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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비빔밥·한옥마을 말고도 이런 매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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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 곳, 뜨는 곳] 예술도시로 다시 태어나는 전주

지난 19일 오후 전북 전주시 팔복동 산업단지의 한 공장에서 경쾌한 재즈가 흘렀다. 주변 공장에서 나온 기계음도 연주에 박자를 맞추는 듯했다. 겉으로 본 공장은 허름했으나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새 세계가 펼쳐졌다. 얼룩지고 빛바랜 시멘트 벽을 배경 삼아 화려한 빔 프로젝터 영상 쇼가 열렸다. 지난해 3월 전주시 팔복동에 문을 연 '팔복 예술공장'의 모습이다. 30년 가까이 도심의 거대한 흉물 취급을 받던 이곳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전주시는 문화·예술 중심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해 전주의 관광 패턴을 바꾸고 있다. 그간 전주 관광객은 한옥마을과 남부시장을 둘러보고 콩나물국밥과 비빔밥을 먹고 '전주를 봤다'고 여겼다. 이제는 도시 재생 사업으로 새롭게 태어난 문화예술 공간이 관광객의 발길을 유혹한다. 시는 오는 2023년까지 도시 재생 사업에 1030억원을 투입한다. 팔복 예술공장, 서학동 예술마을, 아중 호숫길 등 10곳을 명소로 꾸며 한옥마을만 알고 있는 관광객을 불러모으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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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전북 전주에 있는 팔복예술공장에서 한 관광객이 컨테이너 7개를 개조해 만든 구름다리 형태의 설치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예술도시 재생에 나선 전주시는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하던 공장의 원형을 최대한 살려 팔복예술공장을 만들었다.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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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 예술공장은 '전주의 새로운 유혹'을 대표한다. 한옥마을에서 8㎞쯤 떨어진 이곳은 원래 카세트테이프를 만들던 공장이었다. 1979년 쏘렉스사가 가동을 시작해 1991년까지 운영했다. 카세트테이프가 CD 등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지면서 공장도 문을 닫았다. 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은 지난 2016년부터 폐공장이 된 땅(연면적 4153㎡)을 50억원에 사들여 다시 짓기 시작했다.

리모델링 모델은 영국 런던의 미술관 테이트모던이었다. 테이트모던은 20년간 버려졌던 화력 발전소를 고쳐 만들었다. 한 해 500만명이 찾는 세계적인 문화 관광 명소다. 발전소를 허물고 새 건물을 짓자는 제안도 나왔으나 원형을 최대한 살려 높이 99m짜리 굴뚝이 솟아 있는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팔복 예술공장도 최대한 원형을 살렸다. 군데군데 검붉게 녹이 슬고 색이 바랜 건물 외벽에 철골 구조물을 덧댔다. 곳곳에 배치된 테이블은 공장의 대형 철문을 잘라 만들었다. 공장의 상징인 25m 높이 굴뚝엔 '(株)쏘렉스'라는 빛바랜 글자가 보인다. 당시 사용하던 컨테이너 7개를 개조한 구름다리 구조물은 빨갛고 검은색을 입었다. 회색 공장 사이에서 강렬한 색감이 눈을 사로잡는다. 컨테이너엔 예술가들이 추천하는 책을 전시한 '백인의 서재'와 흑백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있다.

팔복 예술공장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뉜다. 예술 창작 공간인 1단지는 창작스튜디오·전시장·연구실·커피숍·옥상놀이터로 꾸몄다. 창작스튜디오에선 13명의 작가가 상주하며 작품 활동을 한다. 커피숍 직원은 인근 주민들이다. 지역민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전주시가 채용했다. 예술 교육 공간인 2단지는 오는 6월 완공 예정이다. 이 공간엔 예술 놀이터 등의 시설이 들어선다. 황순우 팔복 예술공장 총괄감독은 "낙후된 지역을 공동체 중심의 문화 재생을 통해 예술 공간으로 꾸민 모범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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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팔복예술공장의 상징인 굴뚝 주위로 설치 작품으로 변신한 여러 건물이 늘어서 있다. 아래 사진은 공장 구조물을 그대로 살려 만든 커피숍. 인근 주민들이 직원으로 일한다.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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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전주천 상류 승암마을에서부터 서노송동, 다가공원, 서학동 약수터에 이르는 구도심 100만평을 문화예술로 살리는 '아시아 문화 심장터 100만평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핵심 구역은 전주 한옥마을 인근에 있는 서학동 예술마을이다. 서학동 일대는 낙후된 지역이었다. 2010년부터 예술인들이 모여 살면서 아기자기한 예술 마을로 변신했다. '정미소 시리즈'로 명성을 얻은 사진가 김지연씨가 운영하는 '서학동 사진관'을 비롯해 여러 예술가가 작업실을 꾸몄다. 전주시는 오는 2021년까지 172억원을 투입해 서학동 예술마을을 관광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벽화로 유명해진 달동네를 감싸는 순환형 산책로도 생겼다. 한옥마을에서 기린봉을 지나 직선거리로 2㎞쯤 떨어진 아중호수 주변 2.4㎞를 도는 코스다. 야간 경관 조명이 수면을 비추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40면의 주차장도 있다.

기린봉 자락엔 6·25전쟁 때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만들어진 달동네 자만마을이 있다. 꽃을 주제로 한 동화, 풍경 등이 그려진 벽화가 유명해지면서 널리 알려졌다. 한옥마을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으며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등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도 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한옥마을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도시 전역에서 예술과 문화를 살린 관광지를 키워 전주를 '문화 특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전주=김정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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