소’와 함께 오랜 기간 가파도의 식생과 문화, 역사 등을 연구하고 가파도 특유의 나지막한 지형과 기존 가옥들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가운데, 자립경제를 위해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매표소, 숙박시설, 스넥바 등도 신설했다. 큰 오름이 많고 떠들썩한 본섬 관광에 지쳐 있다면 하멜이 정착했다는 가파도에서 고즈넉하고 ‘키 낮은 휴식’을 즐겨보는 것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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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봉산장, 법환바다 앞 범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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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실험자 10일차 미리녹음한 라디오 출연 외에 제주 숍 취재와 로컬 아티스트 인터뷰 등으로 제주 열흘 살이는 꽉 채워졌다. 바다 풍경을 배경 삼아 노트북으로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었다. 사소한 문제들은 전화나 메신저로 충분히 해결이 됐고, 출퇴근으로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도 절약됐다. 그외 제주 라이프 열흘 동안 깨달은 건 제주는 생각보다 넓다는 것. 만나자는 제안을 거절하는 섬의 동쪽 친구를 향해 섬의 서쪽에서 섭섭해하면 안 된다. 그리고 중문 관광단지 정도를 제외하면 일찍 닫는 곳이 많으므로 미리 전화를 하고 가는 게 좋다는 사실이었다. 제주의 마지막 밤을 보낼 펍을 찾기 시작했다. 술집은 분위기와 음악이 팔 할이다. 아무리 인테리어가 좋아도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 나온다면 거긴 핫하긴 글렀다. 육지의 새것이 계속 쏟아져 들어오는 제주에서 반대로 오래된 것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셔터 소리 말고 책을 보기 위해 들르는 책방 순례나 주인장이 오래 갈고 닦았음이 분명한 취향이 드러나는 술집. 마구간을 개조한 친봉산장이 그랬다. 문틀부터 의자, 벽난로까지 하나하나 직접 만든 공간들. 영업시간을 묻자 주인은 “촛불이 꺼질 때까지 합니다”라는 답변을 들려준다. 그래, 오늘은 여기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만, 또 그 때문에 생긴 질환 때문에 마사지와 물리치료를 받으며 도시의 이곳 저곳을 동분서주한다. 힐링을 하러들 오는 제주에서 일과 여행을 병행하며 보낸 열흘, 피실험자가 되어 내린 결론은 ‘여정에서 답을 구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일과 삶의 분리, 삼투압처럼 침습해오는 업무의 피곤함은 첨단의 스마트 오피스도 지켜주지 못했다. 어차피 답은 안 찾아진다. 여행이 우울증을 해결할 처방전이라거나 유일한 행복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일이든 여행이든 그냥 비일상 속에 나를 세워둠으로써 환기시키는 것에, 작든 크든 나름의 효용성이 있지 않을까.

Interview | 제주 생활 6년차, 웹툰작가 올드독

프리다이빙 강사로 제2인생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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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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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지닌 풍경을 열어 지친 이들을 품는 제주는 이곳으로 이주해 전혀 다른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해준다. 그래서 가끔은 ‘아,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였어’라고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터뷰로 만난 ‘올드독’ 정우열 작가는 환상만으로 덤비기엔 제주살이가 녹록치 않다고도 말했다. 그는 자신의 오랜 반려견 ‘풋코’를 주인공으로 『올드독의 맛있는 제주일기』와 『개를 그리다』 『올드독, 날마다 그림』등을 펴내고, 포털에 웹툰을 연재 중이다. 제주로 이주한 지 6년째, 프리다이빙(수중 무호흡으로 잠수하는 다이빙)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는 그를 만났다.

근황을 알려달라. 현재 제주 생활 6년차다. 웹툰 ‘올드독’ 모델이기도 한 반려견 풋코를 주제로 네이버 동물공감 ‘판’에 ‘노견일기’를 연재 중이고, 프리다이빙 강사로도 일하고 있다.

제주 이주 계기는? 바다 수영을 좋아해서 서울에 살 때도 인천 이작도 등 섬 여행을 많이 했는데 바다 수영을 늘 할 수 있어서 제주로 옮겨왔다. 1년 전 프리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땄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일상을 살다 여행, 탈출구처럼 프리다이빙을 배우러 오는데, 그들을 가르치는 기쁨이 남다르다.

프리다이빙의 매력은? 원래 수영을 좋아했고, 개들과 함께 헤엄치고 싶어서 제주로 왔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물고기 구경을 제대로 하고 싶었다. 프리다이빙은 주로 범섬이나 문섬에서 한다. 다이빙에서는 내 몸이 장비다. 자기 호흡과 최소한의 장비로 즐기는 일종의 수양이다. 얼마나 깊이 들어가느냐보다 중요한 건 물속에 들어갔을 때만 온전히 중력에 반대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프리다이빙 전날이나 트레이닝, 대회나 라이선스를 준비하는 전 단계에선 음식도 절제한다. 물과 오트밀 정도를 먹는다. 요즘 제주 젊은 해녀들도 프리다이빙을 배우는 경우가 있다.

제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제주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다. 카페, 게스트하우스. 숙박, 식음료 등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업태가 많은데 현실적인 계획인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제주도는 충분히 환상을 가질 만한 좋은 섬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면서 사는 데 드는 비용도 높아지고 있다. 그 개발이나 파괴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은 안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토착민들이 이주민들에게 이질감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제주는 정체된 채로 오래 살아온 곳이 많기 때문에 육지 사람들 기준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들이 외부 세계에 이질감을 갖는 건 당연한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 프리다이빙에 대한 만화를 그릴 생각이다. 치열하고 심각한, 다이빙으로 위안을 얻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데, 시사만화 같은 것, ‘웃픈’ 만화를 그려보고도 싶다.

▶일하며 만난 제주의 잇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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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가파도 스낵바 항구를 바라봤을때 오른쪽 끝에 있다. 보리빵 파니니, 뿔소라 주먹밥, 구운 문어와 가파도 맛건빵. 여기선 한라산 잔술도 판다. 해녀가 직접 운영하는 곳으로 섬에서 유일하게 밤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술집이다. 공간이 좁아서 옆자리 손님과 금방 친구가 된다.

➋ 더 부즈 ‘SNS에 주소 노출 금지’라는 독특한 조항이 있는 더 부즈는 건물 구석에 숨겨진 공중전화박스 입구를 찾아야 들어갈 수 있는 스피크이지바다. 밀주시대처럼 웬만해선 찾기 힘들다. 5명 이상은 출입이 금지돼 있으며 세팅비를 내고 안주용 음식을 가져올 수 있다. 신발 소독 및 건조, 웰컴드링크, 스타일러스 가능. 20:00~03:00

➌ 친봉산장 ‘오전 11시부터 촛불이 꺼질 때까지’ 연중무휴로 영업하는, 누구나 쉽게 주인장과 친구가 되는 바. 촛불, 짚단, 구제 캠핑용품 등이 모두 훌륭한 인테리어가 된다. 아이리쉬커피 위스키가 유명한데 흔들지 말고 컵의 목 부분을 잡은 채 빨리 마실 것. 천천히 마시면 위스키가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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➍ 혜원책방 정현종 시인의 『섬』 표지에 ‘잘 먹고 잘 쉬고 갑니다. 이 책은 다 읽은 책인데 두고 갑니다’라고 적힌 쪽지가 붙어 있다. 습기에 젖은 곰팡이 냄새, 먼지까지 빈티지한 멋이 나는 곳으로, 식당인 ‘지안재’와 헌책방인 ‘혜원책방’, 위스키 바인 ‘스틸 빈티지 바’가 함께 있다. 제주 구좌읍 평대 해안도로가에 위치해 있으며 헌책을 가져오면 음료를 증정한다. 그라파, 깜빠리소다, 키르 등 다른 곳엔 잘 없는 메뉴들과 함께 한라봉생맥주, 당근생맥주 등이 있다. 문어바질파스타가 유명하다. 매주 화요일 휴무. 12:00~21:00

➎ 체이슨 호텔 더 리드 세탁기, 냉장고, 전자레인지가 있어 장기 투숙하거나 출장 온 비즈니스 피플에게도 어울린다. 전자레인지로 편의성을 높였으며 아일랜드 테이블처럼 편한 테이블이 객실에 있어 요리도 가능하다.

➏ 천백꼬지 ‘혼밥, 혼술’전문 밥집으로 최남단 로컬브루어리인 탐라에일에서 만든 1.5 탐라페일에일과 탐라밀맥주를 마실 수 있다. 치킨 난반과 제주 흑돼지로 만든 돈까스, 카츠산도가 맛있다. 제주산 닭꼬치와 흑돼지제육과 함께 김광석 노래가 잘 어울리던 곳이다. 14:30~23:00

[글 박찬은 기자 취재협조 체이슨호텔 사진 이승무,박찬은 일러스트 픽사베이,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2호 (19.01.1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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