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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라이프 트렌드] 마음 울적한 날엔 우리 가게 들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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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들어주는 동네 책방

실연 아픔 달래주는 꽃집

건강 챙겨주는 레스토랑

위로를 파는 상점
중앙일보

지난 24일 레스토랑 ‘안식’의 푸드 테라피스트가 다이어트에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싶다는 손님에게 칼로리가 낮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추천했다. 추천 음식은 1 그린 샐러드와 2 홍국쌀 리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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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여름, 힐링을 주제로 한 TV 예능 프로그램이 등장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힐링 열풍은 감정을 꽁꽁 숨기던 사회 분위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스타가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받는 장면을 보며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이후 힐링은 작은 사치로 행복감을 얻는 ‘스몰 럭셔리’, 인생을 마음껏 즐기겠다는 ‘욜로’, 나만의 공간을 찾는 ‘케렌시아’ 등의 형태로 진화했다. 최근엔 보다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에서 위로를 찾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책·꽃·음식 등으로 고객을 힐링시키는 콘셉트의 상점, 일명 ‘위로를 파는 상점’도 등장했다. 소소하지만 따뜻한 위로를 주는 상점들을 찾아봤다.

“여러 문제에 막혀 옴짝달싹 못 한다는 느낌을 받고 계시네요. 현실적인 문제보단 내면에 집중하면 진정으로 원하는 길이 보일 겁니다. 이 그림책을 읽어보세요.”

지난 22일 고객의 마음 상태에 따라 그림책을 처방해준다는 서울 성동구의 동네 책방 ‘카모메 그림책방’을 찾았다. 타로 카드로 심리 상태를 파악하고 맞춤 책을 처방해주는 프로그램 ‘그림책톡’을 체험하기로 했다. 우선 심리 상담을 전공한 책방 주인과 그동안 쌓아두었던 개인적인 고민을 나눴다. 그다음 50분가량 고민에 대한 내용마다 타로 카드를 선택하고 해석하기를 반복했다. 현실적인 문제를 내려놓고 감정에만 집중하라는 조언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심리 상담이 끝나고 그림책을 추천받았다. 『나는 고양이라고!』였다. 주인공 고양이가 고등어 떼에게 무섭게 쫓기는데, 이는 결국 현실이 아닌 무의식·꿈이었다는 내용이다. ‘압박감은 결국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구체적인 해결책을 주지도, 책을 추천한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현실의 무게감에서 조금은 벗어난 기분이었다.

고객에게 맞는 책·꽃·음식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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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린 샐러드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가 될 만한 물건을 추천해주는 ‘위로를 파는 상점’이 생겨나고 있다. 주사·약을 처방하거나 파는 곳이 아닌 책·꽃·음식 등을 파는 가게다. 하지만 고객은 마치 치료를 받은 것처럼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상점 문을 나선다. 누군가에게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개운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내면의 생각을 꺼내 놓는 것은 병원 등에서 ‘정서적 환기(벤틸레이션)’라는 심리 치료법으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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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흥국쌀리조토


이런 콘셉트의 상점은 스트레스를 즉시 풀길 원하는 젊은이들이 일상에서 힐링 관련 콘텐트·공간을 찾으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박성희 한국트렌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예전엔 스트레스를 참고 견딘 다음 해외여행이나 명품 브랜드 쇼핑 등 한번에 큰 금액을 ‘사치’하는 형태로 이뤄졌다”며 “이젠 평소 적은 비용으로 자주 힐링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경기도 수원시에 사는 김영수(가명·30)씨는 얼마 전 동네 꽃집 ‘꽃처방’에서 꽃 처방을 받았다. 남자친구와의 이별로 슬픔에 빠진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어서다. 주인에게 사연을 털어놓은 뒤 은은한 향기를 내는 리시안셔스를 구매해 위로받기로 했다. 김씨는 “꽃이 약은 아니지만 마음 치료의 목적으로 처방받았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꽃처방’은 꽃으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문을 연 꽃집이다. 꽃을 구매하기 전 구매 목적이나 이유 등을 이야기 나누고 처방전처럼 생긴 종이에 내용을 적으면 꽃을 추천해주는 형태로 운영된다. 과학적이나 의학적으로 플라워 테라피가 이뤄지는 곳은 아니지만 많은 고객이 블로그 등에서 꽃으로 위로를 받았다는 후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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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방'에서 처방 받은 꽃과 사연이 적힌 메모




병원·식당·카페 함께 힐링 처방
과학적인 방법으로 힐링을 처방하는 곳도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레스토랑 ‘안식’이다. 이곳은 같은 건물 2층 카페 ‘수분’, 3층 ‘플레이트 의원’과 함께 운영된다. 플레이트 의원은 차움에서 푸드테라피센터를 처음 세팅한 가정의학과 전문의 이기호 원장이 운영하는 병원이다.

병원에서 진료를 본 환자에게는 진단에 따라 맞춤식 식사와 차(茶)가 처방된다. 처방 받은 음식은 ‘안식’이나 ‘수분’에서 조리해준다. 가령 탄수화물을 제한해야 하는 환자에겐 콜리플라워를 볶음밥처럼 만든 요리가, 단백질을 보충해야 하는 환자에겐 콩을 가득 넣어 만든 토마토파스타가 제공된다. 오롯이 나만을 위해 제공되는 ‘비스포크(맞춤식)’ 요리다.

환자가 아닌 일반 고객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메뉴에 없는 특별한 음식을 원한다면 직원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면 된다. 티·푸드 테라피스트가 증상에 맞는 차를 직접 블렌딩하고 음식을 만들어준다. 인기 메뉴는 열량이 10㎉에 불과한 곤약 비빔국수, 사랑이 톡톡 터지는 홍국쌀(빨간 쌀) 리조토 등이다. 곤약 비빔국수는 다이어트 중이지만 매운 음식을 먹고 싶은 사람에게 많이 선택받는다. 박성희 책임연구원은 “위로라는 소재가 모든 산업에 적용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위로를 파는 가게는 더욱 확장되고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맞춤형 위로 처방전
그런 기분일 땐 이런 ○○해보세요~
※그림책 처방

●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고 싶어요 :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시공주니어)

● 아이에 대해 욕심을 버리지 못해요 : 『빨리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뜨인돌어린이)

● 어릴 적 트라우마로 가끔 악몽을 꿔요 : 『아빠의 술친구』(씨드북)

※꽃 처방

● 토라진 여자친구의 마음을 풀고 싶어요 : 우아한 라넌큘러스·리시안셔스

● 학업에 지친 아이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요 : 마음을 안정시키는 초록 유칼립투스

● 짝사랑이 힘든 친구를 응원하고 싶어요 : ‘사랑의 성공’이라는 꽃말의 안개꽃

※푸드&티 처방

● 불면증 때문에 점점 예민해져요 : 상추·대추·보리순 블렌딩 티

● 우울감이 오랫동안 지속돼요 : 히비스커스·우엉 블렌딩 티

● 다이어트 하며 마음껏 먹고 싶어요 : 가지로 도우를 대신한 피자, 묵으로 만든 떡볶이

도움말=카모메 그림책방, 플레이트 의원, 꽃처방

글=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동하, 각 상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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