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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이슈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 선정

한국도 '다람쥐 도로' 등장? 예타면제 61조, 내일 운명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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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적극 검토” 불 붙여

지자체, 예타 탈락 사업도 재신청

경실련 “시·도별 1건 땐 최대 42조”

“총선 선심용” “균형 발전용” 논란

문 정부 예타 면제 이미 29조

경실련 “MB 때보다 규모 늘 수도

지자체별 나눠먹기식 사업 안 돼”

29일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 대상 사업 선정 발표를 앞두고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지역 표심을 노린 ‘선심성 퍼주기’라는 주장과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경제 드라이브’라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선다. 논란에 불을 지핀 건 문재인 대통령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신년 기자회견과 지난 24일 대전을 방문한 자리 등에서 광역단체별로 예타를 면제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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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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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타 조사는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공사의 경제성·효율성과 재원조달 방법 등을 따져 사업 추진이 적절한지 판단하는 절차다. 쉽게 말해 나랏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을 해도 될지 말지 따져보는 ‘브레이크’ 역할이다. 정부가 이 조사를 면제한다는 건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걸 막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조차 건너뛰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규모가 만만찮다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17개 시·도 지자체가 예타 면제를 신청한 고속도로·내륙철도·공항·창업단지·국립병원 등 건설 공사는 33건으로 61조2500억원에 달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4~2018년) SOC 예타 면제 사업 규모(4조7333억원)의 약 13배다.

특히 경제적 타당성을 나타내는 비용 대비 편익(B/C)이 1 이상 나오지 않는 사업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6년 6월부터 예타를 진행했지만 B/C 분석이 낮게 나온 대구시의 산업선 철도, 지난해 1분기 예타에서 탈락한 강원도의 제천~영월 고속도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미 예타에서 탈락했거나 타당성 조사 대상으로도 거절된 사업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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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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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타 없이 추진한 사업 중 실패 사례로는 2009년 4대 강 사업, 2010년 전남 영암 포뮬러원(F1) 건설 사업 등이 꼽힌다. 예타를 거친 사업도 막대한 적자를 유발하고 이용자가 적어 애물단지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 곳곳에 만들어 놓고 적자를 면치 못하는 지방 공항이 대표적이다. 2012년 개통한 의정부 경전철은 2017년 3600억원대 누적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한 뒤 인천교통공사가 비상운영 관리를 맡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식 ‘다람쥐 도로’를 양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은 1990년대 초반 이른바 ‘버블 붕괴’ 이후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도로·항만·공항 등 이미 포화된 SOC 건설에 들어갔다. 고속도로를 만들었지만, 사람은 안 다니고 다람쥐만 다닌다고 해서 ‘다람쥐 도로’라고 불렸다. 이 때문에 친정부 성향 시민단체까지 나서며 ‘선심성 퍼주기’라는 반대가 커지고 있다. 경실련은 27일 성명을 내고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현재까지 29조원 규모의 예타를 면제했다. 지자체별로 한 건씩만 예타 면제를 선정해도 최소 20조원, 최대 42조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이는 4대 강 사업 등으로 60조원의 예타를 면제했던 이명박 정부 예타 면제 규모를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4대강·영암F1 사업, 예비타당성 안 거쳤다가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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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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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달 경실련 국책사업감시팀장은 “토건 사업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지자체별 나눠먹기’식 예타 면제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도 “총선용 선심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내년 4월 총선, 가깝게는 설 연휴 민심을 겨냥한 정치적인 정책이란 비판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캠페인 때부터 경기 부양을 위한 토목사업은 벌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SOC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토건 국가’라고 비판했다. 이른바 ‘내로남불’이라는 비난에도 예타 면제라는 특단의 카드를 꺼낸 것은 최대 과제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역경제 활력 제고가 중요하다는 판단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 방침대로 지자체가 신청한 사업 가운데 절반이 예타를 면제받아 조기 착공한다면 지역에 풀리는 돈은 20조~3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만한 호재가 없다. 각 지역이 건설과 토건 사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썩이는 이유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SOC는 일회성인 정부의 단기 일자리 대책보다는 파급 효과가 크다”며 “적어도 지금처럼 고용 침체와 경기 부진이라는 급한 불을 끄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예타 면제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행 예타에선 서울처럼 인구가 많은 곳은 비용 대비 편익이 높게 나오고, 인구가 적은 지방은 ‘경제성이 없다’는 식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예타가 지역 간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예타를 KDI가 전담하다 보니 조사 기간만 1년 이상 걸릴 정도로 적체도 심각하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선물 주듯 지자체별로 1건씩 예타를 면제하는 방식은 자칫 절차상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적으로 한꺼번에 SOC 사업을 진행하면서 재정 건전성 훼손도 우려된다. 특히 탈락한 쪽에서 특혜·역차별을 운운하는 정치적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타는 헐렁한 공공투자사업을 추진하려는 지자체나 정치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 또는 눈엣가시가 돼 왔고, 반대로 국민의 세금을 아끼는 역할은 많이 해 왔다”며 “예타는 경제성 평가와 사회적 편익 추정을 동시에 하는데, 이를 무시하겠다는 정치적 발언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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