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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흥미진진 이색체험 ‘생산’ 음성군에서 즐기는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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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세기 독일의 약국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한독의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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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에서 ‘음성’ 검색하면

결과는 음성 변조·음성 양성 뜻…

섭섭했던 음성군은 고민을 한다

산업단지 11곳…그래 ‘팩토리투어’


포털사이트에서 음성을 검색하면 ‘음성변조프로그램’ ‘음성 양성 뜻’ 등이 연관검색어로 뜬다. 충북 음성은 선택지의 저 밑자락에 가 있다. 도시 이름만 넣으면 ‘가볼 만한 곳’이나 ‘여행코스’가 자동으로 붙는 속초나 경주 같은 유명한 관광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음성군 입장에선 섭섭할 법도 하다. 음성군도 관광객을 유치해 고장을 알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야 하는 처지는 다른 도시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음성군이 들고나온 아이템이 ‘팩토리투어’다. 말 그대로 공장으로 가는 여행이다. 11개 산업단지에 2300개가 넘는 기업이 몰려 있는 지역 특성을 십분 살려 나름의 관광상품을 만든 것이다. 의약품, 맥주, 즉석식품, 화장품, 침대, 골프공 등 생활에 밀접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들 견학은 물론 체험프로그램 참여, 제품 구입까지 한번에 하는 식이다. 음성군은 현재 9개 기업과 협약을 맺고 산업관광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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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묘약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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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먹는 약은 어디서 왔을까

여행의 시작점은 지난해 3월 개관한 ‘흥미진진한 팩토리 투어센터’다. 한독(옛 한독약품) 공장 부지 안에 자리 잡은 투어센터는 유리온실로 된 한독의 약초원을 개조해 만들었다. 공간은 투어 팩토리, 그린 팩토리, 플레이 팩토리 등 세 곳으로 나뉜다. 투어 팩토리는 관광안내소다. 음성 내 산업관광이 가능한 기업들과 세부 내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그린 팩토리는 나무와 꽃이 그득한 카페로 쉬어가기 좋고, 플레이 팩토리에선 사랑의 묘약 만들기, 소화제 만들기, 혈액형 알아보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조그만 알약 캡슐 안에 깨알같이 편지를 적어 넣고 별사탕, 하트캔디 등과 함께 약봉지에 넣은 뒤 봉투에 ‘스트레스 받는 날 한 봉지씩’하는 식으로 복약지도 내용까지 적어 가족이나 연인, 친구에게 선물할 수 있는 사랑의 묘약 만들기가 가장 인기가 좋다.

팩토리 투어센터에서 여행 맛보기를 시작했다면 다음은 한독의 의약품 생산라인을 견학할 차례다. 먼저 파스형 관절염 치료제를 만드는 플라스타동으로 이동했다. 플라스타는 파스와 반창고 등 피부에 부착하는 의약품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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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토톱’ 생산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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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생산라인 위로 견학코스가 마련돼 있고 커다란 유리창이 있어 공장 돌아가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아크릴 코팅지에 약품을 바르고 복숭아색 패치를 그 위에 덮으면 약품이 삼투압 원리로 스며드는 과정 전부가 로봇에 의해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이뤄졌다. 반도체 공장처럼 흰색 작업복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은 직원들이 있었지만 포장 단계에서 조금 거드는 정도였다.

알약을 만드는 정제동에선 원료의 양을 정확히 측정하는 칭량부터 재료를 혼합·건조시키는 과립, 가루를 압축해 알약 형태로 만드는 타정, 표면에 당을 입히는 코팅, 식용 잉크를 사용한 제품명 인쇄까지 소화제 한 알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간당 약 20만정을 생산한다는 기계의 움직임은 빠르고 정확했다. 포장동의 6개 자동포장라인에선 연고와 크림, 병 등 형태가 다양한 약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나왔다. 완성된 제품들은 5대의 무인이송차(AGV)가 창고까지 실어날랐다. 바닥에 매립된 전기선을 따라 움직이는 무인이송차는 센서가 있어 사람이 지나가면 저절로 멈췄다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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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초간본과 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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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후’의 집념 느껴지는 박물관

공장 견학 뒤엔 바로 옆에 붙어있는 한독의약박물관을 둘러봐야 한다. 한독 창업 10주년을 기념해 1964년 개관한 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기업박물관이자 전문박물관이다. 동서양 의약의 역사를 담은 유물이 무려 1만여점이나 전시돼 있다. 대부분은 창업주인 김신권 회장(2014년 타계)이 사재를 털어 모은 것들이다. 보물 6점을 포함해 기발하고 수준 높은 소장품 목록에선 ‘덕후’의 향기가 느껴진다. 1층 전시실 한쪽을 차지한, 19세기 독일의 약국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이 대표적이다. 실제 영업하던 약국의 선반, 진열대, 가구, 집기 등을 그대로 컨테이너째 실어왔다는 설명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 박사의 연구실을 고증해 재현한 전시실도 마찬가지다. 100년 전에도 유럽인들은 보청기를 사용했고, 눈동자 색과 안구의 핏줄까지 섬세하게 표현한 유리 의안을 끼고 다녔다는 사실을 이 박물관이 아니면 대체 어디서 알 수 있을까.

시작은 투어·그린·플레이 팩토리

‘사랑의 묘약 만들기’ 가장 인기

빨간 벽돌집 KCB에선 맥주 탐험

품바재생예술체험관서 예술 한번


스무 살에 만주에서 약방을 개업한 이력이 있는 ‘제약업계 1세대’ 김 회장은 1957년 기술 제휴를 위해 독일을 방문했다가 들른 하이델베르크의 약학박물관에서 충격을 받고 관련 유물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실시된 1회 약제사시험에 수석 합격한 조선약학교 초대 졸업생 이호벽의 합격증이 전시실에 걸려 있는 걸 보면 김 회장이 어떤 마음으로 수많은 유물들을 수집해왔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한약재 이름을 한글로 풀어 써 초기 훈민정음의 형태 등 국어사 연구에도 중요한 사료인 ‘구급간이방’을 비롯해 ‘향약제생집성방’ ‘의방유취’ ‘동의보감’ 초간본과 목판본 등 희귀한 의서도 박물관의 주요 전시품이다. 이달 말까지 진행되는 특별전 ‘약장 이야기’에는 조선시대 내의원에서 사용하던 약장과 약상자 등 평소 쉽게 보기 힘든 물건들이 여럿 준비돼 있다.

한독의 생산시설과 박물관 견학은 물론 십전대보탕 만들기, 동의보감 책 만들기, 방향제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도 함께 포함된 가족 단위 관광객 대상 프로그램은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상시 진행된다. 인원은 30명으로 선착순 마감하며 신청은 포털사이트(네이버에서 한독의약박물관 검색 후 예약 버튼 클릭)나 전화(043-530-1004)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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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 제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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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에 어울리는 쌉쌀한 맛

음성군 원남산업단지에 있는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KCB)는 빨간 벽돌로 쌓아올린 커다란 건물이 멀리서부터 눈에 확 띈다. 방문객들의 손때가 묻어 색이 변한 출입문의 오크(oak) 손잡이를 밀고 들어가면 내부 양조장 견학과 맥주 시음을 할 수 있다. 로비 천장에는 맥주 거품을 형상화한, 커다란 알전구를 여러 개 겹쳐 만든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KCB는 밍밍하고 특색 없는 공장제 대량생산 맥주 대신 개성 있고 다양한 맥주를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양조 전문가와 엔지니어, 건축가, 공연예술 전문가 등이 모여 만든 회사다. 건물 벽과 유리창 곳곳에는 “맛없는 맥주를 마시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우리가 마시고 싶지 않은 맥주는 만들지 않는다” 등 창립자들의 포부가 적힌 영어 문구가 적혀 있다.

이들이 음성을 택한 건 맥주의 가장 중요한 원료인 물 때문이다. 8군데 후보지의 물 샘플을 미국 회사에 보내 분석했는데 음성 물이 가장 맑고 미네랄 함량도 중성적이어서 다양한 맥주 맛을 내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KCB는 노아의 방주를 뜻하는 ‘아크’ 브랜드 맥주부터 여수, 평창, 동빙고, 서빙고 등 지역 브랜드 맥주까지 4년 동안 약 60종의 맥주를 출시해 맥주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투어는 드라이존, 핫존, 콜드존 등 제조 공정에 따라 나뉜 세 구역을 차례로 돌아보며 진행된다. 드라이존에선 맥주의 원료가 되는 맥아와 홉 등을 직접 씹어 맛보고 냄새 맡으며 술의 풍미를 결정 짓는 요소들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핫존과 콜드존에선 커다란 탱크에서 술이 발효되고 숙성되는 과정을 배운다. 투어가 끝나면 시음장인 탭룸에서 생맥주를 맛볼 수 있다. 노란빛이 감도는 ‘허그미’는 오렌지 껍질과 고수 씨앗, 음성산 생강 등 다양한 부재료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조화를 이뤘다. 흑맥주인 ‘블랙스완’은 겨울에 어울리는 맛이었고, 인디아 페일 에일(IPA) 맥주인 ‘비하이’는 캐러멜과 볶은 곡물 향이 진하게 났다.

매주 토요일 오후 1·3시에 열리는 ‘클래식 투어’ 프로그램(2만원)은 40여분간 양조장을 견학하고, 생맥주 한 잔과 작은 기념품을 제공한다. 3만원 무제한 티켓을 구입하면 시음장에서 제공하는 모든 종류의 맥주를 2시간 동안 마음껏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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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부품 활용 뽀로로 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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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이 별것인가요

팩토리투어를 하며 함께 들르기 좋은 곳이 음성에 한 곳 더 있다. 지난해 문 연 품바재생예술체험관이다.

체험관 앞 공터는 오토바이 기름통과 폐타이어로 만든 타조, 버려진 자전거와 스프링으로 꾸민 뽀로로 시소 등 근사한 정크아트 작품들이 설치돼 조각공원을 방불케 한다. 체험관 내부는 다양한 수공예와 팝아트, 정크아트, 꼼지락아트 등 5가지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실이 빼곡하다. 각 프로그램마다 작가들이 상주하며 체험을 돕기 때문에 미술 문외한이나 손재주가 없는 사람도 쉽게 도전할 수 있다.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이 방문하기 딱 좋다. 재료값을 포함한 체험비는 1만~2만원 정도다.

팝아트 교실에선 식당에서 흔히 쓰는 동그랗고 넓은 접시나 나무판 위에 그림을 그린다. 라면 포장지를 그리는 사람도 있고 즐겨보는 웹툰 내용을 모사하는 사람도 있다. 3000원짜리 하얀색 실내화에 색색의 사인펜을 칠해 ‘나만의 신발’을 만들기도 한다. 작품엔 자기들만 아는 비속어, ‘외계어’도 난무한다. 그래선지 어린 학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팝아트 체험을 진행하는 이원재 작가(58)의 설명에 따르면 그게 바로 예술이란다.

“팝아트란 건 대중미술이잖아요. 지나치게 엄숙하거나 논리적일 필요 없이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란 걸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카카오톡 이모티콘이든 애니메이션 캐릭터든 자기가 좋아하는 걸 그리면서 창작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 그게 예술의 본질이란 걸 깨닫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죠.”

음성 | 글·사진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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