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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 (월)

[차이나 인사이트] “기술 초격차, 대한민국을 R&D 센터로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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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기술굴기’의 최대 위협은 한국

발전설비 등 글로벌 시장에서 밀려

패러다임 변화에 맞는 경쟁의 로직

초격차와 융복합 생태계가 핵심

중국 포괄하는 개방형 ICT 생태계

규모 아닌 단위 기술 경쟁력이 중요

중국 ‘IT 굴기’ 따돌리려면

중앙일보

이달초 열린 CES의 TCL 전시관. 중국 기업은 이번 전시회에 1121개가 나와 338개가 참여한 한국을 압도했다. 그러나 기술의 혁신성 등 질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 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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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중국판’이었다.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중국은 무려 1211개 회사가 나왔다. “CES는 이제 중국 IT기업의 전시장으로 변했다”는 평가다. 이런 보도에는 꼭 ‘한국 산업의 위기’란 말이 붙는다. 한국은 이제 중국의 기술 굴기에 압도돼 세계 시장에서 밀려나야 할 처지라는 얘기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CES 현장에서 오히려 기회를 봤다. 해답은 기술 초격차와 융복합 생태계 조성이다. 한중 양국의 산업 경쟁과 협력을 살펴본다.

중국의 산업 발전 속도는 놀랍다. 전통 제조업뿐만 아니라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 중국의 대미 기술제품 교역은 2000년대 들어 흑자로 돌아선 이래 확대일로다. 2017년 1354억 달러에 달했다. 더 주목할 만한 건 제4차산업 혁명 영역에서도 미국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전기자동차·드론 등 제조업뿐만 아니라 전자상거래·모바일결제 등 서비스 영역에서도 중국은 절대적인 1위로 올라섰다. 중국의 AI(인공지능) 분야 논문 및 특허는 미국을 넘어 세계 1위다. 미국이 중국에 무역 전쟁을 일으킨 근본 이유다.

미국보다 오히려 더 중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껴야 할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지리적 위치뿐만 아니라 산업 발전 단계도 중국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중국 산업은 ‘자국 브랜드를 앞세운 독자 기술 개발 단계’로 껑충껑충 뛰어가고 있다. 거대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발전설비, 통신장비, 철도차량 등은 세계 시장에서 이미 우리를 크게 앞서 나가고 있다. 우리 기업은 초조하다. 스마트폰, 자동차 등 대표적인 한국브랜드가 중국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한다.

중국과는 산업 내 수직적 분업을 통해 상호 발전하는 관계였다. 한 제품을 두고도 어떤 부품은 중국에서 만들고, 어떤 건 한국에서 만드는 형태다. 그러나 중국 기업의 기술 도약으로 이젠 어지간한 부품은 중국에서 다 만든다. 경쟁 우위를 가질 핵심 단위 기술이 없다면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우리 산업은 설 땅이 없어지게 된다. 새로운 돌파구는 없을까?

이번 2019 CES에서 그 가능성을 봤다. 중국은 무려 1211개 기업이 나와 338개가 참가한 한국을 압도했다. 그러나 기술의 혁신성 등 질적인 측면을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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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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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시품 중 가장 관심을 끈 건 로욜(Royole)의 폴더블 폰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판단하기에 ‘세계 최초의 폴더블 폰’이라는 과장된 의미를 빼면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었다. 평범한 소비자가 봐도 두께, 접었을 때의 공간 활용, 내구성 등에서 치명적인 결점을 보여주었다. 삼성이나 LG라면 이런 제품을 세계 시장에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위해 제품을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분야도 다르지 않았다. 가장 시선을 끌었던 중국 업체인 바이튼은 자율주행 전기 스포츠카(SUV)를 공개했다. 48인치에 달하는 대형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이런 대형 디스플레이가 과연 상용차에서 필요한 것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조차 답을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현대기아자동차가 포스트 자율주행 자동차 차원에서 더 혁신적이었다. 기아자동차가 선보인 ‘실시간 감정반응 차량제어’는 탑승자의 감정을 파악하여 가장 적합한 차량 환경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AI기술과 첨단 차량제어기술을 결합했다.

디스플레이분야에서는 여전히 한국이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LG는 폭포를 연상케 하는 초대형 OLED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접이식 TV를 구현한 롤러블 디스플레이 등에서 혁신 기술을 선보였다. 중국 기업과의 격차는 눈에 보일 정도로 분명했다.

중소기업관의 80% 이상은 중국 기업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전시 제품은 혁신적 제품이라기보다는 이어폰이나 스피커, 각종 전자부품, 주변기기 등 그렇고 그런 제품이었다. 혁신적인 제품은 많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한국 전시품에 인상적인 걸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생리 건강을 알려주는 스마트 생리컵, VR에서 느낌까지 전달해주는 햅틱(Haptic·촉각)솔루션, 다른 방식의 전기차 충전기에 충전을 가능하게 하는 스칼라 커넥터, 자동차 등의 김 서림이나 눈 쌓임 등을 방지하는 발열 유리… 우리 젊은이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제품들이었다.

CES 전시회는 가전·자동차·드론·기계·스마트홈·스포츠 등 삶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 4차산업 혁명 기술이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융복합 시대다. 이러한 4차산업 혁명 기술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 전지 등을 통해 구현되기에 이 분야 수요는 많이 증가할 것이다. 중국이 빠르게 추격을 해오고 있지만, 아직 우리가 경쟁 우위를 확보한 분야이다.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면 경쟁의 로직도 달라져야 한다. 단순 기술이나 산업의 규모를 놓고 경쟁하는 시대는 갔다. 중국이 ‘모든 걸 다 하겠다’고 달려든다면 우리는 단위 기술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핵심 기술의 초격차 전략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그 혁신 역량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걸 이번 CES는 보여줬다. 융복합을 통한 신산업발굴, 벤처 창업 등의 환경을 조성한다면 대중국 초격차 전략은 아직도 유효한 게임이다.

물론 중국이 잘하는 분야도 있다. 이런 경우 국경을 넘는 밸류 체인(가치사슬)의 융합을 이뤄낼 필요가 있다. 중국의 기초 기술, 플랫폼 역량 등 그들의 혁신 생태계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의 창업 및 벤처 투자 시스템을 우리 혁신 제품과 결합할 수 있도록 창업 생태계 간 융복합이 필요하다. 이게 가능하다면 중국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이나 스마트 헬스케어, 공유경제시스템 등은 우리 제품(서비스)의 백본으로 활용될 수 있다. 빅데이터나 AI 분야 중국 기술 업체를 초기 인수하거나, 제휴하는 것도 방법이다.

혁신의 생태계는 중국에 개방적이어야 한다. 신산업발굴이나 창업 등이 보다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중 융복합 혁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중국에서 구현할 기술을 창출하고 공급하는 거대한 R&D(연구개발) 센터가 되어야 한다. 산업 기술 개발이 기업의 몫이라면 국경을 넘나드는 융복합 생태계의 큰 그림을 실현하는 건 정부의 일이다.

◆조철
중국북한산업실 실장 겸임. 4차 산업혁명위원회 산업경제혁신위원회 위원, 한국 자동차산업학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산업연구원 베이징 지원장, 중국산업연구부 부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산업의 중국 내 동북아국가들의 경쟁구조 분석’ 등의 저서가 있다.



조철 산업연구원 산업통상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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