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은 주는데 인건비 늘어···지불능력 상실 수두룩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에 적자 눈덩이" 줄줄이 폐업
사회보험료 부담까지 압박···"모두들 한계점 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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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번 단지 내 기업인들끼리 모여 식사를 하는데 최근 들어 부쩍 회사 자금 사정과 관련해서는 속내를 털어놓지 않습니다. 이건 심각한 거예요. 어렵다고 해도 버틸 만하면 ‘죽는시늉’을 하면서도 자금조달 정보를 서로 공유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입을 닫기 시작했다는 것은 기업들이 한계점에 와 있다는 얘기죠.”
경남의 한 산업단지에서 조선부품 관련 용접업체를 운영하는 최모 대표는 25일 취재 나온 서울경제신문에 설 명절을 앞둔 산단 내 중소기업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최 대표는 “중기인들을 만나보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첫 급여일과 설 상여금 지급이 겹쳐 있는 이달 말에서 2월 중순 사이가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며 “행여 동네에서 회사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나면 은행 대출이 막히거나 그나마 받았던 기존 대출도 회수해갈까 두려워 회사 자금 사정은 얘기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대표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런 분위기는 통계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중소기업이 설 명절을 앞두고 필요한 자금은 평균 2억2,060만원으로 지난해(2억3,190만원)보다 1,130만원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부족자금은 전년(5,710만원) 대비 25.0%(1,430만원) 증가한 7,140만원으로 집계됐다. 필요자금 대비 부족률은 전년보다 7.8%포인트 늘어난 32.4%를 기록했다. 자금 사정이 곤란해진 원인으로는 ‘인건비 상승(56.3%)’ ‘판매부진(47.5%)’ ‘원부자재 가격상승(26.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재원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경기침체에 따른 매출감소와 최근 2년간 단행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기업들의 자금 사정 악화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매출은 급감하는데 뛰는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사업을 정리하는 중소기업들도 나오고 있다. 최근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한 제본업체 B사가 대표적이다. 부부가 함께 경영하는 이 회사는 직원 수가 15명으로 대부분 시급제 인력이다. 인쇄업종은 계절에 따라 일감 변동폭이 커 직원 고용도 시급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일감이 많은 시기에는 인원을 많이 뽑고 그렇지 않을 때는 최소 인력을 유지한다. B사의 경우 거래처의 주문이 언제 급증할지 모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15명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 회사는 지난해 최저임금이 16.4% 오르면서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인쇄용지 등 원부자재 값마저 오르면서 임금을 포함한 고정비만도 전년 대비 20% 가까이 올랐다. 결국 지난해 3·4분기부터 매달 1,500만원씩 적자가 났고 설 명절을 앞둔 이달 중순 회사를 폐업하기로 결정했다. B사의 김모 대표는 “인쇄업종이 거래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일감 주문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기본 인력을 둬야 한다”면서 “하지만 최저임금이 이렇게 오를 것을 대비하지 못했다. 적자 누적으로 직원들 급여 주기도 어려울 정도로 재무가 악화해 회사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지역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정부에 ‘도산사실인정 신청’에 나서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기업주가 근로자에게 임금을 체불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불능력이 없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법원에 파산이나 회생 절차를 밟으려면 절차도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쉽지가 않다. 이 때문에 벼랑 끝에 몰린 영세기업들 가운데 지방 노동청에 사실상 폐업에 준하는 도산사실인정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게 지역 중소기업계의 전언이다. 노동청으로부터 도산사실인정을 받은 기업은 정부가 밀린 급여와 퇴직금을 대신 지급해준다.
이후록 노무법인 해결 노무사는 “임금체불은 반의사불벌죄로 채권자인 근로자들이 처벌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기업주들이 민형사상 처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재판상 도산 대신 정부기관의 도산사실인정 신청이 는다는 것은 그만큼 한계에 몰린 중소기업들이 많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매월 근로자 급여의 10% 정도로 들어가는 국민연금·건강보험·산재보험·고용보험 등 4대 보험의 사용자 부담금도 자금 사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호소한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한 명당(월 209시간 노동 기준) 노사가 매달 부담하는 사회보험료는 29만7,422원에 달했다. 지난해 최저임금이 16.4% 인상되면서 보험료 부담도 17.2% 올랐다. 노사가 부담하는 사회보험료 증가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가장 가파르다. ‘노동자 총임금 대비 노사 사회보험료 부담률’은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1.9%포인트 상승했다. 슬로바키아(1위·4.8%포인트)와 일본(2위·4.6%포인트)에 이어 3위다. OECD 평균 노사 사회보험료 변화율은 -0.9%포인트로 10년 사이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와는 정반대다.
도기업체 A사의 송기영(가명)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본급이 오르면 급여에 연동된 보험료들도 인상된다”며 “최근 2년간 최저임금이 27% 넘게 올랐다고 하지만 4대 보험료율 인상까지 더하면 실제 중소기업들의 임금부담은 같은 기간 30%를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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