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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냉면 맛집 을지면옥은 정말 철거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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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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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평양냉면 한 그릇을 싹 비우고 근처 카페 커피한약방에 갑니다. 필터 커피 한 잔에 달달한 티라미수로도 양이 차지 않으면 자리를 옮겨 을지맥옥에서 맥주를 마셔야 직성이 풀립니다. 을지로 힙스터가 되고 싶었던 저와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대중문화의 흔한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고유한 패션과 문화를 즐기는 이들을 뜻하는 ‘힙스터’. 최근 몇 년 사이 을지로는 힙스터들의 성지가 됐습니다. 후미지고 낡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옛날 가게들이 뭔가 색다른 느낌을 주는 곳, 그곳이 바로 을지로입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시청을 담당하는 김미향 기자입니다. 냉면 맛집으로 유명한 서울 중구 ‘을지면옥’이 재개발로 철거될 것이라는 소식이 시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한 주였습니다. 올해는 용산 재개발로 철거민과 경찰이 목숨을 잃은 ‘용산 참사’ 10년이 된 해라 을지면옥의 철거 소식이 더욱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10년이 지나도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떠나야하는 시민들의 고통은 왜 그대로 일까요. 특히 을지로는 조명거리, 입정동 철공소 골목 등 서울문화유산이 있고 요즘엔 젊은이들이 몰리는 힙플레이스인데 말이죠.

궁금한 점은 하나입니다. 마구잡이로 건물을 밀고 빌딩을 올리는 ‘재개발’이 아니라 옛것을 살리는 방식의 ‘도시재생’을 내세워온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가 을지면옥이 철거 위기에 놓일 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을지로의 동네 맛집들, 3대째 제조업을 이어가는 공구상들, 예쁜 커피숍이 있는 힙스터 골목 등이 사라질 것을 알고도 을지로의 재개발 사업시행 인가를 냈을까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을지면옥이 위치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의 사업시행인가 공문을 살펴봤습니다. 서울시 정보소통광장에 공개된 ‘세운3?2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사업시행인가 및 고시’(2017년)를 보면, 서울시는 을지면옥이 사라질 것을 알았지만 진짜 알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업시행인가 서류 중 ‘유관부서기관 협의보완의견 및 조치계획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엔 서울시 14곳 유관 부서들이 중구청 17곳 부서와 함께 사업시행인가 과정에 참여해 재개발 과정에서 보완할 내용을 협의하고 사업자에게 구체적인 주문을 합니다. 예를 들면 매장문화재 보호를 위해 시굴조사를 실시할 것, 조경면적 법적 기준에 적합할 것, 보도에 사용하는 블록을 투수블록(물이 투과되는 블록)으로 변경할 것, 사업부지 내 자전거보관소를 설치할 것 등 하드웨어적인 측면을 검토해 보완을 요구했습니다. 심지어 도시환경정비사업 사업시행인가 조건으로 ‘공사장 가림막에는 서울시 수돗물 아리수 이미지를 게재해 홍보할 것’ 등 소소한 것들까지 ‘깨알같이’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을지로 도심의 제조업 생태계 보전 방법,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치 보전 방법 등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 대해선 검토가 빠져 있습니다. 사업시행인가를 할 때 필요한 일반적인 절차만 지켰을 뿐 이 지역의 특수성이 반영된 검토를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내용을 제보한 전직 서울시 공무원은 “일반 택지를 재개발할 때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 이 지역이 갖고 있는 산업적 가치를 검토하려면 서울시 소상공인지원과, 산업거점조성반, 도시제조업을 담당하는 경제정책과 등이 협의과정에 참여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을지면옥 일대는 관광문화자원 등 다양한 경제적 가치를 갖고 있는데 재개발 사업시행인가 과정에선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철거 위기에 놓인 을지면옥의 운명은 이미 5년 전 예고됐던 일입니다. 2014년 서울시는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해 세운상가 등 건물 7개동은 도시재생사업 대상지로, 건물 외 지역은 재개발 대상지로 무 자르듯 나눴습니다. 2000년대 초부터 세운상가 일대를 둘러싸고 ‘개발’과 ‘보존’ 입장이 충돌하자 서울시가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을지로 일대는 도심 소상공인 생태계가 하나로 얽혀있는데 무 자르듯 구획을 나눠 한쪽은 도시재생사업, 한쪽은 재개발사업을 한다면 도시재생사업도 성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논란이 커지자 지난 16일 박원순 시장은 “상인들이 도심에서 계속 산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한 활동가는 “시에서 찾아와 자꾸 우리들한테 답을 알려달라 말한다. 답은 서울시가 내놔야 하는데, 무슨 대책을 내놓아야 할지도 감을 못 잡고 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미 많은 상가가 철거돼 뿔뿔이 흩어지거나 폐업한 뒤라 재검토를 해도 달라질 게 없을 거란 지적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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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시민들은 서울시에 한 가지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5년 전 세운상가 건물만 남기고 주변 일대를 재개발하기로 한 것처럼, 이번에도 을지면옥처럼 유명한 상점 몇 곳만 남기는 대책은 답이 될 수 없다고요. “산업의 생태계를 살려달라” 시민들의 주문에 이제 박 시장이 답할 차례입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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