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생활상 엿볼 생생한 영상물
중국 신세대 유튜버들이 제작
평양 이발소·노래방 체험에
고아원 주방까지 밀착 촬영
김정은 방중으로 북·중 더 밀월
방북 촬영붐 통제 쉽지 않을듯
[이영종의 평양오디세이] 북한땅 누비는 중국 유튜버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북한에서 절대 금기인 단어다. 2500만명 주민을 70년 넘게 외부와 철저히 단절시킨 채 갈라파고스 왕국을 다져온 때문이다. 다원화와 소통의 상징인 인터넷을 허용한다는 건 북한 지배층엔 곧 체제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일가를 비롯한 극소수 특권층에게만 허용되고, 해커나 대남 선전·선동 요원 등 특정 임무에 종사하는 엘리트에게 제한적으로 제공된다. 물론 노동당 고위 간부들이 인터넷의 효용을 모르는 건 아니다. 통일전선부(부장 김영철 당 부위원장)가 대남 비방 사이트인 ‘우리 민족끼리’를 운영하고, 유튜브에 최고지도자 우상화와 체제 선전 영상을 올린 건 대표적 사례다. 모란봉악단 공연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통해 북한의 생생한 내부 모습이 담긴 영상물이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주도하는 건 북한 당국이나 엘리트 계층이 아니다. 뜻밖에도 중국의 젊은 유튜버들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평양과 북한의 지방 도시를 누비며 주민 일상이나 풍경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서방의 언론인이나 관광객들이 대북제재 때문에 방북이 쉽지 않은 국면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3월 김정은의 첫 중국 방문을 계기로 복원된 북·중 관계도 이들의 보폭을 넓혀준 것으로 보인다.
중국 스타트업 채널 SAO의 유튜버가 평양 문수몰놀이장 이발소에서 헤어스타일 사진을 보고 있다. [유튜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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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용실 벽에 붙어있는 헤어스타일 사진. [유튜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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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애육원 주방의 헬로키티 주전자. [유튜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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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를 방문해 실제 북한식 서비스를 받는 체험형 영상도 눈길을 끈다. 벽에 걸린 헤어스타일 그림에는 물결형을 비롯해 구름형·누운패기형·축포형 등 14가지 유형이 소개돼 있다. M자형 탈모가 진행된 중년 남성에게는 ‘기러기형’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방문지를 오가는 길에 식당에 들러 대동강맥주를 맛보거나 길거리 매대에서 북한 통역과 함께 꼬치 요리를 함께 맛보기도 한다. ‘가라오케(K-TV)’라고 적힌 노래방에서 북한과 중국의 가요를 부르거나 문수물놀이장을 찾은 북한 주민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즐기는 영상, 강원도 원산의 송도원 국제야영소를 탐방하는 장면도 나온다.
아이들 간식용인 ‘해바라기’ 상표의 빵과 탄산음료. [유튜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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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체제의 감춰진 속살을 드러내려는 중국 청년 유튜버들의 발걸음이 더 빨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구 위에서 유일하게 북한이 쉽게 손대기 어려운 나라가 중국이란 측면 때문이다. 잇단 미국인 억류 사태나 한국과 서방 언론에 대한 방북취재 활동 간섭 움직임과 달리 북한은 중국 관광객이나 네티즌들에게는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대북제재 국면에서 중국인 관광이 외화벌이에 숨통을 터주고 있다는 점 때문에 북한 당국이 예전보다 더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새해 벽두 이뤄진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으로 북·중 밀월관계는 더 밀착하는 모습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양측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유엔 대북제재에 대한 중국의 방관 내지 동참으로 냉랭한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3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북·중 혈맹은 복원 과정을 거쳤다.
지난 8일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길로 곧바로 나아가는 중국의 실상을 직접 보면서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는 게 북한 중앙통신의 전언이다. 중국식 개혁개방을 ‘사회주의 노선에 대한 배신’이라며 볼멘소리를 했던 지난 시기와 달라진 평가다. 하지만 정작 북한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한 분위기다. 김정은이 마주한 현실은 자신의 35회 생일상을 이국땅에 차려야 할 정도로 녹록지 않다. 야간 국제열차편으로 압록강을 넘으며 가다듬었을 김정은의 2019년 구상이 궁금해진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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